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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帶金式 板甲의 倭系 甲冑論 再考 = Re-examination about the theory that the Daegeum Type Armour belongs to a Japanese Ar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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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21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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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대금식 판갑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방호하는 무구(武具)의 일종으로서 그 정형화된 구성상의 특징에서 7단구성 판갑이라고도 불린다. 5세기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갑주 연구 초창기에는 이 종 판갑의 생산지를 한반도 남부로 보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연구자 모두 왜계 갑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월등한 출토 수량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러한 인식론을 바탕으로우리나라에서 대금식 갑주가 출토될 경우 이를 모두 왜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연구 경향이 대세가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비판의 바탕에는 당시 철이 생산되지 않던 왜의 입장에서 철기나그 원료 입수의 난맥상과 철 생산 기술의 열등함이 깔려 있다. 판갑 자체의 검토에서도 대금식 판갑의 기본 골격이 되는 도련판(裾板)이나 고대판(押付板)의 제작은 종장판 판갑의 제작기술에서 온 것이다. 그것도 김해, 부산의 제작공인 집단으로 특정할 수 있다. 전기가야의 해체, 일본 중기 고분시대의 성립은 연동하며 이 무렵 이들 재래의 종장판 판갑 제작공인들의 손에 의해 대금식 판갑이 탄생하였다. 대금식 판갑 중 먼저 성립한 동일련식의 혁철(계) 판갑은 이들 토착 공인 집단에다 왜의 공인 참여도 어느 정도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병류(계) 판갑은 절판·철포 등의 복륜기법, 쇠고리경첩의 사용 등 월등한 철기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이는 우리나라 제작공인들의 직접 생산관여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열도가 소비처인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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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금식 판갑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방호하는 무구(武具)의 일종으로서 그 정형화된 구성상의 특징에서 7단구성 판갑이라고도 불린다. 5세기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일본열도를 ...

    대금식 판갑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방호하는 무구(武具)의 일종으로서 그 정형화된 구성상의 특징에서 7단구성 판갑이라고도 불린다. 5세기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갑주 연구 초창기에는 이 종 판갑의 생산지를 한반도 남부로 보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연구자 모두 왜계 갑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월등한 출토 수량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러한 인식론을 바탕으로우리나라에서 대금식 갑주가 출토될 경우 이를 모두 왜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연구 경향이 대세가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비판의 바탕에는 당시 철이 생산되지 않던 왜의 입장에서 철기나그 원료 입수의 난맥상과 철 생산 기술의 열등함이 깔려 있다. 판갑 자체의 검토에서도 대금식 판갑의 기본 골격이 되는 도련판(裾板)이나 고대판(押付板)의 제작은 종장판 판갑의 제작기술에서 온 것이다. 그것도 김해, 부산의 제작공인 집단으로 특정할 수 있다. 전기가야의 해체, 일본 중기 고분시대의 성립은 연동하며 이 무렵 이들 재래의 종장판 판갑 제작공인들의 손에 의해 대금식 판갑이 탄생하였다. 대금식 판갑 중 먼저 성립한 동일련식의 혁철(계) 판갑은 이들 토착 공인 집단에다 왜의 공인 참여도 어느 정도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병류(계) 판갑은 절판·철포 등의 복륜기법, 쇠고리경첩의 사용 등 월등한 철기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이는 우리나라 제작공인들의 직접 생산관여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열도가 소비처인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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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Daegeum type armour is a kind of arms which protect body from enemy’s attack, and it is also called 7 stage composition armour by the formalized compositional feature. In the 5th century, it was distributed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and the Japanese Islands. In the initial stage research, it was suggested that this kind of armour was made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however, Korean and Japanese researchers think it belonged to Japanese armour. It is caused by the higher excavated quantity. Based on this epistemology, when the Daegeum type armour is excavated in Korea, it tends to be studied in relationship with Japan. I do criticize this point. As for Japan, it was impossible to product iron, and it was hard to obtain iron material at that time, and the iron production technology was low. In examination of an armour, a lower plate(Doryun plate) and an upper plate(Godae plate), the framework of the Daegeum type armour is originated from the Jongjang plate armour production technology. Especially, it can be specified as the production figure of Gimhae and Busan. The dissolution of the Former Gaya is linked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middle of Gobun Period of Japan. Around this time, the Daegeum type plate was emerged in the hands of traditional smith who produced Jongjang plate armour before. The DongIlryun type plate armour with strap which emerged first in the Daegeum type plate could be produced by traditional smith with Japanese smith. However, plate armour with rivet is based on the high technique such as bending and covering border technique and iron hinge, so it is impossible to produce except direct involving of Korean smith. In this light, the role of Japan as a market is magn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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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aegeum type armour is a kind of arms which protect body from enemy’s attack, and it is also called 7 stage composition armour by the formalized compositional feature. In the 5th century, it was distributed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and the ...

