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명칭으로서, 서울 북부와 경기도 고양, 양주, 의정부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삼각산은 삼국시대 이래 서울 지역의 鎭⼭으로서 여겨져 왔다. 이와 같은 삼각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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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Korean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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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31-6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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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은 북한산의 옛 명칭으로서, 서울 북부와 경기도 고양, 양주, 의정부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삼각산은 삼국시대 이래 서울 지역의 鎭⼭으로서 여겨져 왔다. 이와 같은 삼각산의 위상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다. 특히 고려전기에는 삼각산 내에 많은 사찰이 있었다는 것이 기록과 유적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를 통해 11세기 무렵에 삼각산 일원에 대한 고려 왕실의 대대적인 불교 후원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삼각산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앞선 고려시대 관련 기록은 顯宗 관련 기사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현종은 왕으로 즉위하기 이전 삼각산 神⽳寺에서 은거하였다. 또한 삼천사는 1018년 현종의 명으로 창건한 ⽞化寺의 초대 주지를 역임하였던 ⼤智國師 法鏡의 주석처로서, 현종과 법경의 깊은 인연이 이후 삼각산 불교 중흥을 이끌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각산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현종의 불교 후원은 11세기 이후 삼각산 불교에 대한 왕실의 후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왕위를 이은 정종-예종대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왕들은 삼각산에 행차하고 불사를 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숙종의 승가굴 중수 기록과 서울 영국사터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과 같은 출토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삼각산의 불교는 11세기-12세기 전반에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크게 중흥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시기에는 고려의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佛事가 삼각산 내에서 행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마애조상은 고려전기 삼각산의 불교중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자 상징적인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삼각산 내에는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승가사),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등 총 4건의 고려시대 마애조상이 있다. 이 마애조상은 모두 저부조의 제작 방식, 고려전기의 불교조각 양식이 투영되어 있는 현상 등을 통해 11-12세기 전반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이 마애조상의 조성이 고려 전기 왕실의 삼각산 지역 불교 후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현종의 승가굴 불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은 대지국사 법경의 주석처인 삼천사에 조성되어 있다. 또한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慧炤國師 ⿍賢이 창건한 院館寺刹 沙峴寺 및 弘濟院과 인접한 지역에 있어, 그 제작 배경에 고려 왕실의 南京 경영과 행차가 관련되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와 유사한 도상과 양식 특징을 지닌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역시 이와 비슷한 배경 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과 같은 분석을 통하여, 삼각산에 있는 4구의 마애조상이 고려 전기 왕실의 삼각산 불교 후원에 의거하여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뛰어난 조각 기법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4구의 마애조상은 11-12세기 전반 삼각산의 위상과 불교 중흥을 입증하는 고려 마애조상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마애조상은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조성 시기에 대한 이견이 존재해 왔다. 본고에서는 삼각산 마애조상 4구의 조성시기를 고려전기, 특히 11-12세기 전반으로 편년하며, 이를 통해 고려 마애조상 양식의 정립 단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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