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오례」가 조선 최초의 국가례 편찬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해당 편찬물이 작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특징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이글에서는 유교적 의례의...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7305270
2021
Korean
世宗 ; 五禮 ; 國家禮 ; 親王 ; 儒敎本俗 ; 時王之制 ; 古制 ; prince imperial ; king Sejong ; five-categorized rituals ; confucian rite system for kingdom
KCI등재
학술저널
97-138(42쪽)
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이글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오례」가 조선 최초의 국가례 편찬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해당 편찬물이 작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특징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이글에서는 유교적 의례의...
이글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오례」가 조선 최초의 국가례 편찬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해당 편찬물이 작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특징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이글에서는 유교적 의례의 정비는 오랜 관습이었던 불교적 생활 관습을 대체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恒産을 확보하여 恒心을 갖게 한다는 유교적 명제가 세종 시대에 의례의 정비를 통해서 시도되었음을 검토하였다. 민간례와 달리 국가례는 길・흉・군・빈・가례로 범주화된다. 『세종실록』에는 300여 개의 의주가 수록되어 있는데, 유교 의례를 시행하기 위해 이 정도로 많은 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의 「오례」는 직접적으로는 세종 26년 국왕의 지시로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저변에 세종 치세 전 기간에 걸친 다양한 의주의 작성과 의례에 대한 검토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례로서 오례가 정리될 수 있었다. 이글에서 주요 개념어로서 동시대의 명나라 예제를 時制, 당・송의 제도를 古制, 조선의 습속을 本俗으로 설정하고, 의례 정비의 지향은 최종적으로 유교적 본속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하였다. 조선은 명과의 관계에서 명을 時王으로 인정하였다. 이에 준하여 시제를 수용할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지만, 명에서 예제를 공개하지 않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선 나름의 유교 예제를 추구하였다. 여전히 조선은 시제를 반영하고자 하였지만, 궁여지책으로 당・송의 고제를 능동적으로 참조하였고, 조선 고유의 습속도 유교적 본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적극 반영하였다. 태종대에는 시제를 주로 채용하고자 하였지만, 시제의 세부사항을 알 수 없는 조건에서 세종 초기에는 당・송의 고제를 전반적인 의례 정비에 원용하게 되었다. 예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하면서, 조선 나름의 의례 운영 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세종 중기부터는 조선 나름의 유교적 본속을 점차 갖추게 됐다. 드디어 세종 후기에 독자적인 오례를 정리하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세종실록』 「오례」는 미완의 작업이기는 하였지만, 향후 『국조오례의』로 귀결되는 의례 정리 작업의 실제적인 배경이 되었음을 주목하였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paper, the rite system of the Ming Dynasty was conceptualized as the contemporary system, the rite system of the Tang and Song Dynasty as the ancient system, and the customs of Joseon as the regional system. It was interpreted that the purpose...
In this paper, the rite system of the Ming Dynasty was conceptualized as the contemporary system, the rite system of the Tang and Song Dynasty as the ancient system, and the customs of Joseon as the regional system. It was interpreted that the purpose of establishment of Confucian rite system in Joseon was to create a Confucian regional system.
In Joseon, the emperor of Ming China was recognized as the king of the present era who was ordered by heaven as Confucianism says. Therefore, they wanted to accept Ming China’s ritual system if possible. However, Ming China did not disclose the rite system to Joseon, and recommended that Joseon follow the local system. In Joseon, a long-time Buddhist country, there was virtually no Confucian regional system. Joseon established its own state rite system by referring to the ancient systems of the Tang and Song.
Joseon had to make a new rite system for kingdom because all the system of Confucian-style state rite that could be referenced were for the Empire and there were no ones for the Kingdom.
The five-categorized rituals were included as an appendix in the Annals of King Sejong. This was the first compilation of Confucianstyle state rite of Joseon. This record was incomplete, but it reflects the achievements of creating a confucian regional system that had been steadily implemented in Joseon. Based on this, Joseon completed more sophisticated five categorized rituals. This was the first example of a Confucian state rite system for the kingdom. Through this, Joseon took a new step toward transforming itself into a Confucian state.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論語"
