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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의 개모(改模) 과정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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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9987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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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논문은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를 僧服本, 僧儒 혼합본, 그리고 儒服本이라는 세 키워드로 조망한 글이 다. 과거에 김시습 초상화는 수량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버전도 다수였다. 본고에서 조선시대 전래 과 정과 초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고찰하였다. 우선 김시습 자화상 원형과 그 유전 양상을 추적한 결과, 본래 김시습이 무량사에 남긴 것은 삭발에 염주 가 달린 승려의 형상을 그린 작은 화상이었다. 조선시대 그의 초상은 거듭 移模되는 가운데 그 무량사 원 본 계열의 ‘승복본’이 수적인 우세에 있었다.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하는 파평윤씨가의 주도로 17세기 화 단의 대가 이징을 불러서 그린 이모본이 가장 대표적인 자화상 원형계열의 화상이다. 이후 박세당도 수락 산에 淸節祠를 건립해 무량사 원본계열 화상을 다시 모사해 봉안한 바 있다. 이밖에도 곳곳의 사당과 사 찰 등에 김시습의 승복본 초상화가 널리 유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상화는 결국 자화상 원형 그대 로 유전되지 못했다. 현전 화상은 모두 ‘改模本’으로, 본래의 무량사본을 그대로 계승한 것은 하나도 전하 지 않는다. 이들 개모본은 ‘僧儒혼합본’과 ‘儒服本’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혼합본으로는 『梅月堂詩四遊錄』소재 模刻本과 김수증 이모본이 있다. 그리고 제일 유명한 현전 무량사본은 대표적인 儒服本 화상으로 , 자화상 원형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개모본이다. 한때 김시습 화상은 유학자들의 김시습 끌어안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 원형인 승복 본 초상화마저도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소론을 중심으로 그랬다. 그러나 결국은 개모본들이 김시습 화상의 진면목을 지닌 원본계열을 밀어냈다. 심지어 오늘날 무량사에 남아 있는 사찰소장본마저 유복본 초상화로 뒤바뀌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시습에 대한 이미지나 전설은 조선후기 유 학자들(특히 노론)이 만들고 덧씌운 혐의가 짙다. 특히 17세기 이후 유학자들의 정치적 명분과 실리가 맞 물려 김시습이 충절의 화신으로 추존되는 가운데 그의 초상화도 크게 변모되는 수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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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를 僧服本, 僧儒 혼합본, 그리고 儒服本이라는 세 키워드로 조망한 글이 다. 과거에 김시습 초상화는 수량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버전도 다수였다. 본고에...

      이 논문은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를 僧服本, 僧儒 혼합본, 그리고 儒服本이라는 세 키워드로 조망한 글이 다. 과거에 김시습 초상화는 수량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버전도 다수였다. 본고에서 조선시대 전래 과 정과 초상화를 둘러싼 뒷이야기를 고찰하였다. 우선 김시습 자화상 원형과 그 유전 양상을 추적한 결과, 본래 김시습이 무량사에 남긴 것은 삭발에 염주 가 달린 승려의 형상을 그린 작은 화상이었다. 조선시대 그의 초상은 거듭 移模되는 가운데 그 무량사 원 본 계열의 ‘승복본’이 수적인 우세에 있었다.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하는 파평윤씨가의 주도로 17세기 화 단의 대가 이징을 불러서 그린 이모본이 가장 대표적인 자화상 원형계열의 화상이다. 이후 박세당도 수락 산에 淸節祠를 건립해 무량사 원본계열 화상을 다시 모사해 봉안한 바 있다. 이밖에도 곳곳의 사당과 사 찰 등에 김시습의 승복본 초상화가 널리 유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상화는 결국 자화상 원형 그대 로 유전되지 못했다. 현전 화상은 모두 ‘改模本’으로, 본래의 무량사본을 그대로 계승한 것은 하나도 전하 지 않는다. 이들 개모본은 ‘僧儒혼합본’과 ‘儒服本’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혼합본으로는 『梅月堂詩四遊錄』소재 模刻本과 김수증 이모본이 있다. 그리고 제일 유명한 현전 무량사본은 대표적인 儒服本 화상으로 , 자화상 원형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개모본이다. 한때 김시습 화상은 유학자들의 김시습 끌어안기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 원형인 승복 본 초상화마저도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소론을 중심으로 그랬다. 그러나 결국은 개모본들이 김시습 화상의 진면목을 지닌 원본계열을 밀어냈다. 심지어 오늘날 무량사에 남아 있는 사찰소장본마저 유복본 초상화로 뒤바뀌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시습에 대한 이미지나 전설은 조선후기 유 학자들(특히 노론)이 만들고 덧씌운 혐의가 짙다. 특히 17세기 이후 유학자들의 정치적 명분과 실리가 맞 물려 김시습이 충절의 화신으로 추존되는 가운데 그의 초상화도 크게 변모되는 수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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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Kim Si-seup(金時習, 1435~1493) is one of the great poets and writers that the nation boasts highly. In the past, there were many of his portraits in various versions.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ransmission process of his portraits during Joseon, trying to promote the understanding of him as a person and stimulating new ideas for his interpretation in the literary history by looking into the episodes about his portraits. The study first traced the originals and transmission patterns of his self-portraits and found the one he left at Muryang Buddhist Temple(無量寺) was a small portrait of a Buddhist priest. His portraits continued to be copied during Joseon, and there were more of them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The copy produced by Lee Jing(李澄), a master painter in the painting circles in the 17th centur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portrait of his original self-portrait line. In addition, his self-portraits depicting him as a Buddhist priest were widely transmitted at shrines and Buddhist temples across the nation. However, his self-portrait was not transmitted in its original form in the end. The currently remaining portraits of Kim are all revised copies. None of them are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His portraits even the version of the original in which he was depicted as a Buddhist priest were revered by the Confucian scholars, but the revised copies eventually overwhelmed the original line with the true character of his self-portrait. Even the one housed at Muryang Buddhist Temple today has been replaced with the version in which he is depicted as a Confucian scholar.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images and legends of Kim Si-seup known today were created and added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second half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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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Si-seup(金時習, 1435~1493) is one of the great poets and writers that the nation boasts highly. In the past, there were many of his portraits in various versions.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ransmission process of his por...

