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우 몬시뇰(1922~2009)은 해방 이후 한국인에 의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제였으며,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열심히 공부한 학자였다. 그의 등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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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Abstract)
최석우 몬시뇰(1922~2009)은 해방 이후 한국인에 의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제였으며,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열심히 공부한 학자였다. 그의 등장은 ...
최석우 몬시뇰(1922~2009)은 해방 이후 한국인에 의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제였으며,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열심히 공부한 학자였다. 그의 등장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제대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 연구자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이다. 동시에 프랑스인이나 일본인과 같은 외국인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인에 의하여 교회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주도되는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이었다.
몬시뇰은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통사 저술을 계속해서 강조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그는 시대사 연구를 계속해서 확대시켜 나가면서, 한국천주교회사의 거의 전 시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통사의 저술에 분류사 저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면서, 다양한 분류사 연구를 통해서 통사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가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통사의 저술을 위해서 교회론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시대구분을 설정하였다. 이를 통해서 한국천주교회사의 내용들을 선교사에서 순교사 및 문화사로, 그리고 다시 민족사를 거쳐서 구세사적 접근으로 나아가는 변화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몬시뇰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어떠한 사관으로 행해야 하는가를 또한 깊이 고민하였다. 처음에 그는 교회사가 역사학과 신학이라는 두 개의 영역에 속하는 학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그는 교회사 연구와 역사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사료론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회사가 민족사만이 아니라, 그리고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추구하는 세계화라는 주제까지 지향해야 한다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그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교회사가 신학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교회 개념의 적용이 교회사 연구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그 방향은 구세사적 해석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몬시뇰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는 한국천주교회사 속에서 그 역사적 위치를 뚜렷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대해서 ‘최석우 사학’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Monsignor Choi Seok-woo(1922~2009) was a priest who thought about what Korean Catholic Church should do after liberation, and was a scholar who studied hard to find the answer. His appearance marks the birth of a well-trained professional researcher i...
Monsignor Choi Seok-woo(1922~2009) was a priest who thought about what Korean Catholic Church should do after liberation, and was a scholar who studied hard to find the answer. His appearance marks the birth of a well-trained professional researcher in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t the same time, it was to forsee the full-fledged study of church history by Koreans, not by foreigners such as French or Japanese.
Monssignor continued to emphasize the introductory whole history writing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fter receiving Ph.D, he continuously expanded his study of the history of the times, covering almost all periods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In addition, considering that writing the taxonomy is very important for the writing of the whole history, he tried to fill the contents of the whole history through various Categorized History. Based on this research, he set up an independent period division based on ecclesiastical theory for the writing of the whole history. Through this, he tried to show the process of changing the contents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from history of missionary, to history of martyrdom, and cultural history, and then through national history to salvation approach.
Monsignor also pondered what kind of view of history he should carry out regarding the study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t first he considered church history as a discipline under two areas; history and theology. He focused on study of the historical records for establishing a proper relationship between research of church history and history. And he understood that church history should be directed not only to national history but also to the theme of globalization, which seeks to relate to world history. This approach eventually led him to gradually emphasize church history as theology. This is because he saw the application of the church concept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study of church history. And at the same time, he believed that salvational interpretation should be applied to that direction of the study.
In this way, Monsignor’s study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clearly holds its historical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 Church. Then, it might be enough to call his study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s ‘Choi Seok-woo History’.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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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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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8 | 0.48 | 0.4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2 | 0.39 | 1.107 | 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