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정책과 ‘조선영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화정책은 ‘검열’을 통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정책과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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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정책과 ‘조선영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화정책은 ‘검열’을 통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정책과 검...
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조선총독부의 영화검열정책과 ‘조선영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화정책은 ‘검열’을 통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정책과 검열이 반드시 동일한 양상으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식민지 시기 영화정책은 강압일변도였고 검열 또한 폭력적으로만 집행되었다는 종래의 시각은 재고되어야만 한다. 식민지 시기 전체를 통해서 영화정책과 검열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점차 단일한 기준과 세련된 ‘표준’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모순과 갈등, 혼란을 수반한 것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기 영화정책은 1926년과 1934년을 통해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1940년 ‘조선 영화령’을 통해 완성된다. 신문이나 잡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출판물에 대한 근대적 검열의 법적 장치는 1910년을 전후로 해서 완성된다. 초기의 영화정책은 상영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가 영화가 지닌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도를 정책으로까지 연결시킬 만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조선총독부는 영화의 대중적 지지를 구체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활동사진 필름검열규칙’의 제정과 검열의 경무국 도서과로의 일원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1926년에 시행된 이 두 가지 법적장치는 조선총독부의 영화정책의 전환점을 대변하는 것이다. 검열규칙을 통해서 검열은 비로소 ‘전국적으로’ 일원화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도서과를 통해서는 검열에 대한 표준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총독부의 정책전환은 당시의 대중에 대한 영화적 열광에 대한 반응이면서 동시에 발성영화의 탄생이라는 영화적 사건과 그로인한 영화산업의 필요성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총독부의 ‘영화 통제’ 구상이 가시적인 정책으로 드러난 것이 1934년의 ‘활동사진영화취체규칙’이다. 이 규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영화수입제한’ 규정인데 이는 일본의 영화산업을 헐리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식민지 조선에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에 조선에서 일본영화는 대중적인 인기가 형편없었는데 반해 헐리웃영화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총독부는 헐리웃 영화를 제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본이 열악한 조선영화 대신 일본영화를 확대하길 원했으나 총독부의 의도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제한 규정으로 일본영화의 인기가 전보다 상승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부터 조선영화는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조선영화를 일본영화의 하위텍스트로 두려는 총독부의 정책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영화산업의 저개발이라는 정책적 의도는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일본영화에 대한 조선 대중의 지지까지는 이끌어 내지 못했다. 결국 1942년 조선영화는 그토록 갈망하던 체계화된 영화 제작사를 갖게 되지만(조선 영화제작 주식회사의 설립) 이는 이미 영화정책이 ‘통제’에서 ‘국책’으로 변모한 다음의 일이었다. 1940년대가 되면 영화는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데 이는 조선영화의 산업화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영화텍스트에는 이러한 정책적 변화과정이 어떤 식으로 기입되어 있을까? 영화에는 총독부의 정책의 반영과 검열의 흔적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집없는 천사>(최인규, 1941)의 아동의 규율화와 일장기 게양장면이나 <조선해협>(박기채, 1943)의 정오 묵도장면, <지원병>(안석영, 1941)에서 지원병이 되고자 근심하는 이야기등은 모두 검열정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영화들(대부분 친일영화들)에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정책에의 동화라는 표면을 흐르는 공간에서 잉여적으로 존재하는 징후적인 것들이다. 이를테면, <지원병>에서 주인공인 춘호의 ‘우울증’이나 <반도의 봄>(이병일, 1940)에서 영일과 극중감독의 어두운 표정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일종의 ‘우울증’을 ‘식민지적 우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적이고 독백적인 고독이기 보다는 사회적이고 공유가능한 경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식민지적 근대는 개인의 삶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징후적으로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를 우리는 식민지 근대 혹은 식민지 정책과 검열이 갈등과 모순을 통해서 작동하고 있음을 영화적으로 그대로 상영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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