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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 예술 사회학적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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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중점 내용>
    시대담론의 변화에 따른 언어형상화 방식의 변천은 세계 인식, 곧 실재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 오늘날 사회에 확산된 투명성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결핍으로 인식되는 실재에 대한 열망이라 하겠다. 실재의 ‘제시 불가능한 부분’은 이성의 힘으로 오롯이 해명될 수 없고 감각현실과 그 이면의 간극이 영혼의 고양 또는 현실초월로 좁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오늘날 자명해졌다. 근대 이후, 그 제시 불가능한 부분을 이성과 영혼 대신 상대하게 된 것은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가 근대에 들어서며 체제권력 유지 수단으로 오용되면서 사회협약 존중이라는 명분아래 그 협약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는 배제되기 시작한다.
    R. 바르트는 산업사회 구축과 더불어 출현한 프랑스 부르주아계층이 체제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료성을 미덕으로 내세워 통념으로 굳힌 점을 비판한다. 그는 부르주아 문화예술이 표방하는 명료성이 사회의 주축세력으로 안주하려는 부르주아지의 욕망에서 비롯하여 관습적인 것이 된 계급적 태도이며 그런 점에서 현실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통념으로 명료히 해석되지 않는 예술표현을, 타인과 공유 불가능한 ‘풍크툼punctum'을 소중히 여긴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사회코드에 지나지 않고 사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줄 뿐이며 사물에 내재한 진리를 표현하거나 해명해줄 수 없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모든 파롤에는 담론공간과 형상공간이 있으며, 언어의 의미작용과 구분되는, 의미의 두께 또는 불투명성이 내재한다. 그 불투명성은 언어라는 사회제도가 뒤틀리며 열리는 형상적 공간, 곧 예술 공간의 속성이다. 통념에서 비켜나 스스로를 은폐하는 듯 보이는 그 공간은 해석대상이 아닌 지각대상이다. 사물을 언어의 의미작용에 비끄러매는 대신 ‘불투명한 것’으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보면, 불투명성은, 인식의 장애가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일원화되어 거짓 투명성을 띠는 대신 서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열린 공간에 비유될 수 있다.
    사회협약으로서 언어에 대한 바르트와 리오타르의 성찰이 가치체계의 획일화를 경고한다면, 프랑스 현대시는 “학습된 문법을 벗어내는” 글쓰기로서 시를 실험하는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E. 오카르는 “우리의 언어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우리의 몸,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처신하고, 행동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문법화 된” 현실에 맞서 글쓰기란 설명 또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E. 글리상은 "절대를 언어 속에서 완성시키면서 불투명하게 하[는]” 문학의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불투명성에 겹쳐드는 또 다른 불투명성, 곧 프랑스어권의 주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어로 사유하고 표현해야 하는 자신 내면의 간극에서 빚어지는 불투명성을 주목한다. 그는 그 불투명성을 소외․배제․관계 단절로 받아들이는 대신 “다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열림으로 인식한다. 그는 “서로 다를 수 있는 권리”에 앞서 “불투명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 “불투명할 권리는 자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정으로 관계 맺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연구추진전략>
    i) 바르트의 ‘풍크툼’과 ‘중립’, 리오타르가 제시한 예술 고유의 ‘형상적 공간’, 오카르의 축어시 그리고 글리상이 주창한 ‘관계의 시학’에 나타난 언어예술의 쟁점을 언어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측면에서 고찰한다.
    ii) 프랑스 현대시와 포스트모던 비평이론이 역설하는, 언어의 예술적 운용의 중요성이 근대가 집착한 명료성과 그리고 오늘날 포스트모던이 지향하는 투명성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 가 고찰한다.
    iii) 축어성이 지향하는 의미의 투명성이 바르트와 리오타르 그리고 글리상이 옹호하는 언어예술의 불투명성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iv) 리오타르와 글리상의 언어성찰을 비교 분석하고 그 공통점을 부각한다. 리오타르는 요소들의 대립에서 의미작용의 명료성을 얻는 언어와 달리, 언어예술의 불투명성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가운데 의미가능성에 열린 공간을 읽어낸다. 그의 관점은 언어예술의 불투명성이 서로 다를 수 있는 권리를 허여한다는 점에서 불투명성을 옹호하는 글리상의 관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v) 본 연구주제인 ‘언어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유의 부정성이 현실부정 또는 소외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궁극에는 타자와 ‘따로 또 같이’ 공존 가능한 존재방식을 구상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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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점 내용> 시대담론의 변화에 따른 언어형상화 방식의 변천은 세계 인식, 곧 실재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 오늘날 사회에 확산된 투명성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 어느 때...

