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조선 초 자기 수취 구조는 한국도자사 연구 분야에서 흥미로운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고려 말 조준의 상소문에 보이는 ‘거안직납(據案直納)’의 실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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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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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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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고려 말∼조선 초 자기 수취 구조는 한국도자사 연구 분야에서 흥미로운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고려 말 조준의 상소문에 보이는 ‘거안직납(據案直納)’의 실현 여...
고려 말∼조선 초 자기 수취 구조는 한국도자사 연구 분야에서 흥미로운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고려 말 조준의 상소문에 보이는 ‘거안직납(據案直納)’의 실현 여부와 조선 초 자기를 공납하는 데 사옹방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였는가에 집중되었다.
이 글에서는 조준이 제안한 ‘거안직납’이 곧 시행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조준은 상소문에서 사옹을 비롯한 애마(愛馬)가 각도(各道)에 사람을 파견, 내용(內用)을 빙자하여 물품을 사취(私取)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고려 말 사옹은 정식 관청인 사선서(司膳署)를 대신하여 어선(御膳)을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사옹은 내용자기(內用磁器)를 징수할 수 있었다. 이성계 등 고려 말의 개혁 세력은 정권을 장악한 후 사족 중심의 지배체제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왕의 측근세력인 애마를 개혁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조준은 애마가 자금과 물품을 확보하는 루트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이는 물품의 수취 과정에서 애마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성계 등이 정권을 잡은 후 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고려할 때 조준이 주장한 자기 공납제는 그대로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 초 자기 공납 과정에서 사옹방의 역할을 파악하는 데는 1417년 호조에서 기명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올린 사의(事宜)에 있는 “外貢砂木器 以司饔房納施行”의 해석이 중요하다. 이 문장이 고려말 사옹에 의한 자기 수취 구조가 1417년까지 유지되었다는 견해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納’을 ‘받아들이다’로 보고 사옹방이 지방에서 도성으로 운송한 공납자기의 봉퇴(捧退)를 담당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당시 사옹방에서 어선(御膳)에 관한 물선(物膳)을 받아들이는 일을 담당한 일반적인 상황과도 부합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One of the interesting controversial issues among the porcelain history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s regarding when the porcelain tribute system was implemented. Opinions of the scholars regarding this issue are divided into two. Some see that the p...
One of the interesting controversial issues among the porcelain history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s regarding when the porcelain tribute system was implemented. Opinions of the scholars regarding this issue are divided into two. Some see that the porcelain tribute system was begun immediately by the suggestion in the letter of Jo Joon to the king around December 1389. Others insist that porcelains were collected in person by Saongbang for tributes through dispatching people to each province until 1417. The faction of Yi Seong-gye took the power since Wihwado Retreat. The direction of the reform that they pursued was described in detail in the letter of Jo Joon. Jo Joon pointed out the corruption of Saong and Aema that defrauded items from people by dispatching officials to each province. To solve such problems, Jo Joon insisted to make Aema supply things for the king through tributes. He aimed to recover the dominance system centering around noblemen, including reforming Aema that seized were the power closely associated with the king. In order to reform Aema, Jo Joon tried to block their routes that had secured funds and things from the people. Such attempt was specified by expanding the tribute system at the end of the Goryo Dynasty. It is suspected that the porcelain tribute system was implemented after Jo Joon"s submission of his letter to the kind around December 1389.
In figuring out the roles of Saongbang(司饔房) under the tribute system at the early Joseon Dynasty, interpretation of “外貢砂木器 以司饔房納施行”which were recorded by Hojo (Ministry of Finance in Joseon Dynasty) in 1417 in order to solve the evil effects of registered tributes. Depending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phrase, it might think that Saong"s way to receive porcelains in person at the end of the Goryo Dynasty sustained in the Joseon Dynasty. This study interpreted ‘納’ as "to accept" and Saongbang was in charge of acceptance and refusal of porcelain tributes delivered to the capital city from each province. It coincides with the general circumstances at that time under which Saongbang was in charge of acceptance and refusal of royal present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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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근대 주권 개념의 수용 양상 -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1909년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에 대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와 지식인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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