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1939년 2월 N.R.F. 지에 실린 “프랑수아 모리악 씨와 자유”라는 제목의 비평 기사에서 선배 작가인 모리악, 특히 소설가 모리악의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즈’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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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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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사르트르는 1939년 2월 N.R.F. 지에 실린 “프랑수아 모리악 씨와 자유”라는 제목의 비평 기사에서 선배 작가인 모리악, 특히 소설가 모리악의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즈’가 등장...
사르트르는 1939년 2월 N.R.F. 지에 실린 “프랑수아 모리악 씨와 자유”라는 제목의 비평 기사에서 선배 작가인 모리악, 특히 소설가 모리악의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테레즈’가 등장하는 일련의 작품들의 완결판인 밤의 끝(1935)에 대해 매우 가혹한 비판을 가한다. 사르트르의 이 기사가 가진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은데, 우선 이 글에는 모리악이라는 한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을 넘어 기존의 문학과 사상적 전통 전체를 문제 삼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글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작중 인물에 대한 자유와 소설가의 입장에 대한 문제 제기 속에 이후 문학 비평의 흐름을 좌우하게 될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문제들, 작가의 죽음과 독자의 역할 문제, 나아가 기독교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라는 대립적 사유의 문제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기사에서 사르트르는 우선 소설 인물들, 특히 테레즈라는 인물의 자유와 소설가의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나아가 그는 이 문제를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이동시켜 소설가의 전능성,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간접적인 문제 제기까지 시도한다. 다음으로 사르트르는 소설의 관점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소설가는 인물들의 증인, 혹은 공범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둘은 될 수 없다. 인물들의 안에 있거나, 바깥에 있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모리악은 테레즈 데케루와 밤의 끝에서 여러 번에 걸친 관점의 이동을 시도했는데, 사르트르는 이와 같은 관점의 이동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테레즈-주체에서 테레즈-객체로의 왕복 운동”이라고 불렀다. 사르트르가 이 기법을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와 같은 관점의 이동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개입이 동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지적 작가의 개입을 통한 인물의 객체화는 자유를 바탕으로 한 대자(être-pour-soi) 존재로서의 인간의 실존에 집중했던 그의 사유와 대척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르트르의 비평과 관련하여 우리는 몇 가지의 논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인물의 자유와 관련된 사르트르의 비판이 과연 그 자신의 작품 속에서는 엄격히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모리악의 작품이 과연 이와 같은 비판의 희생양이 될 만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관점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비슷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유예와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르트르 역시 현상적인 묘사와 인물의 내적 독백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20년 후에 이루어진 렉스프레스 지와의 대담에서 “소설의 중요한 특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열중하게 하고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지금 같으면 더 유연해졌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편 우리는 사르트르의 비판 이후 모리악의 입장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모리악이 직접적인 대응은 삼갔다 할지라도, 사르트르의 공격은 이후 모리악의 창작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공격이 있은 후 2년 뒤에 집필된 바리새 여인에서 그는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소설가로서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자 노력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리악은 자신의 문학론을 정리한 소설가와 그의 인물들에서 여전히 소설가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소설가를 ‘신의 모방자’에 비유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르트르의 공격이 내포하고 있는 두 번째 중요한 의미와 만나게 되는데, 바로 소설가의 위상과 독자의 문제가 그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다시피 이 문제는 이후 롤랑 바르트 등으로 대표되는 구조주의자들의 작업과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어지는 사유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