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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트와 슐라이어마허: 초기 및 중기 바르트 신학에서의 슐라이어마허의 수용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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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반응은 양면성을 띤다. 즉 한편으로는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대립적 관계에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치적 관계에 있다. 대립적 관계는 주로 ...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반응은 양면성을 띤다. 즉 한편으로는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대립적 관계에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치적 관계에 있다. 대립적 관계는 주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단절로부터 언급되며, 또 일치적 관계는 바르트가 말년에 행한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우호적인 칭송의 진술로부터 주창되기도 한다.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이러한 양의적인 태도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생겨난다: 어느 정도로 바르트는 슐라이어마허와 대립 또는 일치의 관계에 서있는가? 대립적 관계 또는 일치적 관계를 바르트의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관계에서 일의적이며 배타적으로 주창할 수 있는가? 위의 질문들을 본 논문은 주요문제로 다룬다. 본 논문은 위의 문제들을 1909년에서 1930년까지, 즉 바르트가 신학수업을 끝낸 마르부르그 시절에서부터 신학과 교수로서 한창 활동을 한 뮌스터 시절까지 발표된 그리고 미발표된 문헌들을 대상으로해서,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관계의 변화의 추이를 역사발생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또 그 신학적 의의를 평가하려 한다.
      본 논문은 서론에서 먼저 슐라이어마허와 바르트의 관계에 대한 그 동안의 선행연구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본 논문의 기여도를 보인 후에, 제 1장에서 바르트가 대학을 졸업한 후의 마르부르크 시절로부터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자펜빌 시절, 즉 1909년부터 1913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에 있었던 당대의 신학자 Achelis와의 논쟁(1909), 종교철학에 대한 스케치(1910), 신앙과 역사에 대한 강연(1910), 당대의 또 다른 신학자 Heim의 책에 대한 서평(1912), 신론에 대한 강연(1913)을 검토한다. 이 시기에는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를 매우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 2 장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발발 이후로부터 괴팅엔 시절 중반까지, 즉 1914년부터 1923년의 시기에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가지는 매우 역동적인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쟁에 대한 경험과 더불어서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로마서주석 1판(1919)과 성서적 고찰에 대한 아라우어 강연(1920)에서 새로운 신학적 착상을 발견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의 날이 로마서주석 2판(1922), 포이어바흐에 대한 논문(1922),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엘거스부르크의 강연(1922)을 통해서 점차로 날카롭게 서가게 됨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바르트가 괴팅엔에서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행한 강의(1923/24)를 상술할 것이다. 이 강의에서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적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며, 또한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 비판에서 어떤 구체적인 신학적인 논지를 문제 삼는지를 살필 것이며, 아울러서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의 작품들을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연구하며 작업하고 해석했는지를 볼 것이다.
      아울러 4장에서 본 논문은 1924년부터 1925년 사이의 바르트의 괴팅엔 시절을 다룬다. 여기서 앞의 제 3장에서 살핀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강의의 연구성과들을 어떻게 체계화시키며, 또 어떤 방식으로 대중 앞에 공표하는지를 볼 것이다. 브룬너의 슐라이어마허 책에 대한 바르트의 서평(1924), 슐라이어마허의 ‘성탄축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대중적으로 공표한 글(1924)을 통해서 위의 사실을 살피려 한다. 아울러서 바르트의 슐라이어마허 연구가 바르트의 첫 번째 교의학인 괴팅엔 교의학(1924/25)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 5장에서는 1925년부터 1930년 사이의 바르트의 뮌스터 시절을 다룬다. 지금까지 보였던 전적인 비판적인 태도와 비교해볼 때, 다소 변화된 바르트의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태도를 발견한다.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를 초지일관하게 인간중심주의적으로, 그리고 감정신학의 관점에서 해석해왔던 이전의 해석에 변화를 보인다. 이런 모습은 바르트가 뮌스터에서 행한 첫 번째 신학사강의(1926), 그의 두 번째 교의학인 뮌스터 교의학(1927) 및 뮌스터의 두 번째 신학사강의(1929/30)에서 발견된다.
      마지막 결론을 다룬 제 6장에서는 이 모든 연구들을 먼저 역사적인 관점에서 요약한 후에, 조직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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