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고구려・백제의 遼河 유역 진출과 對中 交易 = Goguryeo and Baekje’s Expansion into Liaohe Area and Their Trading Relationship with China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333684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aims to unearth the meanings of Baekje’s expansion to Liaoxi(遼西) related to historical records on the expansion to Liaoxi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Baekje and to determine what the title of Nothern Dynasty bestowed to envoys of Baekje by Southern dynasty means. Additionally, it aim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immigrants from Liaohe(遼河) area and Baekje people living in the area of Liaohe. At the same time, I will examine the establishment of trade route to China by Baekje and the trade of products of Liaohe area with China, Goguryeo and Baekje based on the Chinese historical record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is found out that the districts of Baekje in Liaoxi shown in the history books of China seem to be the self-governing districts by people from Baekje holding official ranks of Baekje, which consisted of wandering people from Lelang Commandery and Daifang Commandery ; and from Buyeo and China. That is, after the Disaster of Yongjia, Lelang commandery and Daifang commandery moved their locations to Liaoxi and Baekje people settled in Noksan in this area. Then these Baekje people moved to Longcheng area and settled down there due to the attack to Buyeo by Murong Jun in 346. Since then, autonomic districts had been established by them in the area of Dàlínghé in the reign of King Geungwisu. In around the 5th century, they established the common settlements along the east coast area of China in the process of the trade of Baekje with Southern Dynasty. These settlements played a role as a middle stopover for Baekje envoys to Southern dynasty. The battle between Northern Wei and Baekje resulted from this pro-Southern dynasty policy by Baekje.
      The theory of Baekje’s expansion to Liaoxi is based on the active naval power of Baekje and it has the meaning as the pre history of Sillabang established by Jangnogo after that.
      번역하기

      This article aims to unearth the meanings of Baekje’s expansion to Liaoxi(遼西) related to historical records on the expansion to Liaoxi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Baekje and to determine what the title of Nothern Dynasty bestowed to env...

      This article aims to unearth the meanings of Baekje’s expansion to Liaoxi(遼西) related to historical records on the expansion to Liaoxi in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Baekje and to determine what the title of Nothern Dynasty bestowed to envoys of Baekje by Southern dynasty means. Additionally, it aims to examine the activities of immigrants from Liaohe(遼河) area and Baekje people living in the area of Liaohe. At the same time, I will examine the establishment of trade route to China by Baekje and the trade of products of Liaohe area with China, Goguryeo and Baekje based on the Chinese historical records.
      As a result of the study, it is found out that the districts of Baekje in Liaoxi shown in the history books of China seem to be the self-governing districts by people from Baekje holding official ranks of Baekje, which consisted of wandering people from Lelang Commandery and Daifang Commandery ; and from Buyeo and China. That is, after the Disaster of Yongjia, Lelang commandery and Daifang commandery moved their locations to Liaoxi and Baekje people settled in Noksan in this area. Then these Baekje people moved to Longcheng area and settled down there due to the attack to Buyeo by Murong Jun in 346. Since then, autonomic districts had been established by them in the area of Dàlínghé in the reign of King Geungwisu. In around the 5th century, they established the common settlements along the east coast area of China in the process of the trade of Baekje with Southern Dynasty. These settlements played a role as a middle stopover for Baekje envoys to Southern dynasty. The battle between Northern Wei and Baekje resulted from this pro-Southern dynasty policy by Baekje.
      The theory of Baekje’s expansion to Liaoxi is based on the active naval power of Baekje and it has the meaning as the pre history of Sillabang established by Jangnogo after that.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백제의 발전과정에서 요서진출 관련 사료의 성격과 그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남조가 백제 사신들에게 사여한 북조 지역의 직함이 어떠한 의미인지 살피고자 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요하유역으로부터의 이주민과 요하일대 백제인의 활약을 검토하고, 중국측 사서에 보이는 요하유역의 산물과 관련하여 백제의 대중 교통로의 개설과 고구려・백제의 대중 교역의 단편을 살피고자 하였다.
      중국 사서에 보이는 요서지역의 백제군은 백제의 관위를 지닌 백제계 인물들이 낙랑・대방으로부터의 유이민과 부여・중국계의 유이민을 통섭하여 다스리던 자치군이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곧 영가의 난 이후 낙랑・대방군이 요서지역에 이치되면서 백제인들이 녹산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후 이들 백제인이 용성지역으로 옮겨 거주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근구수왕대에 대능하 유역의 정치적 공백기에 자치군을 두었으며, 5세기 무렵 이들이 남조와의 교역 과정에서 중국 동해안 지역의 해상로 거점상에 집단거류지를 형성하면서 당시 백제와 남조를 내왕하던 백제사신들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하였다. 북위와 백제간의 전투는 백제의 친남조 정책에 반발한 북위의 수륙 양면에 걸친 백제 본토에 대한 침략이었다. 이에 백제의 요서진출설은 백제의 활발한 해상력에 바탕한 것으로서, 후일 장보고 신라방의 前史로서 그 의의를 살필 수 있다고 본다.
      번역하기

