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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돌하르방은 석궁왕(石弓王), 쿠빌라이 대칸의 탐라도 환생석 -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을 중심으로 = Dolharvang that is Archery King, symbolizes the Reincarnation Stone of Khubilai the Great Khan in Tamrado Island - A Research on the Focus of the Scythian Horse Riding - Sheep Nomadizing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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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65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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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1. What is Dolharvang? Inspite of many other names according to the interpretations, some scholars argue that Dolharvang is a compound noun of Харвах+vang=Harвavang(Archery King). The scholars also say that Khubilai the Great Khan who was the...

      1. What is Dolharvang? Inspite of many other names according to the interpretations, some scholars argue that Dolharvang is a compound noun of Харвах+vang=Harвavang(Archery King).
      The scholars also say that Khubilai the Great Khan who was the Founder of the Yuan(元) Empire had a vision of expanding his steppes empire and promoted the Mongolian Palace Project in the Ocean. It is said by the scholars that the Emperor thought Tamrado Island such a cornerstone as Palace on the Ocean.
      Therefore the scholars insist that Dolharvang in Tamrado(耽羅都) Island is appreciated as the phantom of Archery King Statue to be the failed dream of Khubilai the Great Khan.
      It is said that the Sheep Nomadizing at the Mongolian Steppes was reproduced in Tamrado Island being at the Non-Nomadic Zone is evaluated to be a kind of fiction.
      Because the Sheep Nomadizing Revolution at the Steppes could not be realized at any times, in the place where was not proper for the Sheep Nomadizing.
      If the Horse Raising was not connected with the Sheep Raising at the Steppes, the fighting power of mongolian horses also were not fulfilled their functions.
      And in case of the Mughul Empire(1526~1857)in the Non-Nomadic India, that was a subsidiary political organization belonging to the Empires of Chinghis Khan also did not recover the nomadic sweet home-like land and was disappeared in spite of building the greatest islamic dynasty in indian history.
      In other words, it is true that there are times and places for everything according to actors’ and actress’ abilities. However, the scholars talk about that the statue of Acheryking is smiling at the site of the Mongolian empire’s Ocean Palace where the site of the Beob Hwa Sa (法華寺) Temple was in the Gang Jeong(江汀) village.








      2. Who was Khubilai the Great Khan? At the name of an era, Chih Yuan(至元) 17years in 1280 of Khubilai the Great Khan, an artist named Liu Kuan Tao(劉貫道), who was belonging to palace, drawed the hunting pictures of Khubilai the Great Khan at the Mongolian Steppes and some painters, who was belonging to the ancient Korean state Koryo, drawed portraits of Khubilai the Great Khan’s daughter named Khudulugh Kelmish who was a queen of Koryo and of Khubilai the Great Khan’s childish grand son, his daughter’s son named Ijil-Buqa who was a king of Koryo Chungseonwang(忠宣王). Ijil-Buqa was the core leader of the old Korean kingdom that was Gooli(高句麗)-Boka(渤海), who restored a family line of his monarchy to a member of Mongol Royal Family/Borjigin again.
      By the way, one royal picture and two royal portraits mentioned above are remained without flaws. After it becomes generally known, the historical story makes many Koreans surprise.








      3. How do you apprise the Scythian works of art? In the Scythian systematic nations, the artistic relics being inherited by the Horse Riding-Sheep Nomadizing Revolution, since receiving the ironware during 2000 years, are touching many persons’ heartstrings from Black Sea(黑海) to city of Kyungjoo(慶州) in Korea. [English translation of the summary was a former journalist, historian Kim seon don(金善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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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유라시아대륙에 석기시대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석인상 유적들이 있다. 그렇지만, 본고에서는 철기 수용과 더불어 수행된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기’를 전후해 일반 초원(G...

