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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기원전 9~3세기 요서지역의 고고학문화와 山戎·東胡 = Ethnic identities of Nomadic cultures in Western Liaoning and south-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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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67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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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is study, we tried to identify cultural identities of Nomadic cultures in Western Liaoning and south-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in comparison with chinese record during Pre-han dynasty period(先秦時代). Author classifies the context of historical record about barbarians during Pre-han dynasty into 4 case. And suggests that the most reliable case of barbarian is about martial campaign. In case of martial action, chinese could gather direct information of enemies in periphery and as a result of the military expedition, weapons and harnesses are passed on to the other country. And these artefacts could easily be seen i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As a case study, author compares historical records about Duke Huan of state Qi(齊桓公)’s martial expedition on Shanrong(山戎) with Upper Xiajiadian culture(夏家店上層文化). There were found chinese ritual vessel Ding(鼎) with inscription of state Xu(許國) from Xiaoheoshigou(小黑石溝) 8501 tomb. regarded one of most signifiant tomb of Upper Xiajiadian culture. This bronze vessel from State Xu shows that Upper Xiajiadianculture could be identified with Shanrong, and furthermore this could play a good case for identification of chinese historical text with archaeological culture about barbarians in pre-han dynasty period.
      In 4th century BCE, Chikai(秦開), General of Yan dynasty conquered Donghu(東胡) and Old Chosun. This case could be proved by Saka style gold ornaments and animal style, found form Xinzhuantou(辛庄頭) 30 tomb in Yanxiatu(燕下都). Donghu was associated with the inflow of early xiongnu culture onto Northern zone of China. So, we can assume that Saka elements, remained in Xinzhunagtou tomb of the Yan Dynasty, resulted from Yan’ marital action with Donghu in the 4th century BCE.
      Like this, we can assume that archaeological find from Western Liaonging and South- 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could be compared with historical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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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study, we tried to identify cultural identities of Nomadic cultures in Western Liaoning and south-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in comparison with chinese record during Pre-han dynasty period(先秦時代). Author class...

      In this study, we tried to identify cultural identities of Nomadic cultures in Western Liaoning and south-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in comparison with chinese record during Pre-han dynasty period(先秦時代). Author classifies the context of historical record about barbarians during Pre-han dynasty into 4 case. And suggests that the most reliable case of barbarian is about martial campaign. In case of martial action, chinese could gather direct information of enemies in periphery and as a result of the military expedition, weapons and harnesses are passed on to the other country. And these artefacts could easily be seen in archaeological investigation.
      As a case study, author compares historical records about Duke Huan of state Qi(齊桓公)’s martial expedition on Shanrong(山戎) with Upper Xiajiadian culture(夏家店上層文化). There were found chinese ritual vessel Ding(鼎) with inscription of state Xu(許國) from Xiaoheoshigou(小黑石溝) 8501 tomb. regarded one of most signifiant tomb of Upper Xiajiadian culture. This bronze vessel from State Xu shows that Upper Xiajiadianculture could be identified with Shanrong, and furthermore this could play a good case for identification of chinese historical text with archaeological culture about barbarians in pre-han dynasty period.
      In 4th century BCE, Chikai(秦開), General of Yan dynasty conquered Donghu(東胡) and Old Chosun. This case could be proved by Saka style gold ornaments and animal style, found form Xinzhuantou(辛庄頭) 30 tomb in Yanxiatu(燕下都). Donghu was associated with the inflow of early xiongnu culture onto Northern zone of China. So, we can assume that Saka elements, remained in Xinzhunagtou tomb of the Yan Dynasty, resulted from Yan’ marital action with Donghu in the 4th century BCE.
      Like this, we can assume that archaeological find from Western Liaonging and South- eastern part of Inner Mongolia in 9th~3rd century BCE could be compared with historical re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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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이웃한 내몽골 동남부/발해만 이북지역의 유목계통 문화를 중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먼저 선진 사서에 반영된 다양한 주민집단의 기록이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증거로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에 대입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관되게 전쟁을 일으키는 집단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실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예로 보았다. 전쟁을 통해서 얻어진 이방민족에 대한 자료가 제일 체계적이며, 전쟁을 통하여 상대방의 무기 및 마구가 유입되는 경우 고고학적 유물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하가점상층문화의 소흑석구 유적에서 발견된 허국산 청동기를 분석하였고, 이를 선진사서에 구체적이며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방민족과의 충돌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소흑석구/남산근 유적이 만들어진 기원전 8~7세기대는 산융에 비정됨을 밝혔다. 그 이후 동호의 등장과 소멸에 대해서는 동주시기 장성일대의 유목문화,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전개되는 초기 흉노와 동호계통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동호는 기존 중국학계에서 제시한 정구자유형 보다는 연나라 북방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된 사카문화 계통의 유목집단의 확산과 연결시켰다.
      사서에 기록된 모든 주민집단을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로 대입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문화상의 구현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오히려 고고학자료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다양한 민족을 비정하는 것은 오히려 연구에 혼란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고고학 자료가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민족 집단의 대입보다는 좀 더 광의의 문화권으로 설정을 하고, 축적되는 고고학적 자료에 따라 지역과 시간을 세분해서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족집단의 비정은 유동적이며 고고학적 자료에 기인하는 바, 가변성이 강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화변천을 사서와 비교함으로써 본고에서 고고학에서 민족비정은 결코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고고학자료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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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이웃한 내몽골 동남부/발해만 이북지역의 유목계통 문화를 중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먼저 선진 ...

