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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체제하, 자국문학사 수립이라는 난제 - 안자산의 <<조선문학사>>가 놓인 동아시아 문학사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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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동아시아 국가 및 민족에 대한 문학사 기술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중국의 문학사이다. 그런데 중국문학사의 기술은 중국인에 앞서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1880년 러시아의 한학자인 바시리예프(V. P. Vasilév)에 의해 저술된 <<中國文學史綱要>>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된 것이 시초이다. 일본인들도 19세기 말에 중국문학사 저술을 남겼는데, 코조 테이키치[古城貞吉]의 <<支那文學史>>(1897)와 사사카와 린푸[笹川種郞]의 <<支那小說戱曲小史>>(1897), <<支那文學史>>(1898) 등이 그것이다. 중국인에 의한 자국문학사의 기술은 20세기에 이르러 시도되었다. 더우징판[寶警凡]의 <<歷朝文學史>>(1897년 탈고, 1906년 출간)와 린촨쟈[林傳甲]의 <<中國文學史>>(1904), 황런[黃人]의 <<中國文學史>>(1905년 전후) 등이 그것들이다. 더우징판의 <<歷朝文學史>>는 문명사로서의 중국문학사 기술을 목표로 하여 총 다섯 부분으로 중국문학사의 체계를 갖추었는데, 서론에 뺀 본론의 2-5장에 걸쳐 중국 전래의 經史子集을 소개, 정리하였다. 1904년에 나온 린촨쟈의 <<中國文學史>>는 경사대학당 전공수업의 교재로 출판된 것으로, 중체서용에 입각하여 유교경전에 비중을 두어 ‘문체’를 중심으로 삼는 역사서술 체계인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작성된 문학사이다. 린촨쟈의 문학사와 거의 동시에 나온 황런의 <<中國文學史>>는 전통적 시각의 문학사에서 근대적 시각의 문학사 기술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문학사이다. 다분히 중화중심주의적 관점이 전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런은 새로운 근대적 ‘미’의 예술이되 ‘선’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학관을 내세워 중국문학사를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에서 근대국가를 단위로 하여 최초로 자국 문학사를 스스로 산출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학사는 1890년에 출간된 미카미 산지[三上參次], 다카츠 구와사부로[高津鍬三郞]가 공저한 <<日本文学史>>(上,下, 金港堂)이다. 그런데 이 일본문학사는 메이지시대 대학교육의 산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 국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실용적인 근대학문을 지향했던 도쿄대학의 학문적 경향 속에서 출간된 일본자국문학사가 바로 <<日本文学史>>이다. 1892년에는 오와타 타케키[大和田建樹]의 <<和文学史>>가 출간되었다. 연이어 그는 전5권의 <<日本大文学史>>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1899년에 나온 하가 야이치[芳賀矢一]의 <<国文学史十講>>은 초판 출간 이후 판을 거듭하여 1926년에는 20판, 1932년에는 23판이 출간될 정도로 문학사 교재로 널리 보급된 근대일본의 자국문학사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美文學” 즉 감상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진 문장을 문학사 기술의 대상으로 선명하게 내세웠다. 동시에 하가 야이치는 중국문명으로부터의 영향이나 일본 고전풍의 비중을 경시하면서 “순수한 일본풍”의 문학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중국,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국 최초의 국문학 통사체계를 수립하였다고 평가되는 안자산의 <<조선문학사>>는 식민지 치하인 1922년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안자산은 어떤 현실적 지향과 문학 개념을 가지고 <<조선문학사>>를 기술하였는가. 1910년대 계몽주의자를 자처했던 이광수가 상해 망명 이후 정치적 공공영역의 상실에 대한 보상심리로 ‘문학’이라는 서양문학의 미개념을 내세워 자율적 내면 영역으로 도피해 들어간 데 비하여, 안자산은 오히려 잡문학까지 포괄하는 조선적 ‘문학’ 개념을 통해 <<조선문학사>>의 기술에 착수하면서 정치적 공공영역의 복원을 꿈꾸었다. 이광수는 1916년 <文學이란 何오>를 통해 이미 ‘Literature’의 역어로서의 문학을 전면화하면서 개조(改造)의 시대를 맞아 전통을 부정하는 <민족개조론>(1922. 5)으로 치달려갔다. 반면에 안자산은 청년운동에 몸담으면서 <<자각론>>(1920)과 <<개조론>>(1920)이라는 사회평론을 발표하고 그 연장에서 국수(國粹) 혹은 종(倧)의 정신사이자 민족의 자각을 위한 교과서로 <<조선문학사>>의 창안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출간된 선행 문학사 텍스트들을 참조하면서, 그러나 식민지의 나라 없는 지식인으로서 근대적 문학개념에 입각하여 조선문학사를 정초하고자 했던 안자산 앞에는 두 가지 커다란 이중과제가 가로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 하나는 보편사 따라잡기로서 조선의 문학사 통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없는 민족사의 비원을 정신사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었다. <<조선문학사>>의 저술로 처음 시도된 이중의 과제는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 사이에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문학사가들에게 살아있는 문제로 현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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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국가 및 민족에 대한 문학사 기술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중국의 문학사이다. 그런데 중국문학사의 기술은 중국인에 앞서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1880년 러시아의 한학자인 바시...

