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식 판갑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방호하는 무구(武具)의 일종으로서 그 정형화된 구성상의 특징에서 7단구성 판갑이라고도 불린다. 5세기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일본열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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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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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식 판갑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체를 방호하는 무구(武具)의 일종으로서 그 정형화된 구성상의 특징에서 7단구성 판갑이라고도 불린다. 5세기대 이래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갑주 연구 초창기에는 이 종 판갑의 생산지를 한반도 남부로 보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연구자 모두 왜계 갑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월등한 출토 수량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러한 인식론을 바탕으로우리나라에서 대금식 갑주가 출토될 경우 이를 모두 왜와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연구 경향이 대세가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러한 점들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비판의 바탕에는 당시 철이 생산되지 않던 왜의 입장에서 철기나그 원료 입수의 난맥상과 철 생산 기술의 열등함이 깔려 있다. 판갑 자체의 검토에서도 대금식 판갑의 기본 골격이 되는 도련판(裾板)이나 고대판(押付板)의 제작은 종장판 판갑의 제작기술에서 온 것이다. 그것도 김해, 부산의 제작공인 집단으로 특정할 수 있다. 전기가야의 해체, 일본 중기 고분시대의 성립은 연동하며 이 무렵 이들 재래의 종장판 판갑 제작공인들의 손에 의해 대금식 판갑이 탄생하였다. 대금식 판갑 중 먼저 성립한 동일련식의 혁철(계) 판갑은 이들 토착 공인 집단에다 왜의 공인 참여도 어느 정도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병류(계) 판갑은 절판·철포 등의 복륜기법, 쇠고리경첩의 사용 등 월등한 철기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이는 우리나라 제작공인들의 직접 생산관여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열도가 소비처인 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Daegeum type armour is a kind of arms which protect body from enemy’s attack, and it is also called 7 stage composition armour by the formalized compositional feature. In the 5th century, it was distributed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and the ...
The Daegeum type armour is a kind of arms which protect body from enemy’s attack, and it is also called 7 stage composition armour by the formalized compositional feature. In the 5th century, it was distributed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and the Japanese Islands. In the initial stage research, it was suggested that this kind of armour was made in the southern part of Korea, however, Korean and Japanese researchers think it belonged to Japanese armour. It is caused by the higher excavated quantity. Based on this epistemology, when the Daegeum type armour is excavated in Korea, it tends to be studied in relationship with Japan. I do criticize this point. As for Japan, it was impossible to product iron, and it was hard to obtain iron material at that time, and the iron production technology was low. In examination of an armour, a lower plate(Doryun plate) and an upper plate(Godae plate), the framework of the Daegeum type armour is originated from the Jongjang plate armour production technology. Especially, it can be specified as the production figure of Gimhae and Busan. The dissolution of the Former Gaya is linked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middle of Gobun Period of Japan. Around this time, the Daegeum type plate was emerged in the hands of traditional smith who produced Jongjang plate armour before. The DongIlryun type plate armour with strap which emerged first in the Daegeum type plate could be produced by traditional smith with Japanese smith. However, plate armour with rivet is based on the high technique such as bending and covering border technique and iron hinge, so it is impossible to produce except direct involving of Korean smith. In this light, the role of Japan as a market is magnified.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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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 상류 유목문화의 유입과 변용 : 정구자문화를 중심으로
토기로 본 한반도 동·남해안 지역 신석기시대 조기 사회상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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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9-05-0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부산고고학연구회 -> 부산고고학회영문명 : 미등록 -> The Pusan Archaeological Society | ![]() |
| 201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 |
| 201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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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0.54 | 0.54 | 0.75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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