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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심경부주} 주석서에 대한 학파별 해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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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심경부주>를 특별히 중시한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먼저 심경부주가 조선 유학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심경부주와 관련된 저작을 백 수십여 종 남기고 있다. 이렇게 심경부주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데에는 단순히 그것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과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곧 학파에 따라 심경부주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크게 띈다. 이에 학파별 심경부주에 대한 이해를 살펴봄으로써 조선 유학의 흐름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심경부주가 조선에서 일찍이 읽혔지만, 이 책이 조선 유학계에 중요한 책으로 부상된 것은 李滉이 이 책을 중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효종, 숙종 등이 애호하여 경연 석상에서 자주 강론되는 등 성군의 교과서로 주목받음에 따라 더욱 중시되었으며, 교서관에서 간행되기에 이른다. 이때 심경부주와 더불어 이황의 <심경후론>도 함께 더해져 간행되었고, 심경부주는 조선 유학 전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숙종의 명을 받들어 심경부주 주석을 편찬한 사람은 宋時烈이다. 송시열의 입장은 한 마디로 주희의 생각을 정확하고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이이와 그의 후예들의 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송시열 이후 기호학파 안에서는 양명학이나 북학파로의 전환이 일어나며, 주자학 진영 안에서도 인물성동이논쟁을 계기로 호파와 낙파로 나눠진다. 이후 기호학파를 따른 수 많은 저작이 나온다. 영남지방에서는 이황과 그의 제자들 간에 한차례 활발하게 논의를 거친 이후 겉으로는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영남 퇴계학파에서 다시 심경부주 관련의 저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李象靖에서부터이다. 영남 퇴계학의 중요저서들이 이때 나오는데, 心經講錄刊補, 李宗相의 心經講義, 李震相의 經窾啓가 이를 대표한다. 조선에서는 양명학자나 실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심경부주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鄭齊斗는 心經集義를 저술하였고, 李瀷은 心經附註疾書를, 그리고 若鏞은 心經密驗을 지었다. 특히 심경밀험은 심이나 성에 대해 주자학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독창적 해석을 바탕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같은 실학자인 이익과도 차별적이다. 이것은 그만큼 그가 주자학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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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경부주>를 특별히 중시한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먼저 심경부주가 조선 유학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심경부주와 관련...

    <심경부주>를 특별히 중시한 것은 조선의 유학자들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먼저 심경부주가 조선 유학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심경부주와 관련된 저작을 백 수십여 종 남기고 있다. 이렇게 심경부주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데에는 단순히 그것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과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곧 학파에 따라 심경부주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크게 띈다. 이에 학파별 심경부주에 대한 이해를 살펴봄으로써 조선 유학의 흐름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심경부주가 조선에서 일찍이 읽혔지만, 이 책이 조선 유학계에 중요한 책으로 부상된 것은 李滉이 이 책을 중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효종, 숙종 등이 애호하여 경연 석상에서 자주 강론되는 등 성군의 교과서로 주목받음에 따라 더욱 중시되었으며, 교서관에서 간행되기에 이른다. 이때 심경부주와 더불어 이황의 <심경후론>도 함께 더해져 간행되었고, 심경부주는 조선 유학 전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숙종의 명을 받들어 심경부주 주석을 편찬한 사람은 宋時烈이다. 송시열의 입장은 한 마디로 주희의 생각을 정확하고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이이와 그의 후예들의 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송시열 이후 기호학파 안에서는 양명학이나 북학파로의 전환이 일어나며, 주자학 진영 안에서도 인물성동이논쟁을 계기로 호파와 낙파로 나눠진다. 이후 기호학파를 따른 수 많은 저작이 나온다. 영남지방에서는 이황과 그의 제자들 간에 한차례 활발하게 논의를 거친 이후 겉으로는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영남 퇴계학파에서 다시 심경부주 관련의 저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李象靖에서부터이다. 영남 퇴계학의 중요저서들이 이때 나오는데, 心經講錄刊補, 李宗相의 心經講義, 李震相의 經窾啓가 이를 대표한다. 조선에서는 양명학자나 실학자들 가운데에서도 심경부주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鄭齊斗는 心經集義를 저술하였고, 李瀷은 心經附註疾書를, 그리고 若鏞은 心經密驗을 지었다. 특히 심경밀험은 심이나 성에 대해 주자학과는 전혀 다른 자신의 독창적 해석을 바탕으로 논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같은 실학자인 이익과도 차별적이다. 이것은 그만큼 그가 주자학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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