2 강문식, "태종~~세종대 許稠의 禮制 정비와 禮 인식" 진단학회 (105) : 111-139, 2008
3 강제훈,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4 이완재, "조선초기의 儒敎的 國家儀禮에 대한 연구-五禮의 儀禮官을 중심으로-" 10 : 1998
5 한형주,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정비와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33) : 115-143, 2010
6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7 최종석, "조선초기 ‘時王之制’ 논의 구조의 특징과 중화 보편의 추구" 조선시대사학회 (52) : 5-49, 2010
8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한길사 1996
9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10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儀仗制度의 정비와 상징" 역사연구소 (77) : 33-74, 2012
1 "論語"
2 강문식, "태종~~세종대 許稠의 禮制 정비와 禮 인식" 진단학회 (105) : 111-139, 2008
3 강제훈,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4 이완재, "조선초기의 儒敎的 國家儀禮에 대한 연구-五禮의 儀禮官을 중심으로-" 10 : 1998
5 한형주, "조선초기 왕릉제사의 정비와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33) : 115-143, 2010
6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7 최종석, "조선초기 ‘時王之制’ 논의 구조의 특징과 중화 보편의 추구" 조선시대사학회 (52) : 5-49, 2010
8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한길사 1996
9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10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儀仗制度의 정비와 상징" 역사연구소 (77) : 33-74, 2012
11 한형주, "조선전기 文昭殿의 성립과 그 운영" 한국역사민속학회 (24) : 69-102, 2007
12 이정훈, "조선시대 禮의 法的 性格에 관한 硏究" 한국법사학회 (33) : 25-56, 2006
13 이욱,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창비 2009
14 이욱, "조선시대 왕실 제사와 제물의 상징 : 혈식(血食)· 소식(素食)· 상식(常食)의 이념" 종교문화비평학회 20 (20): 221-260, 2011
15 이범직, "조선시대 왕릉의 조성 및 그 문헌" 한국사상문화학회 (36) : 233-266, 2007
16 이욱,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 민속원 2017
17 한형주, "조선시대 국가제사의 시대적 특성" 민족문화연구원 (41) : 3-39, 2004
18 강제훈, "조선시대 王陵 儀禮의 특징과 개정" 부산경남사학회 (113) : 79-122, 2019
19 강제훈, "조선 초기의 朝會 의식" 조선시대사학회 (28) : 5-46, 2004
20 김해영, "조선 초기 禮制 연구와 『國朝五禮儀』의 편찬" 조선시대사학회 (55) : 41-80, 2010
21 석창진, "조선 초기 유교적 국상의례의 거행양상과 그 특징" 고려사학회 (58) : 151-183, 2015
22 양정현, "조선 초기 원경왕후 喪葬禮 의식과 그 특징" 한국역사민속학회 (45) : 8-50, 2014
23 최나래, "조선 초기 세조 국상 연구" 한국역사민속학회 (45) : 162-191, 2014
24 강제훈, "조선 초기 王室 祖上儀禮의 유교적 정비" 고려사학회 (66) : 121-166, 2017
25 강제훈, "조선 초기 正至會禮 의식의 정비와 운용" 고려사학회 (34) : 63-107, 2009
26 강제훈, "조선 초기 朝儀의 의례구조와 상징" 한국사연구회 (137) : 181-225, 2007
27 강제훈, "조선 초기 俗祭 祭祀床의 구성과 그 특징" 고려사학회 (60) : 209-241, 2015
28 강제훈, "조선 전기의 국가 의례와 의주" 민속원 2015
29 이욱, "조선 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회 (118) : 6-194, 2002
30 이욱,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정제와 속제의 변용-"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31 이현진, "조선 왕실의 忌晨祭 설행과 변천" 조선시대사학회 (46) : 81-123, 2008
32 강제훈, "조선 왕릉과 왕릉 의례의 특징" 고려사학회 (54) : 329-363, 2014
33 이지훈, "조선 세종 국상의 의식 구성과 진행" 한국역사민속학회 (45) : 52-92, 2014
34 강제훈, "조선 성종대 朝會儀式과 朝會 운영" 고려사학회 (27) : 45-81, 2007
35 석창진, "조선 世宗妃 昭憲王后 國喪儀禮와 그 의미" 한국역사민속학회 (45) : 94-125, 2014
36 강제훈, "조선 世宗代의 조회" 128 : 2005
37 강제훈, "조선 「世宗實錄」 「五禮」의 편찬 경위와 성격" 한국사학회 (107) : 169-227, 2012
38 이욱, "조상제사의 의미와 기억의 의례화儀禮化" 한국국학진흥원 (19) : 473-501, 2011
39 이욱, "제기(祭器) : 신을 위한 기물(器物)" 종교문화비평학회 23 (23): 349-369, 2013
40 김동욱, "왕권을 상징하는 공간, 궁궐" 국립고궁박물관 2017
41 이재룡, "법가의 규범적 의미-예치와 법치의 조화" 3 : 1992
42 금장태, "귀신과 제사-유교의 종교적 세계-" 제이앤씨 2009
43 "高麗史"
44 이범직, "韓國中世禮思想硏究-五禮를 中心으로-" 일조각 1991
45 "通典"
46 한형주, "許稠와 태종~세종대 國家儀禮의 정비" 민족문화연구원 (44) : 271-321, 2006
47 "禮記"
48 "皇明制書"
49 "朝鮮經國典"
50 "朝鮮王朝實錄"
51 이범직, "朝鮮時代 禮學硏究" 국학자료원 2004
52 김해영, "朝鮮初期 祭祀典禮 硏究" 집문당 2003
53 한형주, "朝鮮初期 朝賀儀禮에 대한 考察" 13 : 2002
54 강제훈, "朝鮮初期 國家儀禮 정비의 지향과 원칙 - 吉禮·凶禮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민족문화연구원 (68) : 137-174, 2015
55 金泰永, "朝鮮 初期 祀典의 成立에 對하여-國家意識의 變遷을 中心으로-" 58 : 1973
56 강제훈, "朝鮮 世祖代의 朝會와 王權" 61 : 2005
57 조용철, "朝鮮 世祖代 懿敬世子 喪葬禮 구성과 특징" 한국역사민속학회 (45) : 128-160, 2014
58 "明集禮"
59 "文獻通考"
60 "孟子"
61 池斗煥, "國朝五禮儀 編纂過程(Ⅰ)-吉禮 宗廟․社稷祭儀를 중심으로" 9 : 1985
62 "國朝五禮儀"
63 "周禮"
64 "儀禮"
65 최연식, "<경국대전>과 유교국가 조선의 예치(禮治): 예(禮)의 형식화 과정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소 38 (38): 43-62, 2007
66 한형주, "15세기 祀典體制의 성립과 그 추이―『國朝五禮儀』편찬과정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89) : 127-161, 2004
전시체제 초기 夢幻의 선전소재, 조선해협철도터널案 실상과 報道 실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7-02-0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5-09-29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28 | 1.28 | 1.1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97 | 0.89 | 2.254 | 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