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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파시즘기 영화 정책과 영화계의 동향_프리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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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일제 파시즘기 영화의 사회사 연구이다.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1)보다는 이 시기 일제의 영화 통제 정책이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영화인들이 그러한 정책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영화는 20세기 이후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가운데 하나였다.TV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생산과 유통에서 다른 매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강력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다.이와 관련해 영화는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이윤 획득의 중요한 수단이 되는 동시에 강력한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가 되었다.후자와 관련해 그 시작은 소비에트러시아였지만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20년대 이후 차례로 등장한 파시스트 국가들 곧 이탈리아,독일,일본이었다.
    일제 파시즘은 이탈리아나 독일 못지 않게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을 중시했다.특히 침략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영화는 ‘사상전’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간주되었다.보기를 들어 당시 일제의 영화 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장 모리(森浩)에 따르면 조선의 경우 오락 기관이 적기 때문에 “영화가 지닌 영향력,지도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이었다.2) 따라서 일제는 전시 동원 체제에 들어서면서 ‘영화 신체제’3)라는 이름 아래 영화를 철저하게 통제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일제 파시즘기 선전 정책에서 영화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영화계의 움직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국내 학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단지 한국의 영화사를 다루면서 일제의 영화 정책을 개괄하거나 영화계의 움직임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몇 편의 글이 있을 뿐이다.4)그런 가운데 일제 파시즘기 영화에 대한 기존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사실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더욱이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왜곡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이를테면 등록제와 관련된 부분만 보기로 하자.유현목의 경우 어용 단체인 조선영화인협회에 대해 “이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영화인들은 일체의 작품 활동이 불가능”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5) 그러나 후술하듯이 영화인들의 활동을 규제한 장치는 조선영화인협회의 결성 이후에 시행된 등록제였다.이러한 오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김화는 등록제를 처리한 기능심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위원 12명 가운데 10명이 조선총독부 관리이고 영화인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6)그런데 후술하듯이 기능심사위원회에는 참여한 영화인은7명이었다.이와 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에서 잘못된 서술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일제 파시즘기를 이해하는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기존의 서술은 일제의 영화 정책이 영화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다 보니 역사의 주체로서의 ‘조선인’은 뺀 채 일제의 정책만 그리는,그것도 그저 ‘가혹했다고 하더라’식으로 그리는 것에 머물고 있다.그러다 보니 영화인들이 일제에 협력하고 ‘친일’영화를 만든 것도 “울며 겨자 먹기”7)또는 “강제적 굴레”8)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이는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도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첨예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그런데 ‘강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으며 실제로 강제가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대부분의 논자들이 친일 영화를 만드는 데 관여한 영화인에 대해서는 ‘만 부득이한 상황’과 ‘공과론’을 내세워 의도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회피하거나9) 설사 친일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강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하면서10)그렇지 않은 영화인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규명하는 작업도 없이 ‘반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추앙하고 있다.11)심지어 친일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도 겉으로는 일제에 순응했지만 실제로는 의도적인 태작(怠作)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다는 해석을하는 경우도 있다.12)물론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1980년대 이후 일부 연구자들이 친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다.13)그러나 이 경우에도 영화인의 친일 문제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14)있으며 영화인들이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영화 통제가 이루어지는 시대 상황 곧 파시즘 체제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통제의 강화 또는 친일 영화의 등장으로만 이 시기를 파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그 결과 사회 전반에 걸쳐 파쇼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서도 왜 이 시기에 영화 신체제라는 이름 아래 통제의 질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영화계의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파시즘과 영화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1920년대 이후 등장한 파시즘 체제는 예외 없이 영화 통제를 표방하고 나섰다.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파시즘 국가였다.그런데 파시즘 체제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통제에 대한 일제의 정책적 의도,나아가서는 그러한 일제의 의도에 따른 조선 영화계의 재편이 가져온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은 이상에서 언급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특히 논의의 초점이 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먼저 일제가 추진한 영화 통제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 및 지향점을 파시즘 지배 체제라는 맥락에서 검토할 것이다(2장).다음으로는 당시 영화인들이 영화 신체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문제를 영화인 자신들의 글과 발언을 통해 정리할 것이다(3장 1절).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화 신체제에 대한 영화인들의 인식이 영화계에서의 활동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3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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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일제 파시즘기 영화의 사회사 연구이다.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1)보다는 이 시기 일제의 영화 통제 정책이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영화인들이 그러한 정책에 대해 어떻...