    The Daegeum type armour is a kind of arms which protect body from enemy’s attack, and it is also called 7 stage composition armour by the formalized compositional feature. In the 5th century, it was distributed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and the Japanese Islands. In the initial stage research, it was suggested that this kind of armour was made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however, Korean and Japanese researchers think it belonged to Japanese armour. It is caused by the higher excavated quantity. Based on this epistemology, when the Daegeum type armour is excavated in Korea, it tends to be studied in relationship with Japan. I do criticize this point. As for Japan, it was impossible to product iron, and it was hard to obtain iron material at that time, and the iron production technology was low. In examination of an armour, a lower plate(Doryun plate) and an upper plate(Godae plate), the framework of the Daegeum type armour is originated from the Jongjang plate armour production technology. Especially, it can be specified as the production figure of Gimhae and Busan. The dissolution of the Former Gaya is linked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middle of Gobun Period of Japan. Around this time, the Daegeum type plate was emerged in the hands of traditional smith who produced Jongjang plate armour before. The DongIlryun type plate armour with strap which emerged first in the Daegeum type plate could be produced by traditional smith with Japanese smith. However, plate armour with rivet is based on the high technique such as bending and covering border technique and iron hinge, so it is impossible to produce except direct involving of Korean smith. In this light, the role of Japan as a market is magn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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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Ⅱ. 연구동향과 문제 제기 Ⅲ. 대금식 판갑의 기술계통 Ⅳ. 왜계 갑주론 비판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Ⅱ. 연구동향과 문제 제기 Ⅲ. 대금식 판갑의 기술계통 Ⅳ. 왜계 갑주론 비판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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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혁중, "한반도 출토 왜계갑주(倭係 甲冑)의분포와 의미" 중앙문화재연구원 (8) : 39-85, 2011

    2 박준현, "한반도 출토 대금식판갑의 편년 연구" 영남고고학회 (66) : 66-99, 2013

    3 이현주, "한국의 고대갑주" 복천박물관 2009

    4 김영민, "연산동고분군의 특질과 의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1) : 151-182, 2015

    5 박준현, "연산동고분군 출토 갑주의 특징과 의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4) : 81-122, 2017

    6 申敬澈, "백제사상의 전쟁"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8

    7 김혁중, "대가야 갑주의 성격, 『대가야의 고분문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8 김영민,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갑옷과 투구,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역사적 성격』" 2011

    9 오광섭, "갑주, 전사의 상징" 국립김해박물관 2015

    10 申敬澈, "가야의 무구와 마구" 국사편찬위원회 7 : 1989

    1 김혁중, "한반도 출토 왜계갑주(倭係 甲冑)의분포와 의미" 중앙문화재연구원 (8) : 39-85, 2011

    2 박준현, "한반도 출토 대금식판갑의 편년 연구" 영남고고학회 (66) : 66-99, 2013

    3 이현주, "한국의 고대갑주" 복천박물관 2009

    4 김영민, "연산동고분군의 특질과 의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1) : 151-182, 2015

    5 박준현, "연산동고분군 출토 갑주의 특징과 의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34) : 81-122, 2017

    6 申敬澈, "백제사상의 전쟁"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8

    7 김혁중, "대가야 갑주의 성격, 『대가야의 고분문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8 김영민,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갑옷과 투구,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의 역사적 성격』" 2011

    9 오광섭, "갑주, 전사의 상징" 국립김해박물관 2015

    10 申敬澈, "가야의 무구와 마구" 국사편찬위원회 7 : 1989

    11 申敬澈, "가야사복원을 위한 복천동고분군 재조명" 부산광역시립복천박물관 1997

    12 申敬澈, "가야, 낙동강에서 영산강으로" 김해시 2006

    13 宋桂鉉, "가야 갑주 양상의 변화,『가야 고분의 편년 연구Ⅲ-갑주와 마구-』" 영남고고학회 1995

    14 김영민, "韓國 出土 帶金式 板甲의 諸問題, 『武器·武具と農工具·漁具 韓日三国·古墳時代資料』" 研究会 2014

    15 川畑純, "武具が語る古代史" 京都大學學術出版會 2015

    16 鈴木一有, "朝鮮半島出土の倭系武装にみる日韓交流, 『武器·武具と農工具·漁具 韓日三国·古墳時代資料』" 研究会 2014

    17 橋本達也, "日韓古墳時代の年代観" 国立歴史民俗博物館国際研究集会, 国立歴史民俗博物館·釜山大學校博物館 2006

    18 小林行雄, "日·韓古代文化の流れ" 帝塚山考古學硏究所 1982

    19 김혁중, "慶北大學校 考古人類學科 30周年紀念 考古學論叢" 경북대학교출판부 2011

    20 古谷毅, "古墳時代鐵製甲冑における年代觀の形成, 『日韓古墳·三国時代の年代観(Ⅱ)』" 大韓民國 國立釜山大學校博物館·日本國 國立歷史民俗博物館 2007

    21 橋本達也, "古墳時代甲胄集成" 大阪大學大學院 2014

    22 申敬澈, "古墳と国家形成期の諸問題" 山川出版社 2019

    23 橋本達也, "古代日韓交渉の実態" 国立歴史民俗博物館 2016

    24 宋桂鉉, "加耶古墳의 甲冑變化와 韓日關係" 110 : 2004

    25 김두철, "加耶·新羅古墳의 年代觀" 부산고고학회 (9) : 81-118, 2011

    26 申敬澈, "前方後円墳" 岩波書店 2019

    27 宋桂鉉, "三國時代 鐵製甲胄의 硏究: 嶺南地域 出土品을 中心으로" 慶北大學校 大學院 1989

    28 박준현, "三國時代 帶金式板甲의 硏究" 부산대학교 대학원 2012

    29 김두철, "三國(古墳)時代 韓日武裝體系의 비교연구" 영남고고학회 (56) : 97-129, 2011

    30 橋本達也, "マロ塚古墳出土品を中心にした古墳時代中期武器·武具硏究" 国立歴史民俗博物館共同硏究 2005

    31 宋桂鉉, "4~5세기 동아시아의 갑주, 『4~5세기 東亞細亞 社會와 加耶』"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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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5-0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부산고고학연구회 -> 부산고고학회
    영문명 : 미등록 -> The Pusan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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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1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KCI등재후보
    2010-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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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54 0.54 0.7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 0.77 1.7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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