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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査定의 법적 성격: 창설적 효력설 비판 = A Critical Review against the Thesis of Original Acquisition of Land of K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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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2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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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During the Choson Cadastral Survey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1912-1925), various administrative agency registered the name of owner of land to the official documents. At that time the quest for the true owner might be erroneous. Since then litigations which ask a question who should be the just owner between the one newly registered and a person who was not registered but the just owner if we judge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The idea that we should solve the problem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assumes that a possessor of land in choson-era enjoyed very strong right over the land, even though he or she couldn't enjoy such an absolute one like modern land ownership. On the other hand the view that the just owner should be the one who was registered, considers that nobody except the king enjoy strong power over the land something comparable to modern land ownership, so we should not allow any challenges about the correctness of the confirmation at the time for the efficiency of the matter. The position of the Supreme Court of Korea (herein after 'KSC') has been the latter.
    In this essay I critically reviewed the thesis of the KSC. The conclusion of this essay are as follows.
    During the land tax reform-era, the thesis of the Public Land Public Citizen Laws, which stated that all land was under the sole ownership of the emperor, such that individual farmers were merely borrowing the land from feudal lords, who in turn were borrowing the land from the emperor (公地公民 in Japan, 王土王民 in Korea), was prevailed. The thesis, however, has been destroyed and discarded in both countries' legal historiographies. So the thesis of original acquisition of Land of KSC should be struck down, and we should solve the problem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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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ring the Choson Cadastral Survey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1912-1925), various administrative agency registered the name of owner of land to the official documents. At that time the quest for the true owner might be erroneous. Since th...

    During the Choson Cadastral Survey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1912-1925), various administrative agency registered the name of owner of land to the official documents. At that time the quest for the true owner might be erroneous. Since then litigations which ask a question who should be the just owner between the one newly registered and a person who was not registered but the just owner if we judge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The idea that we should solve the problem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assumes that a possessor of land in choson-era enjoyed very strong right over the land, even though he or she couldn't enjoy such an absolute one like modern land ownership. On the other hand the view that the just owner should be the one who was registered, considers that nobody except the king enjoy strong power over the land something comparable to modern land ownership, so we should not allow any challenges about the correctness of the confirmation at the time for the efficiency of the matter. The position of the Supreme Court of Korea (herein after 'KSC') has been the latter.
    In this essay I critically reviewed the thesis of the KSC. The conclusion of this essay are as follows.
    During the land tax reform-era, the thesis of the Public Land Public Citizen Laws, which stated that all land was under the sole ownership of the emperor, such that individual farmers were merely borrowing the land from feudal lords, who in turn were borrowing the land from the emperor (公地公民 in Japan, 王土王民 in Korea), was prevailed. The thesis, however, has been destroyed and discarded in both countries' legal historiographies. So the thesis of original acquisition of Land of KSC should be struck down, and we should solve the problem according to the choson-era legal arg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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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대략 1965년부터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조선임야조사령에 근거하여 행하는 행정청의 사정이 확정되면 그 사정명의자는 종전에 그 임야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거나 없었거나를 불문하고 위 사정의 효력으로써 절대적으로 그 임야의 소유자로 확정되는 반면 종전의 소유자는 이에 따라 그 권리를 상실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201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윤진수 교수는 “토지 및 임야 사정은 (중략) 기존의 소유권을 재확인하는 확인적 행정행위의 성질을 가지는 것일 뿐”이며 “사정에 의하여 새로운 ‘근대적 소유권’이 창설된다고 보는 것은 ‘사정전에도 이미 토지소유권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역사학의 연구와도 배치”되고, 따라서 “토지 및 임야의 사정은 종래의 소유권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사정을 받은 자가 소유권을 원시취득한다고 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잘못된 이론”이라며 위 판례의 시정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윤교수의 주장을 이어 받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는 시민법학적 전통’ 하에서는 종래의 ‘창설적 효력설’이 시정되어야 할 논증이라는 점을 비교사적 측면에서 논증하려고 한다.
    논증의 방법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시절에 형성된 창설적 효력설의 계보를 추적하여 그 근원을 밝히고, ‘식민지 조선에서의 사정’에 비견되는 메이지 일본의 행정행위를 ‘地租改正處分’(이하 ‘改租處分’으로 약칭함)으로 설정하여 개조처분의 효력에 관한 일본 大審院의 자리매김의 추이, 그리고 1945년 후 일본의 하급심이나 최고재판소의 자리매김, 이에 관한 현대일본 법학자들의 학설을 추적하여 한국 대법원의 창설적 효력설의 의미를 재검토해 보는 것이다.
    먼저 사정을 전후한 일제강점기의 법령과 사업관련 보고서류 문헌들을 추적하여 그 논증들이 비문명적인 논증임을 밝힌다(Ⅱ). 다음에 그런 비문명적인 논증이 2차 대전 이후의 현대일본의 판례·학설에서도 지속될 것인지 여부를 추적한다(Ⅲ). 1950-1960년대의 미타 요스이 판결은 1914년의 일본대심원 판결(확정적 효력설=원시취득설)을 변경한 것 같은 외관을 보였다. 그러나 1997년의 센다이 고등재판소 판결은 다시 1914년의 일본대심원 판결로 돌아간 듯한 외관을 보인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장차 유사한 케이스가 발생하면 미타 요스이 판결을 끌어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센다이 판결을 끌어대야 할 것인지 크게 다투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센다이 판결이 미타 요스이 판결을 완전히 번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Ⅳ에서는 소유권 귀속을 판별하는 기준을 추적하였다. 먼저 지조개정 당시의 기준은 ‘에도 시대의 所持의 주체’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조선의 사업과정에서의 소유권귀속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 논점에 대하여 치밀한 연구성과를 낸 국사학자들(배영순과 최원규)의 견해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장차 법사학자들의 치밀한 재분석을 촉구하였다. Ⅴ에서는 ‘조선시대의 통상적인 농민의 토지지배는 소유로 볼 수 없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조선시대 농경지·시가지 지주의 토지에 대한 지배권은 적어도 ‘소유’라는 용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시하였다. Ⅵ(결어)에서는 두 가지를 주장하였다. 첫째,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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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1965년부터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조선임야조사령에 근거하여 행하는 행정청의 사정이 확정되면 그 사정명의자는 종전에 그 임야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거나 없었거나를 ...

