유교적 법치라는 말을 들으면 과연 유교에 대해 법치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공법이 아니라 사법에...
유교적 법치라는 말을 들으면 과연 유교에 대해 법치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공법이 아니라 사법에서 출발하여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설정한 근대 서구의 법치 개념에서 의거하여, 유교적 국가경영이 법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군주 일인의 전횡에 휘둘리는 전제군주체제라고 여기는 견해이다. 동아시아에서 법치가 개인의 권리를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로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교적 국가경영에서 법치를 부정하는 것은 법치를 서구적 유형으로 환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법치는 서구처럼 민법이 아니라 형법과 행정법 등의 공법을 중심으로 고유한 모습을 지니고 발전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 동아시아에서 나름의 법치 전통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법치는 법가적 정치관일 뿐이고, 유교의 기본적 정치관인 인치, 예치, 덕치와 대립된다는 일종의 상식적 관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상식적 관점은 중국 정치사의 초기 맥락에서 법가가 유가와의 차별 속에서 자신을 분명하게 부각하기 위하여 유교와 법치의 대립을 강조한 점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 근세에 와서 유교 문명권의 쇠락과 관련하여 유교의 무능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이번에는 서구적 법치와의 비교 속에서 이 대립이 다시 강조되었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승환, 1998 : 170-171) 또 유교적 국가경영에서 실제의 법치적 작동과 유교적 자기이해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는 점도 상식적 관점의 유포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유교적 국가경영에서 법치를 배제하려는 관점은 적어도 진시대의 법치 이후 유교적 국가경영에서 법치가 더 이상 배제될 수 없는 토대였으며, 유법(儒法)결합이 유교의 정통 법사상의 중심을 형성했으며, 실제로 국가경영의 주된 원칙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대는 유교적 국가경영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세종의 유교적 국가경영을 유교적 법치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근대의 서구적 법치나 중국 전통시대의 법가적 법치와는 구별되는 유교적 법치의 구조적 특징을 확인하는데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의구심에 함축되어 있는 환원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 세종의 유교적 법치에 접근하기 위해 먼저 1) 일종의 해석학적 출발점으로서 법치의 의미를 기능적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고 2) 이어서 역사적 시각에서 유교적 법치의 일반적 특징을 법가적 법치 및 서구적 법치와의 구별 속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세종의 국가경영 활동에서 나타나는 유교적 법치의 특징을 仁政과 법의 관계를 중심으로 3) 사법의 맥락과 4) 입법의 맥락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