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연극성에 대한 탐구, 혹은 재발견의 문제는 오랜 기간 예술 시학의 기본이 되어왔던 ‘모방’과 ‘재현’의 개념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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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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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연극성에 대한 탐구, 혹은 재발견의 문제는 오랜 기간 예술 시학의 기본이 되어왔던 ‘모방’과 ‘재현’의 개념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형식과 내용의 위계적 질서, 주제와 장식의 이분법적 구별, 정신과 물질의 경계는 예술적 재현이 과거에 그것의 준거라 여겨졌던 현실과 더 이상 구별되지 않음과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를 가장 급진적으로 드러낸 것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었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전통적으로 예술에 제한을 두어왔던 제도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그들은 미학의 전통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했는데, 그것은 예술 창조자의 실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극에 있어서 이 같은 움직임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연극관에 도전한 일련의 연출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메이에르홀드(Vs.Meierkhol'd), 바흐탕코프(E.Vakhtangov), 타이로프(A.Tairov)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새로운 예술가들은 전 세대 예술의 아카데미즘과 부르주아의 장식물로서의 예술에 반기를 들며 민중과 예술가 사이의 거리를 허물고자 했으며, 자신의 실천적 행위와 모든 예술적 작업이 과학적으로 해석되고 습득되기를 원했다. 또 많은 구성주의자들이나 미래주의자들이 1920년대 초 순수예술에서 실용예술의 영역으로 향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예술 수단의 본질 ‘그 자체(Kak Takovoi)’를 추구하는 경향 역시 이 시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이에 예술의 본질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 예술 외적인 것으로 인해 주어진 규범들로부터 예술은 해방되기를 원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별되는 부르주아적 관계를 예술에 있어 타파하려는 것 역시 이 시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것은 연극에 있어 무대와 객석의 이분화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이 이 시기 연극성에 관심을 두었던 연출가들이 각각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여 공통적으로 도달하게 된 중요한 ‘연극의 본성’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도, 문화예술 활동이 철저하게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동시에 정치도구화 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도그마된 한 창작 방법론으로 창작의 단계에서부터 규제를 받았던 스탈린 시대에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러시아 연극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은 스탈린 사후 이른바 해빙기에 이르러서이다. 해빙기의 불안하지만 강렬했던 자유의 바람은 새로운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이들이 주도해 나갔던 60-70년대의 문화에 변화를 가져온다. 소비에트 러시아에는 젊은이 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세대에게 있어 기성세대의 무기력과 불의는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었다. ‘불의와 타협의 거부’, ‘진실에 대한 추구’, ‘수동적인 소시민성과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 ‘시대의 양심에 대한 고민’ 등은 새로운 세대의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였다. 1960년대 새로운 연극운동을 주도했던 연출가 또프스타노고프, 에프로스, 류비모프, 예프레모프 등이 활동했던 극장은 소비에트 사회에서 언론기관과 정치회합을 어울러 놓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희곡이나 연극 등이 많은 독자와 관객을 아우르면서 폭넓은 토론의 대상물이 되곤 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극작과 연극은 민중이 원했던 그러한 수준의 진실, 즉 완전한 진실을 다루고 꿰뚫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민중은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 다루고자 했던 문제, 언론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진실을 바로 극장을 통해 알았고, 작품을 경유해 토론했던 것이다. 이럴 때 극장은 진실로 ‘연극-학교’, ‘연극-사원’의 역할을 해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의 지위는 개방과 개혁의 시기에 이르면서 빠르게 하락했다. 예술계에 있어서도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그 영향력이 컸다. 새로운 시대에 돌입하면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자신이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연극-사원', '연극-학교'의 지위는 빠르게 하락했다. 이제 연극은 그저 연극일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러시아 연극의 진지함과 독창성은 이내 몇몇 극단이 세계적 명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장 선두에 선 연출가는 레프 도진, 아나톨리 바실리예프, 카마 긴카스, 발레리 포킨, 표트르 포멘코 등이다. 러시아 연출가들의 작업은 문학적 고전작품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연극과 문학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오늘날 혼란 속 러시아 연극의 모색은 전 세계가 직면한 "연극의 미래", "예술의 죽음"에 대한 문제와 맞물려 있다. 연극예술이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는 20세기 선배 연극인들의 모색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