    대략 1965년부터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에 ‘조선임야조사령에 근거하여 행하는 행정청의 사정이 확정되면 그 사정명의자는 종전에 그 임야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거나 없었거나를 불문하고 위 사정의 효력으로써 절대적으로 그 임야의 소유자로 확정되는 반면 종전의 소유자는 이에 따라 그 권리를 상실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2012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윤진수 교수는 “토지 및 임야 사정은 (중략) 기존의 소유권을 재확인하는 확인적 행정행위의 성질을 가지는 것일 뿐”이며 “사정에 의하여 새로운 ‘근대적 소유권’이 창설된다고 보는 것은 ‘사정전에도 이미 토지소유권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역사학의 연구와도 배치”되고, 따라서 “토지 및 임야의 사정은 종래의 소유권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사정을 받은 자가 소유권을 원시취득한다고 보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잘못된 이론”이라며 위 판례의 시정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윤교수의 주장을 이어 받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는 시민법학적 전통’ 하에서는 종래의 ‘창설적 효력설’이 시정되어야 할 논증이라는 점을 비교사적 측면에서 논증하려고 한다.
    논증의 방법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시절에 형성된 창설적 효력설의 계보를 추적하여 그 근원을 밝히고, ‘식민지 조선에서의 사정’에 비견되는 메이지 일본의 행정행위를 ‘地租改正處分’(이하 ‘改租處分’으로 약칭함)으로 설정하여 개조처분의 효력에 관한 일본 大審院의 자리매김의 추이, 그리고 1945년 후 일본의 하급심이나 최고재판소의 자리매김, 이에 관한 현대일본 법학자들의 학설을 추적하여 한국 대법원의 창설적 효력설의 의미를 재검토해 보는 것이다.
    먼저 사정을 전후한 일제강점기의 법령과 사업관련 보고서류 문헌들을 추적하여 그 논증들이 비문명적인 논증임을 밝힌다(Ⅱ). 다음에 그런 비문명적인 논증이 2차 대전 이후의 현대일본의 판례·학설에서도 지속될 것인지 여부를 추적한다(Ⅲ). 1950-1960년대의 미타 요스이 판결은 1914년의 일본대심원 판결(확정적 효력설=원시취득설)을 변경한 것 같은 외관을 보였다. 그러나 1997년의 센다이 고등재판소 판결은 다시 1914년의 일본대심원 판결로 돌아간 듯한 외관을 보인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장차 유사한 케이스가 발생하면 미타 요스이 판결을 끌어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센다이 판결을 끌어대야 할 것인지 크게 다투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센다이 판결이 미타 요스이 판결을 완전히 번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Ⅳ에서는 소유권 귀속을 판별하는 기준을 추적하였다. 먼저 지조개정 당시의 기준은 ‘에도 시대의 所持의 주체’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조선의 사업과정에서의 소유권귀속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이 논점에 대하여 치밀한 연구성과를 낸 국사학자들(배영순과 최원규)의 견해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장차 법사학자들의 치밀한 재분석을 촉구하였다. Ⅴ에서는 ‘조선시대의 통상적인 농민의 토지지배는 소유로 볼 수 없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조선시대 농경지·시가지 지주의 토지에 대한 지배권은 적어도 ‘소유’라는 용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시하였다. Ⅵ(결어)에서는 두 가지를 주장하였다. 첫째,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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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배영순, "한말일제초기의 토지조사와 지세개정" 영남대학교출판부 2002

