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들어있는 행복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교육의 의미와 목적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행복을 이루기 위한 여러 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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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25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교육학과 교육철학 및 교육사전공 , 2025. 2
2025
한국어
충청북도
Educational Implication of Eudaimonia i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iii, 70 p ; 26 cm
한국교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 고영준
참고문헌 : p. 66-67
I804:43012-00000004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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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들어있는 행복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교육의 의미와 목적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행복을 이루기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와 함께 교육과 행복의 관계성이 도외시 되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교육은 오히려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행복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미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으로 정의되며, 이때의 미덕이란 인간의 고유한 일을 지속적으로 잘 실현할 수 있는 성품을 뜻한다. 인간의 고유한 일은 ‘좋음’에 비추어 알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음’은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 그것이게끔 하는 본성이 잘 실현된 것을 뜻한다. 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인간이게끔 하는 것을 이성으로 보고 이성에 따른 활동이 인간의 고유한 일이며, 이것을 잘하는 것이 인간의 좋음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미덕이란 이성에 따른 활동을 지속적으로 잘하는 성품을 뜻하는 것이다. 이성에 따른 활동은 크게 이성 자체를 가지고 사고하는 활동과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는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지적 미덕에 따른 활동으로 학문적 인식, 실천적 지혜 등이 속하며, 후자는 도덕적 미덕에 따른 활동으로 중용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도덕적 미덕은 감정과 행위에 대한 즐거움 및 괴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도덕적 미덕을 갖춘 사람은 고귀한 것과 바르게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자기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한다. 이러한 도덕적 미덕은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는데, 습관으로써 선대의 미덕이 담긴 행위를 반복 숙달하는 과정을 통해 중용을 선택하고자 하는 성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품이 어떤 행위가 중용에 따른 행위인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과 경험을 통해 바른 이성을 갖추게 되면 실천적 지혜에 따른 숙고를 통해 바른 행위를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로써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은 좋은 행위를 함으로써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은 미덕에 따른 행위를 즐거워한다. 도덕적 미덕은 대부분 자신에 대한 것이지만, 남을 위해 미덕을 행할 수도 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이 공동체적 미덕인데, 바로 정의와 사랑이다. 정의는 미덕에 따른 행위의 총칭이자 합법적인 행위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개별적인 미덕을 뜻하는 정의도 있다. 그런 정의는 크게 분배 정의와 바로잡는 정의로 나눠볼 수 있으며, 분배 정의는 사람 사이의 공평한 분배에 관한 것이고, 바로잡는 정의는 공평한 거래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정의나 법적 정의 등의 정의는 앞의 두 정의를 기반으로 삼는다. 사랑이 있는 정의는 그런 정의의 최고 형태다. 사랑은 유익을 얻기 위한 사랑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사랑 그리고 완전한 사랑으로 나뉘는데, 앞의 두 사랑은 유사성에 따라 사랑으로 불리는 것으로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유익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사랑은 서로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앞서서 언급하였던 정의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은 좋은 사람 사이의 사랑으로 그 사람의 좋음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 사랑도 유익과 즐거움을 주고받지만, 그 자체로 좋은 것과 즐거운 것, 곧 미덕에 따른 활동과 행위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 사랑은 정의의 원칙을 뛰어넘는 미덕이며, 공동체를 화합하는 미덕이다. 이러한 미덕은 정의에 따른 법과 사랑에 따른 문화로써 익히고, 지켜진다. 지적 미덕은 최초 원인이 변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불변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기술과 실천적 지혜가 있으며, 후자에는 학문적 인식, 직관적 지성, 철학적 지혜가 속한다. 실천적 지혜는 전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자신에게 좋고 유익한 것을 숙고하는 것과 관련되며, 이를 통해 도덕적 행위를 하기 위한 이성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실천적 지혜를 남을 위해 발휘하면 입법과 정치로 이어지며, 어느 쪽이든 실천적 지혜를 갖추기 위해선 경험이 필요하다. 학문적 인식은 가르침을 통해 갖출 수 있으며, 개별적인 아는 것에서 시작해 귀납법 및 연역법에 따른 추론으로 증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을 얻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학문적 인식으로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인 제1원리는 알 수 없는데, 이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며, 직관적 지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최고의 학문적 인식과 직관적 지성이 합쳐진 것을 철학적 지혜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에 따른 활동인 관조적 활동이 인간의 활동 중 가장 지속적이며 즐거운 활동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덕적 미덕은 습관으로 갖춰지며, 지적 미덕 중 학문적 인식은 가르침을 통해 갖출 수 있다. 전자는 주로 가정에서 훈육으로 이뤄지고, 후자는 학교에서 교과 교육으로 이뤄진다. 각 교육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시적 내용과 그 안에 담긴 묵시적 내용이 함께 가르쳐지며, 이를 통해 미덕을 갖출 수 있다. 습관을 통해 도덕적 성품을 갖추게 되면 고귀한 것을 즐거워하므로 도덕적 미덕에 따른 활동과 행위뿐만 아니라 지적 미덕에 따른 활동도 즐겁다. 그러나 아직 미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는 교육 활동이 괴롭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신체적 즐거움을 도입하거나 택하는 것은 미덕에 따른 것이 아니다. 또한, 교육은 공동체의 법과 문화로도 이뤄진다. 이는 사람이 평생 미덕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최고의 미덕인 철학적 지혜는 직접 교육할 순 없지만, 최고의 학문적 인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행운처럼 다가올 수 있다. 공교육은 지적 미덕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며, 학교에서는 지적 미덕에 따른 활동과 함께 가정과는 또 다른 공동체 속에서 도덕적 미덕에 따른 활동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는 미덕에 따른 활동을 하며 미덕을 갖추고, 그에 따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며, 공동체 행복의 출발점이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 삶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 미덕에 따라 활동하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그것을 관조하며 사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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