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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 후기 고운사의 중창과 楓潭系-조선후기 불교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 Reorganization of Buddhism and Pungdam School(楓潭系) at Gounsa Temple(孤雲寺)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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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order to investigate the growth of Goun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study examines the activities of temple reconstruction and monks in northern Gyeongsangdo, and identifies the growth factors of Gounsa Temple and the genealogy of Gounsa monks.
      Buddhism took the opportunity for revival after Japanese invasion in 1592. The performance of monk soldiers during Japanese invasion in 1592 could change the negative perspectives of the ruling class on Buddhism. The privatization of land and development of agriculture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me the economic backgrounds for reconstructing temples damaged by the war. Buddhist monks led the reconstruction of temples in the Northern Gyeongsang Province as contributing expenses after the war.
      Yaun Siseong(野雲時聖), a monk from Andong, had tried to rebuild temples in Andong areas, and his successors later entered Gounsa and took a central position.
      Gounsa Temple prospered in earnest in the late Joseon Dynasty, especially after the 18th century. The monks of Gounsa Temple reconstructed the temple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family, and the monks themselves provided the financial resources. In the process, the successors of Pungdam Uisim(楓潭義諶), a disciple of Hwanseong Jian(喚醒志安), came to take the initiative of Gounsa. Hamhong Chineung(涵弘致能) and Suwol Youngmin(水月永旻) who were active in the 19th century, are representative mo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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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order to investigate the growth of Goun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study examines the activities of temple reconstruction and monks in northern Gyeongsangdo, and identifies the growth factors of Gounsa Temple and the genealogy of Gou...

      In order to investigate the growth of Gounsa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is study examines the activities of temple reconstruction and monks in northern Gyeongsangdo, and identifies the growth factors of Gounsa Temple and the genealogy of Gounsa monks.
      Buddhism took the opportunity for revival after Japanese invasion in 1592. The performance of monk soldiers during Japanese invasion in 1592 could change the negative perspectives of the ruling class on Buddhism. The privatization of land and development of agriculture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me the economic backgrounds for reconstructing temples damaged by the war. Buddhist monks led the reconstruction of temples in the Northern Gyeongsang Province as contributing expenses after the war.
      Yaun Siseong(野雲時聖), a monk from Andong, had tried to rebuild temples in Andong areas, and his successors later entered Gounsa and took a central position.
      Gounsa Temple prospered in earnest in the late Joseon Dynasty, especially after the 18th century. The monks of Gounsa Temple reconstructed the temple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family, and the monks themselves provided the financial resources. In the process, the successors of Pungdam Uisim(楓潭義諶), a disciple of Hwanseong Jian(喚醒志安), came to take the initiative of Gounsa. Hamhong Chineung(涵弘致能) and Suwol Youngmin(水月永旻) who were active in the 19th century, are representative mo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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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조선후기 고운사의 성장을 규명하기 위하여 경북 북부지역의 사원 중창과 승려들의 활동을 살펴보고 고운사의 성장요인과 고운사 승려들의 법맥을 살펴본 논문이다.
      조선왕조는 건국하면서 억불숭유정책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불교는 다시 부흥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동은 당시 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배층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고, 조선 후기 광범하게 진행되던 토지의 사유화와 산업의 발달은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원을 재건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성을 비롯한 안동권 사찰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확인된다. 안동권 사원의 중창 불사는 대부분 사원 소속의 승려들이 불사를 주도하고, 승려들이 재원을 염출하여 공사를 진행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 출신의 승려 野雲時聖은 생애의 대부분을 안동권 사원에서 보냈다. 시성은 주로 광흥사에서 지내면서 안동권 사원의 重創記와 勸善文류를 상당수 작성하였다. 시성의 활동은 안동, 예천, 문경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시성의 법손들이 후에 고운사로 들어가 고운사의 중심적인 법맥으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운사의 경우 17세기 전반 昭影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창이 이루어졌고, 이후 거주 승려들의 노력과 지방관의 부조를 바탕으로 사세를 크게 혁신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紙役을 비롯한 여러 잡역을 부담하고 있었으나, 1744년 영조의 御帖을 봉안하게 된 것을 계기로 지방관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을 수 있었고 19세기 중반 이후 잡역의 부담을 크게 경감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회복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楓潭義諶계 승려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고운사는 18세기 초 淨月會閒이 주석하면서 鞭羊彦機-楓潭義諶계의 승려들이 정착하였으며, 松桂懶湜, 龜巖渭成 등 환성계의 승려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환성계가 고운사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九潭展鴻과 涵弘致能(1805 ~1878), 水月永旻(1817~1893)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고운사는 楓潭義諶계의 승려들이 주도권을 쥐고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 사찰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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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조선후기 고운사의 성장을 규명하기 위하여 경북 북부지역의 사원 중창과 승려들의 활동을 살펴보고 고운사의 성장요인과 고운사 승려들의 법맥을 살펴본 논문이다. 조선왕조는 ...