    2 박병호, "한국법제사고" 법문사 1974

    3 조석곤, "한국 근대 토지제도의 형성" 해남 2003

    4 강태헌,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을 중심으로 한 근, 현대 토지소유제도의 변천과정" 대한변호사협회 (351) : 28-62, 2005

    5 이영훈,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 민음사 1997

    6 최병택, "일제하 조선임야조사사업과 산림 정책" 푸른역사 2009

    7 최원규, "일제 토지조사사업에서의 소유권 査定과정과 裁決" 한국근현대사학회 25 : 260-309, 2003

    8 전경목, "유서필지: 고문서 이해의 첫걸음" 사계절출판사 2006

    9 이세영, "대한제국의 토지제도와 근대" 혜안 2010

    10 이세영, "대한제국의 토지제도와 근대" 혜안 2010

    1 배영순, "한말일제초기의 토지조사와 지세개정" 영남대학교출판부 2002

    2 박병호, "한국법제사고" 법문사 1974

    3 조석곤, "한국 근대 토지제도의 형성" 해남 2003

    4 강태헌,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을 중심으로 한 근, 현대 토지소유제도의 변천과정" 대한변호사협회 (351) : 28-62, 2005

    5 이영훈,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 민음사 1997

    6 최병택, "일제하 조선임야조사사업과 산림 정책" 푸른역사 2009

    7 최원규, "일제 토지조사사업에서의 소유권 査定과정과 裁決" 한국근현대사학회 25 : 260-309, 2003

    8 전경목, "유서필지: 고문서 이해의 첫걸음" 사계절출판사 2006

    9 이세영, "대한제국의 토지제도와 근대" 혜안 2010

    10 이세영, "대한제국의 토지제도와 근대" 혜안 2010

    11 牛尾洋也, "近代日本における社会変動と"

    12 "訟務月報 第45巻 2号"

    13 朝鮮總督府 農林局, "朝鮮林野調査事業報告(京城)" 1938

    14 朝鮮總督府 臨時土地調査局, "朝鮮土地調査事業報告書(京城)" 1918

    15 早川保次, "朝鮮不動産登記の沿革" 大成印刷社 1921

    16 稲本洋之助, "日本の土地法" 成文堂 2009

    17 윤진수, "土地 및 林野 査定의 法的 性格 - 原始取得論 批判 -" 법학연구소 53 (53): 601-635, 2012

    18 毛塚五郞, "古館淸吾, 公圖作成의 經緯" 日本加除出版 1984

    19 村田彰, "三田用水事件における渡辺洋三氏の鑑定書" 8 (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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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4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20-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재인증) KCI등재후보
    2019-08-3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LAND LAW REVIEW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8-09 학술지등록 한글명 : 토지법학
    외국어명 : 미등록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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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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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4 0.34 0.4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38 0.614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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