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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근대수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사생(寫生) 연구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의 사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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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메이지 30년대(1897~1906), 사생 방법이 모든 문학 장르에 활발히 수용되었던 것은 오감(五感) 중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중시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자연을 사생함에 있어, 화가들이 대상을 색과 선으로 재현해 내듯이, 작가들은 언어로 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근대적 사고에서 시도되었다. 회화의 사생을 산문에 도입한 사람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로, 그는 나카무라 후세츠(中村不折)의 도움을 받아 과장(誇張)과 공상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묘사, 즉 사생문을 시도했는데,『작은 정원 감상(小園の記)』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사생문이란 명칭도 시키(子規)에 의해 서사문에서 유래된 것이며, 사생문의 발전은『먹물 한 방울(墨汁一滴)』(1901)과 같은 수필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사생이란 말은 당시의 문단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그 활동은 미약한 상황이었다.
    이후 1907년 3월《문장세계(文章世界)》에〈사생과 사생문〉이란 제목의 특집이 실렸는데, 이는 현 문단에서 사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을 반증하는 예라 하겠다. 다카스(高須芳次郎)는 “문학사 연구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보물 가운데 사생문, 미문(美文), 기행문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문단에 가장 유력한 파동을 일으킨 것이 사생문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의 경우는, 문학계에 뛰어난 문학이 없는 이유가 사생을 경멸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 스스로 사생을 통한 문장 혁신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는 사생문의 생명은 자연에서 직접 맨손으로 잡는 참신함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한편 호케츠(抱月)는 현 문단의 사생문을 두 종류로 파악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무형식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작가 내부의 생명 즉 ‘느낌’으로 쓰여진 통일된 문장에 일종의 형식이 있다고 보았다. 이 ‘느낌’이란 것에 대해, 화가 미야케(三宅)는 자연을 사생함에 있어 절대적인 스케치, 절대적인 정직(正直)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사진(写真)인데 거기에는 ‘느낌’이란 것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을 대할 때의 ‘느낌’을 사생의 핵심으로 보았다. 미야케가 고모로(小諸)의 자연을 스승 삼아 사생에 몰두할 때,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도 “문학 미술의 기초인 사생”을 통해 문장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것은 그의 “자연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유롭게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새롭게 우러나온 때 역시 메이지 30년대였다”는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도손(藤村)이 회화의 사생을 수필에 도입시킨 점을 필두로 하여 도손과 회화의 관련여부를 짚어보고, 수필 창작에 새롭게 시도한 사생 동기와 그 의미를 구한다. 나아가 도손이 실생활 스케치를 통해 그가 지향하고자 한 삶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아울러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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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 30년대(1897~1906), 사생 방법이 모든 문학 장르에 활발히 수용되었던 것은 오감(五感) 중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중시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자연을 사생함에 있어, 화가들...

    메이지 30년대(1897~1906), 사생 방법이 모든 문학 장르에 활발히 수용되었던 것은 오감(五感) 중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중시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자연을 사생함에 있어, 화가들이 대상을 색과 선으로 재현해 내듯이, 작가들은 언어로 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근대적 사고에서 시도되었다. 회화의 사생을 산문에 도입한 사람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로, 그는 나카무라 후세츠(中村不折)의 도움을 받아 과장(誇張)과 공상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묘사, 즉 사생문을 시도했는데,『작은 정원 감상(小園の記)』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사생문이란 명칭도 시키(子規)에 의해 서사문에서 유래된 것이며, 사생문의 발전은『먹물 한 방울(墨汁一滴)』(1901)과 같은 수필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사생이란 말은 당시의 문단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그 활동은 미약한 상황이었다.
    이후 1907년 3월《문장세계(文章世界)》에〈사생과 사생문〉이란 제목의 특집이 실렸는데, 이는 현 문단에서 사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음을 반증하는 예라 하겠다. 다카스(高須芳次郎)는 “문학사 연구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보물 가운데 사생문, 미문(美文), 기행문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문단에 가장 유력한 파동을 일으킨 것이 사생문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의 경우는, 문학계에 뛰어난 문학이 없는 이유가 사생을 경멸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그 스스로 사생을 통한 문장 혁신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는 사생문의 생명은 자연에서 직접 맨손으로 잡는 참신함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한편 호케츠(抱月)는 현 문단의 사생문을 두 종류로 파악했는데, 하나는 미완성이며 무형식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작가 내부의 생명 즉 ‘느낌’으로 쓰여진 통일된 문장에 일종의 형식이 있다고 보았다. 이 ‘느낌’이란 것에 대해, 화가 미야케(三宅)는 자연을 사생함에 있어 절대적인 스케치, 절대적인 정직(正直)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사진(写真)인데 거기에는 ‘느낌’이란 것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을 대할 때의 ‘느낌’을 사생의 핵심으로 보았다. 미야케가 고모로(小諸)의 자연을 스승 삼아 사생에 몰두할 때,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도 “문학 미술의 기초인 사생”을 통해 문장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것은 그의 “자연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유롭게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새롭게 우러나온 때 역시 메이지 30년대였다”는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도손(藤村)이 회화의 사생을 수필에 도입시킨 점을 필두로 하여 도손과 회화의 관련여부를 짚어보고, 수필 창작에 새롭게 시도한 사생 동기와 그 의미를 구한다. 나아가 도손이 실생활 스케치를 통해 그가 지향하고자 한 삶의 형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아울러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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