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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조선어와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의 조선적 특징과 쟁점 = A Study on Modern Joseon Language and Esperanto: The characters and issues of Esperanto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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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early modern times, Joseon Language had relations with many different languages. Its dual language situation with Japanese was prominent during the period, when its relations with English, Chinese, French, Russian, and German were not to be missed....

      In early modern times, Joseon Language had relations with many different languages. Its dual language situation with Japanese was prominent during the period, when its relations with English, Chinese, French, Russian, and German were not to be missed. Announced by Zamenhof in 1887, Esperanto was an artificial and common international language that played an essential role in the language landscape during the period. Esperanto was examined in its relations with anarchists in many cases, but one can see that it encompasses much more than that in reality by examining its application to Joseon and its operational methods of discourse in it.
      The Esperanto movement peaked in Korea in the former half of the 1920s. There were Esperanto lessons all over the nation; books to help learners study the language for themselves were published; and newspapers and magazines had a regular section to teach the language. It was a trend those days that language study was widely spread among laymen that did not specialize in linguistics. The fact that Esperanto is an easy language to learn and use in a short period of time was particularly emphasized. In the second half of the 1920s, linguists that followed the footsteps of Ju Shi-gyeong started to engage in a language movement actively around the Joseon Language Research Institute(Joseon Language Society). There were a couple of common features between the Esperanto movement and the Joseon Language movement: first, the two movements honored and commemorated their respective creators, Zamenhof and Ju Shi-gyeong(King Sejong and Hangul Proclamation Day); and secondly, both of them provided an ongoing series of lessons to teach the two languages.
      Esperanto faced a criticism that it did not reflect the life and habits of a people since it was an artificial language. Based on the perception that Joseon Language displayed confusing aspects with no rules as a natural language, there were efforts to equip it with modern language features through grammar and standard language establishment during those days. Esperanto and Joseon Language met each other through a concept of “arranged natural language.” It was argued that the former was not an artificial language completely but a natural language that had been arranged and that the latter should go through an arrangement process for more convenient acquisition. There was another argument that Esperanto should actively be introduced as a world language since Joseon was a country that was lagging behind other countries and had a history of being colonized, thus needing to introduce a common world language for the reception of the world and globality. The introduction of Esperanto was considered as the realization of directionality for the original texts. The globality that colonized Joseon should reach was a permanent and simplehearted point beyond individuals and peoples. There was a perception that Joseon people and literature would join the world people and literature the moment they used Esperanto.
      Entering the 1930s, the patterns of discourse about a natural or artificial language and an ethnic or world language around Esperanto changed. Those changes were attributed to the changes to the perceptions and imagination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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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근대 조선어는 여러 언어와의 관련 하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어와의 이중 언어 상황이 부각되는 시기이지만, 영어, 한어(중국어), 법어(프랑스어), 아어(러시아어), 덕어(독일어) 등과의 관련...

      근대 조선어는 여러 언어와의 관련 하에서 형성되었다. 일본어와의 이중 언어 상황이 부각되는 시기이지만, 영어, 한어(중국어), 법어(프랑스어), 아어(러시아어), 덕어(독일어) 등과의 관련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1887년 자멘호프가 발표한 인공어이자 국제공통어인 에스페란토 역시 이 시기 언어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에스페란토는 아나키스트와의 연관성 하에서 살피는 경우가 많지만, 에스페란토의 식민지 조선에의 적용과 담론의 작동 방식을 살피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포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1920년대 전반기에 가장 융성하였다. 에스페란토 학습을 위한 강습이 전국 각지에서 열렸으며,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독습서가 발간되었고, 신문과 잡지에 에스페란토를 가르치는 고정적인 학습란이 마련되었다.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은 문외한의 언어 학습이 만연했던 것이 당시의 풍조였다. 에스페란토가 단기간에 학습하여 써먹을 수 있는 쉬운 언어임이 특히 강조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주시경의 뒤를 이은 어학자들이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한 어문운동을 활발하게 벌이기 시작했는데, 앞선 에스페란토 운동과 조선어문운동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로, 두 운동은 언어의 창시자인 자멘호프와 주시경(세종대왕이나 한글날)을 기리고 기념했으며, 둘째로 두 운동은 언어 학습을 위한 강좌를 끊임없이 개최하였다.
      에스페란토는 인공어이기에 한 민족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당시 조선어는 자연어로서 규칙 없이 혼란스러운 면모를 보인다는 인식 아래 맞춤법과 표준어 등의 제정을 통해 근대적 언어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에스페란토와 조선어는 ‘정리된 자연어’라는 개념으로 만나는데, 전자의 경우 자연어가 정리되어 있는 것일 뿐 완전한 인공어는 아니라는 주장, 그리고 후자의 경우 습득하기에 편하도록 언어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에스페란토는 세계어로서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조선은 뒤쳐지는 나라였고, 그래서 식민지가 된 전력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세계와 세계성의 도입을 위해 공통의 세계어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페란토를 도입하는 것은 원문에 대한 직접성을 실현하는 일로 여겨졌다. 식민지 조선에서 도달해야 할 세계성은 개인과 민족을 벗어난, 항구적이고 순정적인 지점이었다.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순간 조선인과 조선문학은 세계인, 세계문학의 위치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 에스페란토를 둘러싼 자연어와 인공어, 민족어와 세계어에 대한 담론의 양상이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상상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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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글"

      2 김삼수,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사" 숙명여대출판부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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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영미, "한 근대 시인의 오뇌와 그 궤적―안서의 경우" 현대문학이론학회 (33) : 151-17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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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김성연, "영웅에서 위인으로―번역 위인전기 전집의 기원" 소명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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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윤식, "에스페란토 문학을 통해 본 김억의 역시 고" 한국어교육학회 14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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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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