      유라시아대륙에 석기시대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석인상 유적들이 있다. 그렇지만, 본고에서는 철기 수용과 더불어 수행된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기’를 전후해 일반 초원(Grass land)이 아닌 기마 양유목지대인 유라시아 스텝(Steppes)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된 관계 석인상 유적과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비유목지대 탐라도(耽羅都) 목마장의 석인상 유적에 초점을 맞추어 돌하르방 문제를 천착해보았다.
      유라시아의 유목민들이 말을 탄 주된 이유가 스텝의 양유목혁명 수행을 위해서였다.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한 이들의 ‘기마사술’이라는 가공할 유목무력도 물론 이에서 비롯됐다. 돌하르방이란, 여러 명칭개념 해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로 된 Харвах+vang=Harвavang(弓王)으로 논자 나름으로 본고에서 그 개념을 정의해보았다. 뒷날 알탄 칸(1507년~1582년)은, 자신이 ‘쿠빌라이 대칸’의 환생임을 자칭했다. 그렇듯이 쿠빌라이 대칸이 팍스 몽골리카를완성하고 탐라국에 해양제국 몽골황궁 구축을 구상-시도했던 흔적이 다소간에 확인되기도 하는 만큼 서북 다싱안링 고올리칸(弓王: 東明-Tumen) 석인상-‘석궁왕’처럼 서남 다싱안링 다리강가 스텝의 석인상도 중심인물 석인상을 위시해 배치되고 있는 몽골의 기원지대 관행으로 보아, 제주도 돌하르방이 이를 조형(祖形)으로 삼아 쿠빌라이 대칸 석인상을 중심으로 애초엔 그렇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 후의 돌하르방이 팍스 몽골리카 탐라 해양황궁에 환생해온 그 참 주체인 쿠빌라이 대칸의 민속 신앙적 환영의 시대적 구상들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 구체적인 역사인물인 팍스 몽골리카의 실제적인 구현자 대원제국 태조 쿠빌라이 대칸의 스텝제국의 확충 비젼이 투영된 해양 중 몽골궁성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탐라도 해양궁성의 아이콘초석으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처 못 다 이룬 그의 꿈이 배어난 자아상으로서의 석궁왕상(石弓王像)과 그 환영의 각 시대 시류를 따른 구체적인 구현이, 탐라도 돌하르방의 실상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유목지대인 탐라도 목마장에서의 ‘몽골스텝 양유목’은 한낱 허구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양유목의 적지가 아닌 이곳에서 스텝양 유목 혁명을 유발하기 위한 목마는 실은 실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인도의 거대한 칭기스칸 몽골제국계 이슬람제국 무굴제국(Mughul Empire;1526~1857)도 끝내 몽골스텝 본지(本地)의 수복을 이루지는 못했다. 본질적으로 목마가 스텝양유목과 관계가 없다면 몽골말의 유목적 전투력도 지속적인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때와 전제조건이 있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라 하겠다.
      원명(元明)~여선(麗鮮) 역성혁명과정이나 산업혁명 이후 만청(滿淸)제국과 신성로마제국 등의 모진 핍박과 농락 중에 이런 특정 생태 적응적 진화를 해오는 과정에서 시류를 따라 코믹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성형수술해온 터이지만, 탐라도 돌하르방은 2000여 년에 걸친 철기 수용 이래의 ‘황금빛 스키타이’ 기마 양유목혁명의 총체적 열매로서의 끈질기고 슬기로운 세계사적 차원의 초인적인 난숙한 예술적 풍모를 기나긴 세월 온갖 풍상 속에서도 아직 적지아니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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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주채혁, "한민족 북방기원 연구와 유라시아 고원지대 게놈분석" 배재대학교-한국시베리아 센터 6 : 2003

      2 신용하(愼鏞廈), "탐라국(耽羅國)의 형성과 초기 민족이동" 지식산업사 2000

      3 주채혁, "탐라(耽羅)‘남원’(南元)정부의 성립배경과 그 의미" 혜안 2011

      4 주채혁, "코리족(弓族) 유목태반 기원사 연구-한국몽골학회의 창립과 몽ㆍ한수교" 한국-시베리아센터 18 (18): 167-204, 2014

      5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

      6 피터 C. 퍼듀, "중국의 서진" 도서출판 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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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스기야마 마사아끼(杉山 正明), "유목민이 본 세계사 - 민족과 국경을 넘어" 학민사 1999

      9 "원세조출렵도(元世祖出獵圖)"

      10 박원길, "영락제(永樂帝)와 제주도" 제주학회 2013

      1 주채혁, "한민족 북방기원 연구와 유라시아 고원지대 게놈분석" 배재대학교-한국시베리아 센터 6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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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박원길, "영락제(永樂帝)와 제주도" 제주학회 2013

      11 이민화, "열린 한국, 유라시안 네트워크"

      12 주채혁, "순록치기의 홍산문화(紅山文化)감상법(鑑賞法)-유적유물과 문헌사료를 읽는 시각(視覺)과 시력(視力)" 11 (11): 2007

      13 명지대박물관, "법화사지(法華寺址)발굴조사보고서" 명지대박물관 1983

      14 주채혁, "몽골 다리강가 스텝지대의 훈촐로와 제주도 돌하르방(弓王)" 혜안 2011

      15 주채혁, "몽·려활겨레문화론" 혜안 2011

      16 金日宇, "고려후기 濟州 法華寺의 重創과 그 位相" 한국사연구회 (119) : 2-56, 2002

      17 "고려사"

      18 "고려미인도"

      19 김경주, "고고사료(考古資料)로 살펴 본 원(元)과 제주(濟州)" 2016

      20 주채혁(周采赫), "關于蒙古與韓國人的弓族(Qalqa obog)分族考" 延邊大學 亞洲硏究中心 2009

      21 佚名撰, "史料四編 大元馬政記" 廣文書局 1972

      22 "『원사(元史)』 卷208 「列傳第95 外夷1」"

      23 BB G Holt, "Genetic realms and regions of the world" 2013

      24 주채혁, "Chaatang朝鮮이 몽골의뿌리-순록유목에서 양유목으로" 한국-시베리아센터 18 (18): 153-18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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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3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Korean journal of Siberian studies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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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9 0.59 0.4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37 0.66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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