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고는 889년 농민봉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신라 핵심 지배층의 인식, 신라 통치체제의 와해와 궁예·견훤의 세력 확장에 따른 신라 통치기반의 退縮 등에 대해 살핀 것이다. 887년 진성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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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orean
農民蜂起 ; 弓裔 ; 甄萱 ; 眞聖女王 ; 唐恩浦路 ; 赤袴賊 ; Peasant uprising ; Gungye ; Gyeonhwon ; Queen Jinseong ; Dangeunporo Road ; Bandit in red pants
KCI등재
학술저널
5-48(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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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본 논고는 889년 농민봉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신라 핵심 지배층의 인식, 신라 통치체제의 와해와 궁예·견훤의 세력 확장에 따른 신라 통치기반의 退縮 등에 대해 살핀 것이다. 887년 진성여...
본 논고는 889년 농민봉기의 원인과 이에 대한 신라 핵심 지배층의 인식, 신라 통치체제의 와해와 궁예·견훤의 세력 확장에 따른 신라 통치기반의 退縮 등에 대해 살핀 것이다. 887년 진성여왕의 즉위 이후에 그녀의 失政으로 말미암아 농민들의 倒産과 流離가 급증하였고, 여기다가 흉년과 기근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경제생활이 극도로 궁핍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성여왕이 889년(진성여왕 3)에 지방에 使者를 파견하여 貢賦의 납부를 독촉하자, 이에 반발하여 농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도적이 되어 봉기하였다. 당시 신라의 지배층은 889년 이후의 신라 상황을 劫灰 또는 나쁜 것 중에서 가장 나쁜 것, 즉 최악의 상태를 이르는 惡中惡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도적들이 횡행하여 커다란 혼란에 빠진 상황을 마치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것에 비유하였다. 892년에 신라는 武州地域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893년 후반기에 尙州와 熊州, 漢州에 주둔하던 官軍을 동원하여 도적의 무리나 반란세력을 진압하는 시스템이 와해되었다. 896년 무렵에 신라 정부는 良州와 康州 北部에 위치한 郡縣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나아가 신라 왕경을 방어하는 군단의 상당수가 허설화되기에 이르렀다. 910년대에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영남 이외의 지역을 나누어 영역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후고구려가 상주 이북의 경북 내륙지역을, 후백제가 구미시 선산읍과 그 인근지역을 차지하였다. 후고구려와 후백제의 영역으로 편입되지 않은 영남지역 가운데 왕경 주변의 일부 지역만이 신라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성주·장군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호족이 자체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cause of peasant uprising in 889 and the Silla’s core ruling class’ perception of it, the collapse of the Silla’s ruling system, and the weakening of the Silla’s ruling base due to the expansion of Gungye and Gyeonhwon...
This paper examines the cause of peasant uprising in 889 and the Silla’s core ruling class’ perception of it, the collapse of the Silla’s ruling system, and the weakening of the Silla’s ruling base due to the expansion of Gungye and Gyeonhwon’s power. After Queen Jinseong"s ascension to the throne in 887, peasants increasingly went bankrupt or were forced to become nomads because of the Queen’s maladministration. The peasants’ life also became extremely poor due to the combination of the aforementioned circumstances, famine, and the years of bad harvest. To make matters worse, Queen Jinseong dispatched envoys in 889(the 3rd year of the Queen Jinseong"s reign) to urge payment of taxes, which led to farmers becoming bandits and rising up in various parts of the country in protest. Silla’s ruling class at the time described the Silla’s situation after 889 as Geobhoe(劫灰) or Akjungak(惡中惡), which means the worst than all other bad things. They also compared the Silla’s state of chaos where the bandits were rampant to a situation in which a war breaks out and everything turns to ashes. In 892 Silla lost control of the Muju area and in late 893 the system of mobilizing the government forces stationed in Sangju, Ungju and Hanju to suppress the bandits and insurgents was destroyed. By 896, the Silla government had lost control of the counties and prefectures in northern Yangju and Gangju areas. Furthermore, at this point, many of the royal guard corps protecting the Royal District in Gyeongju were existing in name only. In the 910s, Hugoguryeo and Hubaekje not only divided and incorporated the areas other than the Yeongnam area into their territories, but Hugoguryeo also occupied the inland areas of Gyeongsangbuk-do, north of Sangju, and Hubaekje the areas near Seonsan-eup, Gumi-si. Among the Yeongnam area, only some areas around the Royal District in Gyeongju were under the direct control of Silla, and most of the other areas were governed by the so-called Hojok who were generally referred to as Seongju(城主) or Janggun(將軍).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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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근대 주권 개념의 수용 양상 -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1909년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에 대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와 지식인의 반응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8-12-06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호서사학 -> 역사와 담론외국어명 : HO-SUH SAHAK -> HISTORY AND DISCOURSE(Journal of Historycal Review) | ![]()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5-09-29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호서사학외국어명 : HO-SUH SAHAK | ![]()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0.56 | 0.56 | 0.48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46 | 0.46 | 0.953 | 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