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한반도에서 월요청자가 출토되는 여러 지역 가운데 각별히 경주지역에서의 출토현황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 지역에서 출토된 월요청자의 특징과 流入의 推移 등을 검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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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관 (서강대학교)
2009
Korean
학술저널
167-19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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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본고에서는 한반도에서 월요청자가 출토되는 여러 지역 가운데 각별히 경주지역에서의 출토현황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 지역에서 출토된 월요청자의 특징과 流入의 推移 등을 검토하였다. ...
본고에서는 한반도에서 월요청자가 출토되는 여러 지역 가운데 각별히 경주지역에서의 출토현황을 살펴보고, 아울러 이 지역에서 출토된 월요청자의 특징과 流入의 推移 등을 검토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많은 유적에서는 南北朝時代에서 宋代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다량의 越窯瓷器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이 출토된 지역이 바로 慶州地域이다. 越窯瓷器가 출토된 경주지역의 유적으로는 芬皇寺遺蹟ㆍ四天王寺遺蹟ㆍ仁容寺遺蹟ㆍ天官寺遺蹟ㆍ皇龍寺址東便S1E1地區遺蹟ㆍ皇南洞194番地遺蹟ㆍ西部洞19番地遺蹟ㆍ黃龍寺址展示館建立敷地遺蹟ㆍ東川洞7불럭遺蹟ㆍ佛國寺聖寶博物館建立敷地遺蹟ㆍ雁鴨池遺蹟 등이 있는데, 출토된 器形은 비교적 단순하여, 碗이 가장 많고 盤ㆍ執壺ㆍ盒ㆍ托盞 등도 출토되었으나 수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경주지역에 유입된 월요청자의 대부분은 품질이 높은 것들이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비색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월요청자가 8세기 후반~9세기 초기부터 경주지역에 유입되기 시작하여, 9세기 전반경에 접어들어 본격화되었다. 유입 초기의 주요 수요층은 골품귀족들이었으나, 9세기 후반경부터 승려계층이 골품귀족과 더불어 또 다른 주요 수요층으로 등장하였다. 10세기 중엽경에 이르러 월요청자의 유입이 중단되었는데, 신라의 멸망과 고려청자의 출현이 그 주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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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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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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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18 | 1.18 | 1.06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0.96 | 0.97 | 2.484 | 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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