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우선 토대론의 부활과 함께 최근 많이 논의되어온 무어의 논변에 대한 여러 상충되는 평가에 주목할 것이다. Moore I.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II. 손이 있다. III. 따라서 외적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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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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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연구는 우선 토대론의 부활과 함께 최근 많이 논의되어온 무어의 논변에 대한 여러 상충되는 평가에 주목할 것이다. Moore I.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II. 손이 있다. III. 따라서 외적 세계가...
연구는 우선 토대론의 부활과 함께 최근 많이 논의되어온 무어의 논변에 대한 여러 상충되는 평가에 주목할 것이다.
Moore
I.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II. 손이 있다.
III. 따라서 외적 세계가 존재한다.
일견 무어의 논증을 평가하는 데 있어 경험의 직접 정당화 가능성은 상당히 관련성이 많아 보인다. 왜냐하면 위의 논증에서 I 이 II를 직접 정당화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궁극적으로 III을 합당하게 주장할 수 있느냐와 밀접히 연관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당성 전이 실패를 주장하는 라이트나 데이비스같은 철학자들은 무어의 논증에 있어 I이 II를 뒷받침하는 정당성이 III으로 전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III으로 정당성이 전이하지 않는 이유가 III에 대한 믿음의 정당성이 가정되어야 만 I이 II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외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특수한 가정을 해야 만이 손이 있어 보이는 경험이 손이 있음에 대한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지, 만일 외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정당하게 확보할 수 없다면, 경험은 인식론적 역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소위 도그마티즘(dogmatism)을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은 착시와 환각의 가능성으로부터 지각에 대한 일반적 회의주의를 도출하는 것에 대해 반발한다. 어떤 참인 지각 경험에 대해서도 물론 그것과 주관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환각이 존재한다. 만일 내가 환각을 가지고 있다면, 아예 손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손이 없는 통속의 뇌라고 해보자. 이런 경우에는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통속의 뇌와 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나의 경험은 인식론적 역할을 할 수 없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비록 환상은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결코 외적 대상을 직접 지각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내 앞에 손이 있다면 그리고 참인 지각을 하고 있다면 손에 대한 나의 믿음은 즉각적으로 정당화된다. 아무런 복잡한 전제가 필요하지 않다. 나는 단지 정보를 채집할 뿐이다.
만일 내가 통속의 뇌이라는 독립적 증거가 있다면, 나는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상황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의 경험은 최소한 초견적 정당화(prima facie justification)을 제공할 수 있는 것 같다. 도그마티즘의 핵심적 주장은 자신의 경험이 잘못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에 대한 긍정적 증거가 부재하다면 경험 자체만으로 믿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그마티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험이 배경 가정없이 어떻게 초견적 정당화라도 제공할 수 있는 지 의아해 할 것이다. 여기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일단 도그마티즘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 상당히 염려스러운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최근 즉각적 정당화를 비판하는 철학자들이 지적하는 점이다. 일단 초견적 정당화가 허용되면 폐쇄성원리(the closure principle)에 의해 무어는 쉽게 외적 세계의 존재를 도출할 수 있게 되는 데 이런 방식으로 관념론의 배격하는 것은 존중받을 만한 철학이 못 된다는 것이다. 무어의 논변은 회의주의에 대한 지극히 부적절한 논변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경험의 즉각적 정당화를 인정한다면 바로 문제시되는 그러한 방식의 지식 확보(the problem of of "easy knowledge")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즉각적 정당화를 옹호하기 위해 위와 같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탐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