    이 글은 일제 파시즘기 영화의 사회사 연구이다.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1)보다는 이 시기 일제의 영화 통제 정책이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다시 영화인들이 그러한 정책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영화는 20세기 이후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가운데 하나였다.TV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생산과 유통에서 다른 매체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강력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다.이와 관련해 영화는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이윤 획득의 중요한 수단이 되는 동시에 강력한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가 되었다.후자와 관련해 그 시작은 소비에트러시아였지만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1920년대 이후 차례로 등장한 파시스트 국가들 곧 이탈리아,독일,일본이었다.
    일제 파시즘은 이탈리아나 독일 못지 않게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을 중시했다.특히 침략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영화는 ‘사상전’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간주되었다.보기를 들어 당시 일제의 영화 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장 모리(森浩)에 따르면 조선의 경우 오락 기관이 적기 때문에 “영화가 지닌 영향력,지도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이었다.2) 따라서 일제는 전시 동원 체제에 들어서면서 ‘영화 신체제’3)라는 이름 아래 영화를 철저하게 통제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일제 파시즘기 선전 정책에서 영화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영화계의 움직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국내 학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단지 한국의 영화사를 다루면서 일제의 영화 정책을 개괄하거나 영화계의 움직임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몇 편의 글이 있을 뿐이다.4)그런 가운데 일제 파시즘기 영화에 대한 기존의 서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사실을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더욱이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왜곡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이를테면 등록제와 관련된 부분만 보기로 하자.유현목의 경우 어용 단체인 조선영화인협회에 대해 “이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영화인들은 일체의 작품 활동이 불가능”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5) 그러나 후술하듯이 영화인들의 활동을 규제한 장치는 조선영화인협회의 결성 이후에 시행된 등록제였다.이러한 오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김화는 등록제를 처리한 기능심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위원 12명 가운데 10명이 조선총독부 관리이고 영화인은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6)그런데 후술하듯이 기능심사위원회에는 참여한 영화인은7명이었다.이와 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에서 잘못된 서술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일제 파시즘기를 이해하는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기존의 서술은 일제의 영화 정책이 영화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다 보니 역사의 주체로서의 ‘조선인’은 뺀 채 일제의 정책만 그리는,그것도 그저 ‘가혹했다고 하더라’식으로 그리는 것에 머물고 있다.그러다 보니 영화인들이 일제에 협력하고 ‘친일’영화를 만든 것도 “울며 겨자 먹기”7)또는 “강제적 굴레”8)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이는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도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첨예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그런데 ‘강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으며 실제로 강제가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대부분의 논자들이 친일 영화를 만드는 데 관여한 영화인에 대해서는 ‘만 부득이한 상황’과 ‘공과론’을 내세워 의도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회피하거나9) 설사 친일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강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하면서10)그렇지 않은 영화인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규명하는 작업도 없이 ‘반일’이니
    ‘민족’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여 추앙하고 있다.11)심지어 친일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도 겉으로는 일제에 순응했지만 실제로는 의도적인 태작(怠作)을 통해 일제에 저항했다는 해석을하는 경우도 있다.12)물론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1980년대 이후 일부 연구자들이 친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다.13)그러나 이 경우에도 영화인의 친일 문제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14)있으며 영화인들이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는 영화 통제가 이루어지는 시대 상황 곧 파시즘 체제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통제의 강화 또는 친일 영화의 등장으로만 이 시기를 파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그 결과 사회 전반에 걸쳐 파쇼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서도 왜 이 시기에 영화 신체제라는 이름 아래 통제의 질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영화계의 재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파시즘과 영화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1920년대 이후 등장한 파시즘 체제는 예외 없이 영화 통제를 표방하고 나섰다.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파시즘 국가였다.그런데 파시즘 체제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통제에 대한 일제의 정책적 의도,나아가서는 그러한 일제의 의도에 따른 조선 영화계의 재편이 가져온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은 이상에서 언급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특히 논의의 초점이 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먼저 일제가 추진한 영화 통제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 및 지향점을 파시즘 지배 체제라는 맥락에서 검토할 것이다(2장).다음으로는 당시 영화인들이 영화 신체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문제를 영화인 자신들의 글과 발언을 통해 정리할 것이다(3장 1절).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화 신체제에 대한 영화인들의 인식이 영화계에서의 활동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의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3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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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머리말 2.영화 신체제의 성립 과정 3.영화 신체제에 대한 영화인의 대응 4.맺음말

    1.머리말
    2.영화 신체제의 성립 과정
    3.영화 신체제에 대한 영화인의 대응
    4.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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