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기 경남지역 근로보국대의 결성과 국내노무동원의 실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먼저,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식민지 조선은 식민권력에 의해 총동원체제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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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총동원체제 ; 강제동원 ; Labor Patriotism Unit ; Forced Mobilization ; Domestic Labor Mobilization ; the public Labor Mobilization ; the student Labor Mobilization ; Labor Service ; Compulsory Labor ; Busan ; South Gyeongsang ; 근로보국대 ; 학생근로보국대 ; 근로봉사 ; 노무동원 ; 국민정신총동원운동(정동운동) ; 국민총력운동(총력운동) ; 국민개로운동 ; 경상남도 ; 부산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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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경남지역 근로보국대의 결성과 국내노무동원의 실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먼저,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식민지 조선은 식민권력에 의해 총동원체제에 들어갔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이전부터 전개해 오던 정신운동을 한층 강화시켜 조선에 이른바 노동으로 나라를 보위하는 근로보국대의 결성과 함께 국민정신총동원근로보국운동(정동운동)을 전개했다. 경남지역에서도 1938년부터 근로보국대와 학생근로보국대가 결성되기 시작했으며, 정동운동의 일환으로 근로봉사라는 형태의 노무동원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때의 노무동원은 본격적인 노동력 수탈이 아니라 정신운동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도 하루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신운동을 넘어 노동에 적응하는 몸을 완성하는 운동은 이후 전개될 노무동원의 토대가 되었다. 둘째, 경남지역만의 특징인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봐야 하겠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일반인들의 노무동원과 학생들의 노무동원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일본인 중심의 대도시인 부산지역에서는 학생들의 노무동원만 이루어지고 일반인들에 대한 노무동원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자료의 부족에 따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경성의 예를 통해 볼 때, 일본인 중심의 대도시에서는 노무동원이 일본인 학생에만 그쳤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총동원체제이지만 전쟁 초기 일본인들에 대한 동원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제국과 식민지의 공간적 차이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 차이이며 곧 차별적 정책의 집행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1941년부터 정동운동이 국민총력운동으로 개편되고 그 실행단체도 국민근로보국대로 개편되어 전국적인 국민개로운동, 즉 전 국민의 노무동원이 전개되면서 부산지역을 포함하여 경남지역에서는 대대적인 노무동원이 이루어졌다. 비로소 부산지역에서도 일반인들이 노무동원되기 시작하였음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경남지역의 전면적인 노무동원은 1941년을 기점으로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actual state of labor patriotism units and mobilized labor in the Gyeongsangnam-do region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wa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colonized Choseon went into th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by the colonial authorities aft...
The actual state of labor patriotism units and mobilized labor in the Gyeongsangnam-do region at the end of the Japanese rule wa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colonized Choseon went into th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by the colonial authorities after the outbreak of Sino-Japanese War in 1937.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further reinforced the old spiritual movement to mobilize the human and physical resources of colonized Choseon for the war, thus forming labor patriotism units to protect the country through so-called labor and unfolding the national spirit mobilization projects. The formation of labor patriotism units and school labor patriotism corps started in the Gyeongsangnam-do region in 1938. The region also saw mobilized labor in the form of labor service as part of the national spirit mobilization projects. Mobilized labor during the period, of course, was not full-blown labor exploitation but part of the spiritual movement, which means that the duration was as short as a day in most cases. However, the movement of completing the body adapted to labor beyond the spiritual movement became a base for mobilized labor to be unfolded later. Secondly, mobilized labor took place simultaneously among the general population and among the students in the agricul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