      백제의 발전과정에서 요서진출 관련 사료의 성격과 그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남조가 백제 사신들에게 사여한 북조 지역의 직함이 어떠한 의미인지 살피고자 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요하유...

      백제의 발전과정에서 요서진출 관련 사료의 성격과 그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남조가 백제 사신들에게 사여한 북조 지역의 직함이 어떠한 의미인지 살피고자 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요하유역으로부터의 이주민과 요하일대 백제인의 활약을 검토하고, 중국측 사서에 보이는 요하유역의 산물과 관련하여 백제의 대중 교통로의 개설과 고구려・백제의 대중 교역의 단편을 살피고자 하였다.
      중국 사서에 보이는 요서지역의 백제군은 백제의 관위를 지닌 백제계 인물들이 낙랑・대방으로부터의 유이민과 부여・중국계의 유이민을 통섭하여 다스리던 자치군이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곧 영가의 난 이후 낙랑・대방군이 요서지역에 이치되면서 백제인들이 녹산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후 이들 백제인이 용성지역으로 옮겨 거주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근구수왕대에 대능하 유역의 정치적 공백기에 자치군을 두었으며, 5세기 무렵 이들이 남조와의 교역 과정에서 중국 동해안 지역의 해상로 거점상에 집단거류지를 형성하면서 당시 백제와 남조를 내왕하던 백제사신들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하였다. 북위와 백제간의 전투는 백제의 친남조 정책에 반발한 북위의 수륙 양면에 걸친 백제 본토에 대한 침략이었다. 이에 백제의 요서진출설은 백제의 활발한 해상력에 바탕한 것으로서, 후일 장보고 신라방의 前史로서 그 의의를 살필 수 있다고 본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권덕영, "한국의 역사만들기" 새문사 2015

      2 김철준, "한국고대사회연구" 知識産業社 1975

      3 李弘稙, "한국고대사연구" 신구문화사 1971

      4 박남수, "한국 고대의 동아시아 교역사" 주류성 2011

      5 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일조각 1965

      6 신채호, "조선상고사"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1983

      7 鄭寅普, "조선사연구(下)" 우리역사연구재단 2013

      8 박남수, "일제강점기 언론의 신라상 왜곡"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7

      9 박남수, "왕인과 ‘와니(和邇)’, 무엇이 문제인가" (사)왕인박사현창협회 부설왕인문화연구소 2018

      10 "삼국사기"

      1 권덕영, "한국의 역사만들기" 새문사 2015

      2 김철준, "한국고대사회연구" 知識産業社 1975

      3 李弘稙, "한국고대사연구" 신구문화사 1971

      4 박남수, "한국 고대의 동아시아 교역사" 주류성 2011

      5 양주동, "증정 고가연구" 일조각 1965

      6 신채호, "조선상고사"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 1983

      7 鄭寅普, "조선사연구(下)" 우리역사연구재단 2013

      8 박남수, "일제강점기 언론의 신라상 왜곡"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7

      9 박남수, "왕인과 ‘와니(和邇)’, 무엇이 문제인가" (사)왕인박사현창협회 부설왕인문화연구소 2018

      10 "삼국사기"

