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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67년 "동백림사건" 이후 한독관계의 긴장과 회복: 비밀해제된 한국외교문서를 중심으로 = The Diplomatic Strains between South Korea and West Germany after the East Berlin North Korean Spy Ring Incident in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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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diplomatic strains between South Korea and West Germany caused by the East Berlin North Korean Spy Ring Incident(DongbaekrimGancheopdan Sageon) using newly available documents and memoirs. After the South Korean press release in 1967, the diplomatic strains lasted until 1970, despite many early opportunities for diplomatic solution. The diplomatic strains was further drawn out by legal actions against all those involved in the incident who had been escorted back to South Korea. The diplomatic strains lasted not only due to cognitiv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understanding the character of the incident, but also due to a conflict between West German coercive diplomoacy for human rights and South Korean judicial sovereig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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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diplomatic strains between South Korea and West Germany caused by the East Berlin North Korean Spy Ring Incident(DongbaekrimGancheopdan Sageon) using newly available documents and memoirs. After the South K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diplomatic strains between South Korea and West Germany caused by the East Berlin North Korean Spy Ring Incident(DongbaekrimGancheopdan Sageon) using newly available documents and memoirs. After the South Korean press release in 1967, the diplomatic strains lasted until 1970, despite many early opportunities for diplomatic solution. The diplomatic strains was further drawn out by legal actions against all those involved in the incident who had been escorted back to South Korea. The diplomatic strains lasted not only due to cognitiv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understanding the character of the incident, but also due to a conflict between West German coercive diplomoacy for human rights and South Korean judicial sovereig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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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1967년 발표된 동백림사건 이후 한독관계의 긴장과 회복의 외교사를 비밀해제된 한국 측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한독 간의 외교적 긴장은 왜 장기화되었을까? 사건 발생 초기 독일의 뤼프케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가장 친독(親獨)적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의 독일에 대한 우의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등 양국 간의 외교적 긴장은 조기에 해소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1967년 12월 13일1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서독정부의 입장은 다시 강경해졌으며, 이후 동백림사건의 실체에 대한 양국 간의 인식적 차이 이외에 서독의 압박적 인권외교와 한국의 사법주권 수호의지가 충돌하면서 외교적 긴장이 지속되었다.
    이후 경제적 지렛대를 활용한 독일의 압박외교에 맞서서 한국은 독자적 외교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치했다. 독일은 영남화전 건설을 위한 차관의 취소와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 보이콧, 개발원조의 전면적 중단, 대사소환조치를 포함한 외교관계의 재고 등을 단계적으로 고려하면서, 압박외교를 펼쳤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차관 관련 사업들에 대한 지원국을 교체하거나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대응전략을 구사했다.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은 1970년 12월 관련자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 선 사법처리 후 관용처리’ 방식에 의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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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1967년 발표된 동백림사건 이후 한독관계의 긴장과 회복의 외교사를 비밀해제된 한국 측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한독 간의 외교적 긴장은 왜 장...

    이 연구는 1967년 발표된 동백림사건 이후 한독관계의 긴장과 회복의 외교사를 비밀해제된 한국 측 외교문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한독 간의 외교적 긴장은 왜 장기화되었을까? 사건 발생 초기 독일의 뤼프케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가장 친독(親獨)적이라고 생각되는 한국의 독일에 대한 우의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등 양국 간의 외교적 긴장은 조기에 해소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1967년 12월 13일1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 34명이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서독정부의 입장은 다시 강경해졌으며, 이후 동백림사건의 실체에 대한 양국 간의 인식적 차이 이외에 서독의 압박적 인권외교와 한국의 사법주권 수호의지가 충돌하면서 외교적 긴장이 지속되었다.
    이후 경제적 지렛대를 활용한 독일의 압박외교에 맞서서 한국은 독자적 외교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치했다. 독일은 영남화전 건설을 위한 차관의 취소와 대한국제경제협의체(IECOK) 보이콧, 개발원조의 전면적 중단, 대사소환조치를 포함한 외교관계의 재고 등을 단계적으로 고려하면서, 압박외교를 펼쳤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차관 관련 사업들에 대한 지원국을 교체하거나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대응전략을 구사했다.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은 1970년 12월 관련자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결국, ‘ 선 사법처리 후 관용처리’ 방식에 의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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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종고, "한독교섭사" 홍성사 1983

    2 하영선,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5

    3 최종고, "한강에서 라인강까지: 한독관계사(Vom Han bis zum Rhein: Geschichte der Deutsch-Koreanischen Beziehungen" 유로서적 2004

    4 이수길, "한강과 라인강 위에 무지개 다리를 놓다" 지식산업사 1997

    5 "한∙독경협(韓獨經協) 재개"

    6 "패링 서독대사 귀임"

    7 김인섭,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나남출판 2012

    8 "조선일보(12월25일)"

    9 "정치학 전공한 중량급 외교관 파울 프랑크 서독특사"