      Kim Si-seup(金時習, 1435~1493) is one of the great poets and writers that the nation boasts highly. In the past, there were many of his portraits in various versions.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ransmission process of his portraits during Joseon, trying to promote the understanding of him as a person and stimulating new ideas for his interpretation in the literary history by looking into the episodes about his portraits. The study first traced the originals and transmission patterns of his self-portraits and found the one he left at Muryang Buddhist Temple(無量寺) was a small portrait of a Buddhist priest. His portraits continued to be copied during Joseon, and there were more of them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The copy produced by Lee Jing(李澄), a master painter in the painting circles in the 17th century, became the most representative portrait of his original self-portrait line. In addition, his self-portraits depicting him as a Buddhist priest were widely transmitted at shrines and Buddhist temples across the nation. However, his self-portrait was not transmitted in its original form in the end. The currently remaining portraits of Kim are all revised copies. None of them are in the original line of Muryang Buddhist Temple. His portraits even the version of the original in which he was depicted as a Buddhist priest were revered by the Confucian scholars, but the revised copies eventually overwhelmed the original line with the true character of his self-portrait. Even the one housed at Muryang Buddhist Temple today has been replaced with the version in which he is depicted as a Confucian scholar.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images and legends of Kim Si-seup known today were created and added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second half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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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초상화에 주목하는 이유
      • 2. 僧服本 자화상
      • 3. 僧儒 혼합형 改模本의 등장
      • 4. 김수증 이모본의 전래 배경과 의미
      • 국문초록
      • 1. 초상화에 주목하는 이유
      • 2. 僧服本 자화상
      • 3. 僧儒 혼합형 改模本의 등장
      • 4. 김수증 이모본의 전래 배경과 의미
      • 5. 儒服本으로의 개모와 그 의미
      • 6.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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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이, "栗谷全書"

      2 박철상, "을해자본 매월당집 잔편 발굴의 의미" 문헌과해석사 27 : 215-235, 2004

      3 안대회, "윤춘년의 學音稿, 그 의의와 가치" 동방고전문학회 2 : 257-270, 2000

      4 "신증동국여지승람"

      5 "승정원일기"

      6 임형택, "매월당시사유록에 관한 고찰" 한국한문학회 26 : 60-83, 2000

      7 심경호, "김시습평전" 돌베개 586-590, 2003

      8 양승민, "경진자본 『梅月堂集』 간행 과정과 校訂本" 한국한문학회 (52) : 457-495, 2013

      9 윤선거, "魯西遺稿"

      10 이하곤, "頭陀草"

      1 이이, "栗谷全書"

      2 박철상, "을해자본 매월당집 잔편 발굴의 의미" 문헌과해석사 27 : 215-235, 2004

      3 안대회, "윤춘년의 學音稿, 그 의의와 가치" 동방고전문학회 2 : 257-270, 2000

      4 "신증동국여지승람"

      5 "승정원일기"

      6 임형택, "매월당시사유록에 관한 고찰" 한국한문학회 26 : 60-83, 2000

      7 심경호, "김시습평전" 돌베개 586-590, 2003

      8 양승민, "경진자본 『梅月堂集』 간행 과정과 校訂本" 한국한문학회 (52) : 457-495, 2013

      9 윤선거, "魯西遺稿"

      10 이하곤, "頭陀草"

      11 남유용, "雷淵集"

      12 이황, "退溪集"

      13 신흠, "象村集"

      14 김수증, "谷雲集"

      15 박세당, "西溪集"

      16 이항로, "華西文集"

      17 오희상, "老洲集"

      18 송병선, "淵齋集"

      19 정범조, "海左文集"

      20 김시습, "梅月堂集"

      21 김시습, "梅月堂詩四遊錄"

      22 한태동, "是窩遺稿"

      23 윤증, "明齋遺稿"

      24 권상하, "寒水齋集, In 한국문집총간"

      25 박태보, "定齋集"

      26 송시열, "宋子大全"

      27 조선미, "Great korean portraits" 돌베개 161-167, 2010

      28 양승민, "<원생몽유록>의 문헌수록 및 인행 과정 -장릉지와 관란유고를 중심으로-" 한국고소설학회 4 : 29-40,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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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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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4 0.54 0.5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8 0.973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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