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사진에 나타나는 대한제국기 황제의 군복형 양복을 촬영시기에 대한 검토와 문헌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복장 종류별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황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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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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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사진에 나타나는 대한제국기 황제의 군복형 양복을 촬영시기에 대한 검토와 문헌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복장 종류별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황제의 ...
본 연구는 사진에 나타나는 대한제국기 황제의 군복형 양복을 촬영시기에 대한 검토와 문헌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복장 종류별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황제의 군복형 양복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가 발굴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공개되어 있는 사진들이 면밀한 검토없이 자료로 자주 인용되어 왔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들을 정정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당시 고종황제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황제의 복식을 착용하였으나, 1899년 원수부 창설과 함께 황제가 먼저 서구식 부국강병의 상징인 대원수 제복을 착용하였다. 대원수복은 1897년 개정된 ‘陸軍服裝規則’을 근간으로 하고 ‘원수부에 속한 무관의 복장 규정’을 따르도록 규정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奏本의 기록을 통해 황제는 1898년 8월에 制服을, 1899년 6월에 禮服과 常服을 구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고종황제의 양복 착용은 원수부 창설 이전에 미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은 황제의 예복, 상복과 함께 佩着하는 肩章, 飾帶, 검과 검의 부속품, 구두, 복식 보관 상자 등을 구입하고, 수선하는데 드는 비용도 지불하였다.
둘째, 사진에 나타나는 고종황제의 군복형 양복은 세 가지 형태가 있다. 먼저 대원수 예복은 투구형 모자와 화려하게 장식된 肋骨服 형태의 상의로 구성된다. 어깨에 술이 달린 견장을 달고, 소매에는 11줄의 人字形 장식이 부착되어 있으며, 허리에는 飾帶를 두르고, 飾緖, 검, 흰색 장갑을 패착하고 있다. 다음으로 대원수 常服은 예복과 같이 투구형 모자와 앞중심선에서 여며지는 상의로 구성된다. 견장에는 술이 달려 있지 않고 대체적으로 수수한 형태에 飾緖, 검을 갖추고 있다. 1907년 가을에 촬영된 것으로 여겨지는 고종 사진의 예복은 군모와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의 상의로 구성되었다. 넓은 袖章에는 오얏꽃을 가운데 두고 많은 잎으로 장식된 문양이 반복되는데 人字形 장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계급적 특징보다는 대한제국의 상징적 특징이 강하여 새롭게 제작된 태황제 예복으로 추정된다.
셋째, 사진에 나타나는 순종황제의 군복형 양복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大勳位菊花章頸飾의 패용을 기준으로 촬영 시기를 나눌 수 있다. 경식을 패용한 사진은 1907년 10월 일본 황태자 방문 이후에 촬영된 것이다. 순종황제는 立前毛가 장식된 군모을 쓰고, 소매에 9개의 人字形 장식이 부착되어 있는 육군 대장 예복을 착용하고 있다. 즉 순종황제는 대한제국의 대원수 예복을 착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순종황제의 등극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이용된 투구형 모자가 등극 기념엽서, 우편 소인 등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대한제국 황제의 서구식 외관의 표상은 대원수의 투구형 모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황제가 군복형 양복을 착용한 20세기 초반은 서양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의 열풍이 전 세계를 뒤덮던 시기였다. 황제가 군복을 착용하는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부터 시작된 것으로, 일본의 경우는 幕末에 나폴레옹 3세로부터 프랑스 군복 한 벌을 선물로 받아 將軍이 착용하였다는 기록과 사진이 남아 있고 明治維新 이후에는 천황의 군복형 양복 착용이 본격화되었다.
우리 역사에서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와 순종황제가 서양식 외관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본 연구에서 사진에 나타나는 황제의 군복형 양복을 분석한 결과 고종황제는 대원수복을 착용하였고 순종황제는 육군대장복을 착용하였다는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 성립 초기에는 고종황제가 주도권을 가지고 개혁을 진행하였다면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다음인 1905년 이후에는 외교권을 잃은 상황이었으므로 이미 일본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 상황이 황제의 복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