      이 논문은 조선후기 고운사의 성장을 규명하기 위하여 경북 북부지역의 사원 중창과 승려들의 활동을 살펴보고 고운사의 성장요인과 고운사 승려들의 법맥을 살펴본 논문이다.
      조선왕조는 건국하면서 억불숭유정책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불교는 다시 부흥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동은 당시 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배층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고, 조선 후기 광범하게 진행되던 토지의 사유화와 산업의 발달은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원을 재건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성을 비롯한 안동권 사찰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은 확인된다. 안동권 사원의 중창 불사는 대부분 사원 소속의 승려들이 불사를 주도하고, 승려들이 재원을 염출하여 공사를 진행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 출신의 승려 野雲時聖은 생애의 대부분을 안동권 사원에서 보냈다. 시성은 주로 광흥사에서 지내면서 안동권 사원의 重創記와 勸善文류를 상당수 작성하였다. 시성의 활동은 안동, 예천, 문경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시성의 법손들이 후에 고운사로 들어가 고운사의 중심적인 법맥으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운사의 경우 17세기 전반 昭影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창이 이루어졌고, 이후 거주 승려들의 노력과 지방관의 부조를 바탕으로 사세를 크게 혁신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紙役을 비롯한 여러 잡역을 부담하고 있었으나, 1744년 영조의 御帖을 봉안하게 된 것을 계기로 지방관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을 수 있었고 19세기 중반 이후 잡역의 부담을 크게 경감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회복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楓潭義諶계 승려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고운사는 18세기 초 淨月會閒이 주석하면서 鞭羊彦機-楓潭義諶계의 승려들이 정착하였으며, 松桂懶湜, 龜巖渭成 등 환성계의 승려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환성계가 고운사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九潭展鴻과 涵弘致能(1805 ~1878), 水月永旻(1817~1893)이 활발히 활동하면서 고운사는 楓潭義諶계의 승려들이 주도권을 쥐고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 사찰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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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하종목, "조선후기의 사찰제지업과 그 생산품의 유통과정" 10 : 1987

      2 김남윤, "조선후기의 불교사서 <山史略抄>" 1 : 1995

      3 윤용출, "조선후기의 부역승군" 부산대 26 : 1984

      4 박병선, "조선후기 원당의 정치적 기반" 25 : 2002

      5 김형수, "조선후기 안동권 사원의 동향-사원의 重創과 관련하여-" (4) : 2003

      6 오경후, "조선후기 승역의 유형과 그 폐단" 107 : 2005

      7 이수환, "조선후기 서원연구" 일조각 2001

      8 여은경, "조선후기 산성의 승군총섭" 32 : 1987

      9 한상길, "조선후기 사찰계의 연구" 2 : 1998

      10 여은경, "조선후기 사원침탈과 승계" 9 : 1986

      1 하종목, "조선후기의 사찰제지업과 그 생산품의 유통과정" 10 : 1987

      2 김남윤, "조선후기의 불교사서 <山史略抄>" 1 : 1995

      3 윤용출, "조선후기의 부역승군" 부산대 26 : 1984

      4 박병선, "조선후기 원당의 정치적 기반" 25 : 2002

      5 김형수, "조선후기 안동권 사원의 동향-사원의 重創과 관련하여-" (4) : 2003

      6 오경후, "조선후기 승역의 유형과 그 폐단" 107 : 2005

      7 이수환, "조선후기 서원연구" 일조각 2001

      8 여은경, "조선후기 산성의 승군총섭" 32 : 1987

      9 한상길, "조선후기 사찰계의 연구" 2 : 1998

      10 여은경, "조선후기 사원침탈과 승계" 9 : 1986

      11 정광호, "조선후기 사원 雜役考" 2 : 1974

      12 남동신, "조선후기 불교계 동향과 『像法滅義經』의 성립" 113 : 2001

      13 최병헌, "조선후기 부휴선수계와 송광사 -보조법통설과 태고법통설의 갈등의 한 사례-" 1 : 1994

      14 여은경, "조선후기 대사찰의 총섭" 3 : 1987

      15 김용태, "조선중기 불교계의 변화와 ‘서산계’의 대두" 서울대 44 : 2000

      16 박용숙, "조선조 후기의 승역에 대한 고찰" 13 : 1981

      17 김갑주, "조선시대 사원경제의 연구" 동화출판공사 1983

      18 이광린, "이조후반기의 사찰제지업" 17・18 : 1960

      19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20 도진순, "백범일지" 돌베개 1997

      21 김갑주, "노산 유원동박사 화갑기념논총 한국근대사회경제사연구" 정음문화사 1985

      22 우정상,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전에 대하여" 1 : 1963

      23 김갑주, "남북한산성 義僧番錢의 종합적 고찰" 2 : 1988

      24 허흥식, "고려불교사연구" 일조각 1986

      25 "高麗史"

      26 "韓國寺刹全書(上·下)"

      27 "霜峰門譜"

      28 野雲時聖, "野雲大禪師文集"

      29 野山明遠, "野山集"

      30 "輿地圖書"

      31 采永, "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

      32 金肅鉉, "莘圃逸稿"

      33 龍城震鐘, "白龍城大宗師叢書"

      34 涵弘致能, "涵弘堂集"

      35 "永嘉誌"

      36 東溪敬一, "東溪集"

      37 梵海覺岸, "東師列傳"

      38 "朝鮮王朝實錄"

      39 "朝鮮寺刹史料"

      40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41 "新增東國輿地勝覽"

      42 "慶北佛敎"

      43 姜裕文, "慶北五本山古今記要"

      44 金彦璣, "惟一齋實紀"

      45 表忠祠, "宗正案錄"

      46 "佛敎"

      47 "(신)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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