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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위 불교미술에 보이는 북방적 요소 고찰 = A Study on Northern Elements in Northern Wei Buddhis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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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19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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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그동안 학계에서는 북방 유목민이었던 선비족이 중국을 통치하기 위해 선비족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한족의 정신, 문화, 제도 등 전반적으로 동화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우세하였다. 그런 가운데북위의 불교미술도 북방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족에 동화되어 ‘중국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북위의 불교미술 안에 북방 유목민적 요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남조의 불교미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위 불교미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북방 유목민이었던 선비족 본연의 문화와 민족성에바탕을 둔 소위 ‘북방적 요소’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았다.
      첫째, 북위는 효문제(孝文帝)가 단행한 한화(漢化)정책과 낙양천도를 통해 급속히 중국화가진행되기는 했지만, 운강석굴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이 총 7구의 대규모의 불상을 제작함으로써 북방 유목민을 이끈 리더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더구나 이러한 불상에 황제의 이미지를투영해서 황제숭배 사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지역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한 교각자세의 미륵보살상을 다수 제작함으로써 유목민의 왕의 형상과도 일치하는 도상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세가 탁발족만이 가진 고유한풍습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화를 추진한 이후에는교각보살상이 급감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북방적 요소로 볼 수 있다.
      셋째, 북방 민족의 특성으로 언급할 수 있는 모계 숭배 사상이 태화(太和, 477-499)나 효창(孝昌, 525-528)년간에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는 한족의 부계사회와는 달리 모계의 권력이 강했던 북방 유목민으로서의 선비족의 풍습이 당시의 불교미술의 제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북위 왕조에서 선비족 본연의 북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적어도 본격적인 한화정책이전까지는 강하게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북방민족으로서의 습성을 기반으로 어디까지나한문화를 취사선택해서 두 문화가 융합을 이룬 시기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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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학계에서는 북방 유목민이었던 선비족이 중국을 통치하기 위해 선비족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한족의 정신, 문화, 제도 등 전반적으로 동화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우세하였다. 그런 가...

      그동안 학계에서는 북방 유목민이었던 선비족이 중국을 통치하기 위해 선비족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한족의 정신, 문화, 제도 등 전반적으로 동화되었다고 보는 입장이 우세하였다. 그런 가운데북위의 불교미술도 북방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족에 동화되어 ‘중국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북위의 불교미술 안에 북방 유목민적 요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남조의 불교미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위 불교미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북방 유목민이었던 선비족 본연의 문화와 민족성에바탕을 둔 소위 ‘북방적 요소’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았다.
      첫째, 북위는 효문제(孝文帝)가 단행한 한화(漢化)정책과 낙양천도를 통해 급속히 중국화가진행되기는 했지만, 운강석굴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이 총 7구의 대규모의 불상을 제작함으로써 북방 유목민을 이끈 리더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더구나 이러한 불상에 황제의 이미지를투영해서 황제숭배 사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지역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한 교각자세의 미륵보살상을 다수 제작함으로써 유목민의 왕의 형상과도 일치하는 도상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세가 탁발족만이 가진 고유한풍습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에 관해서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한화를 추진한 이후에는교각보살상이 급감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북방적 요소로 볼 수 있다.
      셋째, 북방 민족의 특성으로 언급할 수 있는 모계 숭배 사상이 태화(太和, 477-499)나 효창(孝昌, 525-528)년간에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는 한족의 부계사회와는 달리 모계의 권력이 강했던 북방 유목민으로서의 선비족의 풍습이 당시의 불교미술의 제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북위 왕조에서 선비족 본연의 북방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은 적어도 본격적인 한화정책이전까지는 강하게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북방민족으로서의 습성을 기반으로 어디까지나한문화를 취사선택해서 두 문화가 융합을 이룬 시기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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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75 0.75 0.6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8 0.5 1.3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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