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는 5세기말의 왜왕 부(武) 이래 실로 900년 만에 중국에서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았다. 이 일은 중세에 이르러 전통적 외교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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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Japanese
051.000
학술저널
413-43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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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는 5세기말의 왜왕 부(武) 이래 실로 900년 만에 중국에서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았다. 이 일은 중세에 이르러 전통적 외교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는 5세기말의 왜왕 부(武) 이래 실로 900년 만에 중국에서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았다.
이 일은 중세에 이르러 전통적 외교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는 원래 일본에서는 607년에 쇼토쿠타이시(聖德太子)가 수 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이후, 중국과의 외교는 항상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이 이루어졌었는데, 그것이 중국에서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음으로써 중국에 신속하게 되었다는 것, 둘째는 원래 조정, 즉 천황에 있었던 외교권이 무사정권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시미츠(義滿)의 이러한 외교에 대해서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이익을 얻었으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일본의 국제적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반발하는 자도 많았다. 때문에 요시미츠가 사망하자 아들인 요시모치(義持)가 시바 요시마사(斯波義將)의 도움을 받으면서 뒤를 이어받아 명 나라와의 교섭을 계속하려고 하였으나, 시바 요시마사의 죽음으로 반대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어, 결국 요시모치는 명 나라와의 교섭을 단절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요시모치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인 요시노리(義敎)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그는 명 나라와의 통교 단절로 인해 생긴 일본의 문화적, 경제적인 침체를 해소와, 그가 지향하는 강력한 무사정권 확립을 위해 명 나라와의 통교를 재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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