      11 여호규, "백제의 요서진출설 재검토" 91 : 2001

      12 李明揆, "백제의 대외관계에 관한 일시론" 37 : 1983

      13 김기섭, "백제와 근초고왕" 학연문화사 2000

      14 방선주, "백제군의 요서진출과 그 배경" 11 : 1971

      15 임기환, "백제 遼西 진출설과 역대 교과서 서술 검토" 고려사학회 (63) : 127-166, 2016

      16 권덕영, "백제 유민 禰氏 一族 묘지명에 대한 斷想" 한국사학회 (105) : 1-36, 2012

      17 박진숙, "백제 동성왕대 대외정책의 변화" 32 : 2000

      18 양기석, "백제 대륙진출설의 허실" (10) : 1990

      19 강종훈, "백제 대륙진출설의 제문제" 4 : 1992

      20 박성봉, "동이전백제관계자료" 경희대 전통문화연구소 1986

      21 김수미, "남제서 백제전의 험윤・흉리와 대방의 실체" (34・35) : 2005

      22 김영관, "나당연합군의 백제침공전략과 백제의 방어전략" 2 (2): 1999

      23 이기문, "국어사개설 개정판" 탑출판사 1972

      24 연민수, "고대한일교류사" 혜안 2003

      25 "魏書"

      26 李龍範, "高句麗의 遼西進出企圖와 突厥" 4 : 1959

      27 안정준, "高句麗의 樂浪・帶方 故地 영역화 과정과 지배방식" 한국고대사학회 (69) : 125-169, 2013

      28 "順菴集"

      29 金起燮, "韓國古代의 考古와歷史" 學硏文化社 1997

      30 "隋書"

      31 "通典"

      32 "資治通鑑"

      33 "讀史方輿紀要"

      34 "續日本紀"

      35 김성한, "百濟의 遼西 영유와 ‘樂浪’" 호남사학회 (52) : 171-205, 2013

      36 김성한, "百濟의 遼西 영유와 ‘百濟郡’" 호남사학회 (50) : 1-31, 2013

      37 金庠基, "百濟의 遼西經略에 대하여" 3 : 1967

      38 김영관, "百濟遺民 禰寔進 墓誌 소개" 10 : 2007

      39 今西龍, "百濟史硏究" 國書刊行會 1934

      40 和田博德, "百濟の遼西領有說について" 25 (25): 1951

      41 金瑛二, "百濟に遼西經營について" (97・98) : 1987

      42 金廷鶴, "百濟と倭國" 六興出版 1981

      43 千寬宇, "灤河下流의 朝鮮" (21・22) : 1977

      44 강종훈, "漢城都邑期의 百濟"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07

      45 "梁職貢圖"

      46 "梁書"

      47 "東國文獻備考"

      48 高柄翊, "東亞交涉史의 硏究" 서울대출판부 1970

      49 "晉書"

      50 "日本書紀"

      51 "新撰姓氏錄"

      52 "後漢書"

      53 "建康實錄"

      54 "宋書"

      55 이승호, "夫餘 政治史 硏究" 동국대학교 2018

      56 "太平寰宇記"

      57 拜根興, "唐代高麗百濟移民硏究"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12

      58 "南齊書"

      59 "南史"

      60 양기석, "五世紀 百濟의 王・侯・太守制에 對하여" 38 : 1984

      61 서보경, "『新撰姓氏錄』의 편찬과 목적" 한일관계사학회 (41) : 31-79, 2012

      62 서보경, "『新撰姓氏錄』의 기초적 연구" 일본학연구소 (30) : 5-32, 2017

      63 유원재, "‘百濟略有遼西’ 기사의 분석" 20 : 1989

      64 백길남, "‘百濟略有遼西’ 記事의 기술배경과 漢人 유이민 집단 -晉平郡縣 설치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학회 (86) : 5-48, 2017

      65 강종훈, "4세기 백제의 요서 지역 진출과 그 배경" 한국고대사학회 30 : 5-38, 2003

      66 安政焌, "4~5세기 낙랑・대방군 고지의 중국계 이주민과 중국식 관호" 국사편찬위원회・북경대 한국학연구중심 2016

      67 백길남, "4~5세기 百濟의 中國系 流移民의 수용과 太守號" 국학연구원 (172) : 1-31, 2015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8 1.18 1.06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6 0.97 2.484 0.48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