      동아시아 국가 및 민족에 대한 문학사 기술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중국의 문학사이다. 그런데 중국문학사의 기술은 중국인에 앞서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1880년 러시아의 한학자인 바시리예프(V. P. Vasilév)에 의해 저술된 <<中國文學史綱要>>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된 것이 시초이다. 일본인들도 19세기 말에 중국문학사 저술을 남겼는데, 코조 테이키치[古城貞吉]의 <<支那文學史>>(1897)와 사사카와 린푸[笹川種郞]의 <<支那小說戱曲小史>>(1897), <<支那文學史>>(1898) 등이 그것이다. 중국인에 의한 자국문학사의 기술은 20세기에 이르러 시도되었다. 더우징판[寶警凡]의 <<歷朝文學史>>(1897년 탈고, 1906년 출간)와 린촨쟈[林傳甲]의 <<中國文學史>>(1904), 황런[黃人]의 <<中國文學史>>(1905년 전후) 등이 그것들이다. 더우징판의 <<歷朝文學史>>는 문명사로서의 중국문학사 기술을 목표로 하여 총 다섯 부분으로 중국문학사의 체계를 갖추었는데, 서론에 뺀 본론의 2-5장에 걸쳐 중국 전래의 經史子集을 소개, 정리하였다. 1904년에 나온 린촨쟈의 <<中國文學史>>는 경사대학당 전공수업의 교재로 출판된 것으로, 중체서용에 입각하여 유교경전에 비중을 두어 ‘문체’를 중심으로 삼는 역사서술 체계인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작성된 문학사이다. 린촨쟈의 문학사와 거의 동시에 나온 황런의 <<中國文學史>>는 전통적 시각의 문학사에서 근대적 시각의 문학사 기술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문학사이다. 다분히 중화중심주의적 관점이 전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황런은 새로운 근대적 ‘미’의 예술이되 ‘선’의 가치를 지향하는 문학관을 내세워 중국문학사를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동아시아 한자문명권에서 근대국가를 단위로 하여 최초로 자국 문학사를 스스로 산출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학사는 1890년에 출간된 미카미 산지[三上參次], 다카츠 구와사부로[高津鍬三郞]가 공저한 <<日本文学史>>(上,下, 金港堂)이다. 그런데 이 일본문학사는 메이지시대 대학교육의 산물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 국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실용적인 근대학문을 지향했던 도쿄대학의 학문적 경향 속에서 출간된 일본자국문학사가 바로 <<日本文学史>>이다. 1892년에는 오와타 타케키[大和田建樹]의 <<和文学史>>가 출간되었다. 연이어 그는 전5권의 <<日本大文学史>>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1899년에 나온 하가 야이치[芳賀矢一]의 <<国文学史十講>>은 초판 출간 이후 판을 거듭하여 1926년에는 20판, 1932년에는 23판이 출간될 정도로 문학사 교재로 널리 보급된 근대일본의 자국문학사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美文學” 즉 감상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진 문장을 문학사 기술의 대상으로 선명하게 내세웠다. 동시에 하가 야이치는 중국문명으로부터의 영향이나 일본 고전풍의 비중을 경시하면서 “순수한 일본풍”의 문학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중국,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국 최초의 국문학 통사체계를 수립하였다고 평가되는 안자산의 <<조선문학사>>는 식민지 치하인 1922년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안자산은 어떤 현실적 지향과 문학 개념을 가지고 <<조선문학사>>를 기술하였는가. 1910년대 계몽주의자를 자처했던 이광수가 상해 망명 이후 정치적 공공영역의 상실에 대한 보상심리로 ‘문학’이라는 서양문학의 미개념을 내세워 자율적 내면 영역으로 도피해 들어간 데 비하여, 안자산은 오히려 잡문학까지 포괄하는 조선적 ‘문학’ 개념을 통해 <<조선문학사>>의 기술에 착수하면서 정치적 공공영역의 복원을 꿈꾸었다. 이광수는 1916년 <文學이란 何오>를 통해 이미 ‘Literature’의 역어로서의 문학을 전면화하면서 개조(改造)의 시대를 맞아 전통을 부정하는 <민족개조론>(1922. 5)으로 치달려갔다. 반면에 안자산은 청년운동에 몸담으면서 <<자각론>>(1920)과 <<개조론>>(1920)이라는 사회평론을 발표하고 그 연장에서 국수(國粹) 혹은 종(倧)의 정신사이자 민족의 자각을 위한 교과서로 <<조선문학사>>의 창안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출간된 선행 문학사 텍스트들을 참조하면서, 그러나 식민지의 나라 없는 지식인으로서 근대적 문학개념에 입각하여 조선문학사를 정초하고자 했던 안자산 앞에는 두 가지 커다란 이중과제가 가로놓여 있었던 셈이다. 그 하나는 보편사 따라잡기로서 조선의 문학사 통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없는 민족사의 비원을 정신사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었다. <<조선문학사>>의 저술로 처음 시도된 이중의 과제는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 사이에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문학사가들에게 살아있는 문제로 현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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