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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芬皇寺의 창건시기와 배경에 대한 재검토 = A Study on the Backgrounds of Building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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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backgrounds of building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hich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634) as a royal temple of Shilla.
    Based on the Samguksagi, which recorded that the temple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634), it’s been argued that they started its construction the year she’s crowned and completed it in only two years. However, the old dominant argument has failed to consider the planning and preparation period before actual construction and only focused on the mission of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hich means “the Queen’s Buddhist temple,” and the relations of the queen’s ruling system.
    A Buddhist temple usually goes through the stages of a pryer, selecting the site, gathering materials, and other preparations before actual construction starts. Thus it’s difficult to believe that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 in 634. It’s more logical to assume that its conception began in late King Jinpyeong’s rule considering all those preparations required before actual construction.
    In late King Jinpyeong’s rule, Shilla was in confusion due to the attacks from Baekje and Goguryeo externally and the succession issue internally. Having no successor, King Jinpyeong tried to introduce a ruling system of queen by the name of “Seonggolnamjin” based on his political supports. He needed to emphasize the legitimacy of his successor as the main line of the descent in the Seonggol royal family and exercise the royal authority for his successor. Realizing that the ruling system of queen contradicted with his Seokjong concept, he adopted the Jeonryunseongwang concept as the new ruling system of his successor in order to overcome the contradiction. In the end,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not only served his political intentions of promoting the legitimacy of Seonggol and the absolute natural need for the ruling system of queen, but also was the starting point to implement the ruling ideology of the Seonggol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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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backgrounds of building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hich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634) as a royal temple of Shilla. Based on the Samguksagi, which recorded that th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backgrounds of building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hich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634) as a royal temple of Shilla.
    Based on the Samguksagi, which recorded that the temple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634), it’s been argued that they started its construction the year she’s crowned and completed it in only two years. However, the old dominant argument has failed to consider the planning and preparation period before actual construction and only focused on the mission of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hich means “the Queen’s Buddhist temple,” and the relations of the queen’s ruling system.
    A Buddhist temple usually goes through the stages of a pryer, selecting the site, gathering materials, and other preparations before actual construction starts. Thus it’s difficult to believe that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was completed in the third year of Queen Seondeok’s reign in 634. It’s more logical to assume that its conception began in late King Jinpyeong’s rule considering all those preparations required before actual construction.
    In late King Jinpyeong’s rule, Shilla was in confusion due to the attacks from Baekje and Goguryeo externally and the succession issue internally. Having no successor, King Jinpyeong tried to introduce a ruling system of queen by the name of “Seonggolnamjin” based on his political supports. He needed to emphasize the legitimacy of his successor as the main line of the descent in the Seonggol royal family and exercise the royal authority for his successor. Realizing that the ruling system of queen contradicted with his Seokjong concept, he adopted the Jeonryunseongwang concept as the new ruling system of his successor in order to overcome the contradiction. In the end, the Bunhwang Buddhist Temple not only served his political intentions of promoting the legitimacy of Seonggol and the absolute natural need for the ruling system of queen, but also was the starting point to implement the ruling ideology of the Seonggol roya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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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왕실사원으로서 신라 善德王 3年(634)에 완성된 芬皇寺의 창건배경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분황사는 선덕왕 3년에 완성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여왕의 즉위와 함께 건립되어 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었다는 견해가 지금까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찰의 건립에 앞선 계획단계와 준비기간 등은 감안하지 않고 ‘아름다운 임금의 절’이라는 뜻의 ‘분황사’라는 寺名을 오로지 선덕왕과의 관계에만 주목한 결과이다.
    사찰의 창건은 발원부터 사지선정, 자재준비 등과 같은 준비기간을 거쳐 착공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선덕왕이 창건하여 즉위 3년이 되는 634년에 완성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착공이전의 여러 준비과정들을 고려할 때, 늦어도 眞平王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진평왕의 집권 후반기는 밖으로는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으로, 안으로는 왕실의 후계문제로 매우 혼란스런 시기였다. 後嗣가 없었던 진평왕은 지지세력의 정치력을 기반으로 ‘聖骨男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왕후계 구도를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진평왕은 후계자의 성골왕실 적통으로서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뒤이을 왕실의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여왕후계 구도는 진평왕의 釋種觀念과 모순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륜성왕관념을 후계왕실의 새로운 이념체계로 삼았다. 결국 분황사는 성골의 정통성과 여왕체제의 당위성을 표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성골왕실의 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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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왕실사원으로서 신라 善德王 3年(634)에 완성된 芬皇寺의 창건배경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분황사는 선덕왕 3년에 완성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여...

    본 논문은 왕실사원으로서 신라 善德王 3年(634)에 완성된 芬皇寺의 창건배경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분황사는 선덕왕 3년에 완성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여왕의 즉위와 함께 건립되어 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었다는 견해가 지금까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찰의 건립에 앞선 계획단계와 준비기간 등은 감안하지 않고 ‘아름다운 임금의 절’이라는 뜻의 ‘분황사’라는 寺名을 오로지 선덕왕과의 관계에만 주목한 결과이다.
    사찰의 창건은 발원부터 사지선정, 자재준비 등과 같은 준비기간을 거쳐 착공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선덕왕이 창건하여 즉위 3년이 되는 634년에 완성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착공이전의 여러 준비과정들을 고려할 때, 늦어도 眞平王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진평왕의 집권 후반기는 밖으로는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으로, 안으로는 왕실의 후계문제로 매우 혼란스런 시기였다. 後嗣가 없었던 진평왕은 지지세력의 정치력을 기반으로 ‘聖骨男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왕후계 구도를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진평왕은 후계자의 성골왕실 적통으로서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뒤이을 왕실의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여왕후계 구도는 진평왕의 釋種觀念과 모순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륜성왕관념을 후계왕실의 새로운 이념체계로 삼았다. 결국 분황사는 성골의 정통성과 여왕체제의 당위성을 표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성골왕실의 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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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賢玉, "女性成佛의 근거와 그 의미" 불교문화연구원 (40) : 263-27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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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장지훈, "한국의 고대 미륵신앙 연구" 집문당 1997

    4 南東信, "한국 고대불교의 국가관․사회관" (4) : 1993

    5 平川彰, "초기대승불교의 종교생활" 민족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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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조경철, "신라의 여왕과 여성성불론" 한국역사연구회 (71) : 127-15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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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약칭 勝鬘經) T.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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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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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5 0.55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8 0.47 0.972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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