    <중점 내용>
    시대담론의 변화에 따른 언어형상화 방식의 변천은 세계 인식, 곧 실재 인식의 변화를 뜻한다. 오늘날 사회에 확산된 투명성에 대한 관심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결핍으로 인식되는 실재에 대한 열망이라 하겠다. 실재의 ‘제시 불가능한 부분’은 이성의 힘으로 오롯이 해명될 수 없고 감각현실과 그 이면의 간극이 영혼의 고양 또는 현실초월로 좁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오늘날 자명해졌다. 근대 이후, 그 제시 불가능한 부분을 이성과 영혼 대신 상대하게 된 것은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가 근대에 들어서며 체제권력 유지 수단으로 오용되면서 사회협약 존중이라는 명분아래 그 협약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는 배제되기 시작한다.
    R. 바르트는 산업사회 구축과 더불어 출현한 프랑스 부르주아계층이 체제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명료성을 미덕으로 내세워 통념으로 굳힌 점을 비판한다. 그는 부르주아 문화예술이 표방하는 명료성이 사회의 주축세력으로 안주하려는 부르주아지의 욕망에서 비롯하여 관습적인 것이 된 계급적 태도이며 그런 점에서 현실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통념으로 명료히 해석되지 않는 예술표현을, 타인과 공유 불가능한 ‘풍크툼punctum'을 소중히 여긴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사회코드에 지나지 않고 사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줄 뿐이며 사물에 내재한 진리를 표현하거나 해명해줄 수 없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모든 파롤에는 담론공간과 형상공간이 있으며, 언어의 의미작용과 구분되는, 의미의 두께 또는 불투명성이 내재한다. 그 불투명성은 언어라는 사회제도가 뒤틀리며 열리는 형상적 공간, 곧 예술 공간의 속성이다. 통념에서 비켜나 스스로를 은폐하는 듯 보이는 그 공간은 해석대상이 아닌 지각대상이다. 사물을 언어의 의미작용에 비끄러매는 대신 ‘불투명한 것’으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보면, 불투명성은, 인식의 장애가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일원화되어 거짓 투명성을 띠는 대신 서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열린 공간에 비유될 수 있다.
    사회협약으로서 언어에 대한 바르트와 리오타르의 성찰이 가치체계의 획일화를 경고한다면, 프랑스 현대시는 “학습된 문법을 벗어내는” 글쓰기로서 시를 실험하는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E. 오카르는 “우리의 언어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우리의 몸,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처신하고, 행동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문법화 된” 현실에 맞서 글쓰기란 설명 또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E. 글리상은 "절대를 언어 속에서 완성시키면서 불투명하게 하[는]” 문학의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불투명성에 겹쳐드는 또 다른 불투명성, 곧 프랑스어권의 주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어로 사유하고 표현해야 하는 자신 내면의 간극에서 빚어지는 불투명성을 주목한다. 그는 그 불투명성을 소외․배제․관계 단절로 받아들이는 대신 “다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열림으로 인식한다. 그는 “서로 다를 수 있는 권리”에 앞서 “불투명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 “불투명할 권리는 자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정으로 관계 맺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연구추진전략>
    i) 바르트의 ‘풍크툼’과 ‘중립’, 리오타르가 제시한 예술 고유의 ‘형상적 공간’, 오카르의 축어시 그리고 글리상이 주창한 ‘관계의 시학’에 나타난 언어예술의 쟁점을 언어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측면에서 고찰한다.
    ii) 프랑스 현대시와 포스트모던 비평이론이 역설하는, 언어의 예술적 운용의 중요성이 근대가 집착한 명료성과 그리고 오늘날 포스트모던이 지향하는 투명성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 가 고찰한다.
    iii) 축어성이 지향하는 의미의 투명성이 바르트와 리오타르 그리고 글리상이 옹호하는 언어예술의 불투명성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궤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iv) 리오타르와 글리상의 언어성찰을 비교 분석하고 그 공통점을 부각한다. 리오타르는 요소들의 대립에서 의미작용의 명료성을 얻는 언어와 달리, 언어예술의 불투명성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가운데 의미가능성에 열린 공간을 읽어낸다. 그의 관점은 언어예술의 불투명성이 서로 다를 수 있는 권리를 허여한다는 점에서 불투명성을 옹호하는 글리상의 관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v) 본 연구주제인 ‘언어예술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유의 부정성이 현실부정 또는 소외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궁극에는 타자와 ‘따로 또 같이’ 공존 가능한 존재방식을 구상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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