      본 연구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이웃한 내몽골 동남부/발해만 이북지역의 유목계통 문화를 중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먼저 선진 사서에 반영된 다양한 주민집단의 기록이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증거로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에 대입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관되게 전쟁을 일으키는 집단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실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예로 보았다. 전쟁을 통해서 얻어진 이방민족에 대한 자료가 제일 체계적이며, 전쟁을 통하여 상대방의 무기 및 마구가 유입되는 경우 고고학적 유물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하가점상층문화의 소흑석구 유적에서 발견된 허국산 청동기를 분석하였고, 이를 선진사서에 구체적이며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방민족과의 충돌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소흑석구/남산근 유적이 만들어진 기원전 8~7세기대는 산융에 비정됨을 밝혔다. 그 이후 동호의 등장과 소멸에 대해서는 동주시기 장성일대의 유목문화,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전개되는 초기 흉노와 동호계통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동호는 기존 중국학계에서 제시한 정구자유형 보다는 연나라 북방지역에서 기원전 4세기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된 사카문화 계통의 유목집단의 확산과 연결시켰다.
      사서에 기록된 모든 주민집단을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로 대입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문화상의 구현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오히려 고고학자료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다양한 민족을 비정하는 것은 오히려 연구에 혼란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고고학 자료가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민족 집단의 대입보다는 좀 더 광의의 문화권으로 설정을 하고, 축적되는 고고학적 자료에 따라 지역과 시간을 세분해서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족집단의 비정은 유동적이며 고고학적 자료에 기인하는 바, 가변성이 강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사카문화의 유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화변천을 사서와 비교함으로써 본고에서 고고학에서 민족비정은 결코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고고학자료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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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王立新, "林西井溝子-晩期靑銅時代墓地的發掘與綜合硏究" 科學出版社 2010

      2 項春松, "寧城小黑石溝石槨墓調査整理報告" 5 : 1995

      3 박대재, "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고대 조선과 예맥" 경인문화사 2013

      4 강인욱, "요령지역 비파형동검문화에 대한 일고찰" 21 : 1996

      5 이강승,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 한국고고학회 5 : 1979

      6 박준형, "예맥의 형성과정과 고조선"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22 : 2001

      7 폴로스막,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 2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얼음공주와 미라전사들" 주류성 2016

      8 김원용, "심양정가와자 청동기시대 묘와 부장품-예맥퉁구스의 청동전기문화-" 6 : 1976

      9 강인욱,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기원과 러시아 투바의 아르잔 1호 고분" 중앙아시아학회 20 (20): 127-151, 2015

      10 황기덕, "비파형단검문화에관한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7

      1 王立新, "林西井溝子-晩期靑銅時代墓地的發掘與綜合硏究" 科學出版社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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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대재, "중국 고문헌에 나타난 고대 조선과 예맥" 경인문화사 2013

      4 강인욱, "요령지역 비파형동검문화에 대한 일고찰" 21 : 1996

      5 이강승, "요령지방의 청동기문화" 한국고고학회 5 : 1979

      6 박준형, "예맥의 형성과정과 고조선"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22 : 2001

      7 폴로스막,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 2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얼음공주와 미라전사들" 주류성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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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강인욱, "스키토-시베리아 문화의 기원과 러시아 투바의 아르잔 1호 고분" 중앙아시아학회 20 (20): 127-15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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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박대재, "古朝鮮의 언어구역과 燕의 동북지역" 한국고대학회 (43) : 5-3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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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강인욱, "內蒙古동남부시라무렌하유역에서발견된새로운유목문화에대한이해" 9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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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 0.6 0.7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3 0.59 1.72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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