    10 "윤피고(尹被告) 감형 환영, 동백림사건선고 서독정부표명"

    1 최종고, "한독교섭사" 홍성사 1983

    2 하영선,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2005

    3 최종고, "한강에서 라인강까지: 한독관계사(Vom Han bis zum Rhein: Geschichte der Deutsch-Koreanischen Beziehungen" 유로서적 2004

    4 이수길, "한강과 라인강 위에 무지개 다리를 놓다" 지식산업사 1997

    5 "한∙독경협(韓獨經協) 재개"

    6 "패링 서독대사 귀임"

    7 김인섭,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 법치주의를 추구했던 한 법조인의 초상" 나남출판 2012

    8 "조선일보(12월25일)"

    9 "정치학 전공한 중량급 외교관 파울 프랑크 서독특사"

    10 "윤피고(尹被告) 감형 환영, 동백림사건선고 서독정부표명"

    11 한승헌, "유신체제와 민주화 운동" 춘추사 1984

    12 "월말(月末)께 차관협정 체결"

    13 김영주, "외교의 경험과 단상" 인사동문화 2004

    14 "영남화전(火電) 서독차관 난망, 제3국으로 전환"

    15 "영남화전 건설차관, 3국으로 전환방침"

    16 윤하정, "어느 외교관의 비망록-외교의 최전선을 누비다" 기파랑 2011

    17 백영훈,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 한국산업개발연구원 1997

    18 "서독 재정차관 조인"

    19 윤응렬, "상처투성이의 영광" 황금알 2010

    20 최인혜, "분단기 동∙서독간 교통교류실태와 서독의 대동독 교통부문 지원정책" 1-12, 2002

    21 윤태영, "북한 핵문제와 미국의 ‘강압외교’: 당근과 채찍접근을 중심으로" 한국국제정치학회 43 (43): 275-294, 2003

    22 "북괴대남간첩사건(北傀對南間諜事件) 발표"

    23 차주희, "미국의 대북 강압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1, 2차 북핵 협상 과정의 비교를 중심으로" 11 : 107-123, 2005

    24 "동백림사건공판, 서독정부 대표도 방청"

    25 "동백림사건 구형, 서독 관심을 통고"

    26 강명세, "독일총선분석" 11-13, 2005

    27 "대한민국외교문서. 『동백림 사건, 1967-1971』. 전13권"

    28 노명환, "냉전 시대 박정희의 한국 산업화 정책과 서독의 의미와 역할 1961-1967" 수선사학회 (38) : 289-323, 2011

    29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2, 주요 의혹사건편 上권" 국가정보원 2007

    30 "공작단사건 방청위해서 독‘구’교수 내한"

    31 "공소거의시인(是認), 윤이상"

    32 한옥신, "間諜裁判의判斷과思想: 東伯林據点工作團事件을中心으로" 광명출판사 1969

    33 United Nations, "Yearbook of International Trade Statistics"

    34 United Nations, "Yearbook of International Trade Statistics"

    35 Jakobsen, Peter Viggo, "Western Use of Coercive Diplomacy after the Cold War: A Challenge for Theory and Practice" Macmillan Press 1998

    36 George, Alexander L., "Type of Knowledge for Policymaking, In Bridging the Gap: Theory and Practice in Foreign Policy" U.S. Institute of Peace Press 1993

    37 "Political Affairs: Intervention.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38 "Political Affairs and Relations: spy ring case, 1968. American Embassy in Seoul.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1968-1969"

    39 "Political Affairs and Relations: Internal Security. Rusk, Dean.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40 "Note No. 94: Discussion of the points made by Kim Il-sung in his October 1966 address is in Intelligence(Jan 2, 1968)"

    41 "Korea Times (5월 16일)"

    42 Cimbala, Stephen J., "Introduction: Military Strategy and Coercion, In Coercive Military Strategy" Texas A & M University Press 1998

    43 George, Alexander L., "Forceful Persuasion: Coercive Diplomacy as an Alternative to War"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1991

    44 "Educational & Cultural Exchang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45 George, Alexander L., "Coercive Diplomacy, In The Use of Force: Military Power and International Politics"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2004

    46 "Central Foreign Policy Files. Political and Defense. Rusk, Dean.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1967-1969"

    47 Schelling, Thomas C., "Arms and Influence" Yale University Press 1966

    48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Appendix table 6-1, Real GDP and real GDP per capita, 1960-2003"

    49 외무부, "60년대의 한국외교" 외무부 1971

    50 "2천만불(弗) 차관등"

    51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1967년 동백림 사건" 국가정보원 2006

    52 이영조, "1960년대 초 서독의 대한 상업차관에 대한 파독근로자의 임금 담보설의 진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4 (34): 171-194, 2013

    53 전명혁, "1960년대 ‘동백림사건’과 정치∙사회적 담론의 변화" (22) : 139-16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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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11 1.11 1.2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 1 1.924 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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