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는 우선 문헌연구를 통해 대만해협 양안에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전파된 과정의 차이점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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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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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는 우선 문헌연구를 통해 대만해협 양안에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전파된 과정의 차이점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취한 선교방식의 차이점, 두 지역의 상이한 사회구조가 기독교의 수용과정에 어떻게 작용하였는가, 선교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이러한 주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만에 맨 처음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627년 대만에 도착한 네덜란드 국적의 칸디두스(Georgius Candidus)목사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중국대륙에 개신교가 전파되기 대략 2백년 전에 이미 대만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이 활발하였고 원주민 부락을 중심으로 다수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후 네덜란드의 통치지역인 대만의 남부지역에는 기독교가, 스페인의 점령지역인 북부지역에는 천주교가 원주민의 교화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식민통치가 종식되면서 이후 약 2백년 이상 대만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발자취가 끊기게 되었다.
네덜란드 식민당국은 최초 무력정복의 수단을 통해 원주민들을 복속시키고 이후 행정통제와 종교적 세뇌를 병행하였다. 포르투칼이나 스페인과는 달리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는 식민지 선교를 위해 다수의 목사를 동인도회사의 직원으로 채용하였다. 본시 동인도회사의 주요 업무는 행정방면에 집중되어 있었고 宣敎는 부차적인 업무였다. 이에 비해 대만의 경우 동인도회사는 원주민 교화를 위해 선교사업도 행정업무의 하나로 간주하고 선교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식민통치를 원활히 진행하고 현지인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정책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장려하였다는 사실이 초기 기독교의 대만 전파과정의 특징이라 하겠다.
아편전쟁 이후 開港場에서의 기독교포교가 허용되면서 중국인 일반의 信敎 자유도 인정되었다. 이때부터 자연 기독교를 널리 전파하려는 선교사의 활동이 강화되고 이에 맞서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질서의 유지를 강화하고 지속시키려는 사대부의 注意와 반감도 증폭되었다. 물론 이 무렵부터 대만에도 각국의 商館이 설립됨과 더불어 선교사들의 포교활동이 빈번해지기 시작하였다. 2백 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대만과 대륙에서의 선교사들의 포교과정에서 나타난 토착사회의 태도에는 확연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항 이후 세계경제시장의 일원으로 편입된 대만에는 각국의 상관이 설립됨과 더불어 선교사들이 포교활동에 종사하면서 개항장은 이들의 선교 거점으로 변하였다. 1859년 필리핀에서 들어온 천주교 도밍고회(Domingo) 선교사들이 打狗(高雄)일대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한 적이 있었으나, 개항 이후 대만에서 본격적으로 조직적인 선교활동을 펼친 선교사들은 개신교인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본토화'와 '세속화'를 중시한 장로교회의 정신은 그 후로 오랫동안 대만의 사회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같은 장로교회 소속이면서도 영국 선교사들은 주로 남부지방에서, 캐나다 선교사들은 주로 북부지방에서 선교활동을 진행하여 대만에 기독교와 함께 서양문화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19세기 중엽 이후 대만해협 양안에서는 공히 반교사건이 속출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대륙의 반교사건은 유가전통의 옹호를 기치로 내건 官紳들의 이해관계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대만의 반교사건은 주로 풍속습관의 차이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는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결국 거의 비슷한 시기 중국대륙과 대만에 진출한 천주교와 기독교의 포교와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양 지역의 차이점은 또한 두 지역의 사회문화적 구조의 차이점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방법에 있어서는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포괄적인 문헌연구를 위주로 진행하려 한다. 이에 필요한 중요문헌으로는 바타비아일기, 영국의 영사보고, 臺灣府城敎會報, 현지선교사의 일기와 여행기록 등이 주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만토착인의 외래종교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겠으나 기독교장로회의 '본토화'·'현지화'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중인 중앙연구원 민족연구소, 대만의 종교문제를 연구하는 중앙연구원 대만연구소주비처의 몇 몇 연구원들과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통해 본 연구의 내용을 보다 충실히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을 입수하여 참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