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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들의 임란 倡義精神과 의병 활동 = Seonbi's Spirit behind Raising Militia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Militia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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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568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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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dentified the spirit behind raising militias by analyzing the appeals and circular letters seonbi, or virtuous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wrote to raise militia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regarded in them the...

      This study identified the spirit behind raising militias by analyzing the appeals and circular letters seonbi, or virtuous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wrote to raise militia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regarded in them the spirits of seonbi. Furthermore, the study examined seonbi’s militia activities based on the spirits of seonbi and tried to attach meaning to the activities.
      The materials used for the analysis here included a total of 41 written appeals and circular letters carried in Nanjung Jabrok. Out of the 41 works, 34, or about 83 percent of the entire works, were created in the year 1592 alone. This confirms that in the early day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militias were actively raised, performing positive functions. Through the analysis of the key words in the written appeals and circular letters, the motive for raising militias could be guessed, and, based on the motive, the spirits of seonbi, which affected the raising of militias could be identified.
      The identified spirits of seonbi consisted of great cause, loyalty, serving one’s country, responsibility and revenge. These five spirits were not different but correlated. Seonbi’s raising militias was a manifestation of their spirits. That is, their militia activities were the realization and application of their spirits in reality. The militia activities, which showed a right direction for the community to follow, were what leaders were required to perform. Although the cause of raising militias was reasonable, one was required to have a good reputation to raise and lead militias composed of ordinary people. Seonbi had such reputation as they always tried to lead a studious and virtuous life.
      Seonbi’s militia activities in the early day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gave a glimmer of hope to the nation going into decline. Being aware of the importance of militias, the Joseon government encouraged the raising of militias to wage all out war against Japanese forces and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That is, seonbi’s militia activities became a hope that could save the falling nation. Their militia activities served as momentum uniting all the people who were estranged from the government. In addition, they reversed the flow of the war, which was developing favorably for Japan. Thanks to militia activities, the Joseon government was able to have time to improve its military system and collect and rearrange government troops on land. Although militia activities had a positive effect only for a short period and did not achieve much in terms of military aspects, it is certain that they played a crucial role for the survival of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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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선비들의 임란 창의 격문이나 통문의 분석을 통해 창의 정신을 추출하고, 그를 선비정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선비정신에 입각한 그들의 의병 활동상을 살피면서 의미를 부여하...

      본고는 선비들의 임란 창의 격문이나 통문의 분석을 통해 창의 정신을 추출하고, 그를 선비정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선비정신에 입각한 그들의 의병 활동상을 살피면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분석에 활용된 자료는 『난중잡록』에 실린 총 41편에 달하는 격문과 통문이었다. 그 중 임진년인 1592년 한 해 동안에 작성된 것이 34편으로 전체의 약 83%에 달할 정도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의병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한 때가 역시 임란 초기였음을 확인케 해준다. 격문과 통문에 나타난 핵심어의 분석을 통해 창의의 동기를 짐작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창의에 영향을 미친 선비들의 정신을 추출할 수 있었다.
      추출된 선비 정신은 大義, 忠誠, 爲國, 責任, 復讎 등 다섯 가지였다. 선비들의 창의는 평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선비정신의 발로였다. 선비들의 의병 활동은 선비정신의 현실 세계에서의 구현이자 적용이었던 것이다. 이는 위기를 맞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부여한 행위로서 지도자의 마땅한 역할이었다. 창의의 명분이 합당하다고 하더라도 많은 백성들을 의병 휘하에 모우고 거느리기 위해서는 높은 명망이 요구되었는데, 이는 평소 학문을 닦으면서 인격 도야에도 힘쓴 선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란 초기 선비들의 의병 활동은 꺼져가던 국운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행위였다. 의병의 중요성을 인식한 조선 정부도 의병 창의를 독려하여 총력전을 펼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탱시킬 수 있는 힘인 희망을 선비들이 행동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백성들의 인심이 더 이상 이반되지 않고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우세하게 전개되던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의병의 활약으로 체제 정비를 위한 시간을 번 조선은 차츰 육지의 관군을 수습하여 재정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의병의 긍정적 활동이 단기간에 그쳤고 전투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성취한 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명맥이 의병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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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학봉선생기념사업회, "학봉의 학문과 구국활동" 여강출판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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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조원래,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창작과 비평사 123-14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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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계승범, "임진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가치" 선인 79-109, 2009

      7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임진의병사의 재조명"

      8 정해은, "임진의병사의 재조명"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5-34, 2012

      9 최영희, "임진왜란중의 사회동태" 한국연구원 1975

      10 이장희, "임진왜란사 연구" 아세아문화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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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장희, "지산 조호익과 임진왜란" 26 : 67-81,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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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장희, "임진왜란사 연구" 아세아문화사 2007

      11 이 욱, "임진왜란기의 경상도 의병 양상 , 임진전쟁, 그리고 420년의 기억"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203-217, 2012

      12 최효식, "임진왜란기 영남의병연구" 국학자료원 2003

      13 정해은, "임진왜란기 경기 의병의 활동양상과 특징" 한국사학회 (105) : 149-18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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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박재광,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3-99, 2005

      16 한일관계사연구논집편찬위원회,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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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23 통합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2-28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퇴계학과 한국문화 -> 퇴계학과 유교문화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8-23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퇴계학과 학국문화 -> 퇴계학과 한국문화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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