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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圓覺寺13層塔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오해 = The Modern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about the Thirteen-story Stone Pagoda of Wongak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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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 였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非美’내지는 흉물로 간주되던 원각사탑을 한성의 ‘奇觀’내지 ‘偉觀’으로 재발견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들 은 불탑에 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서양 출신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원각사탑에 대하여 객관 적인 견문기를 남길 수 있었는바, 그들이 접촉한 조선 지식인들을 통하여 대체로 13층설을 받아들 였다. 이어서 제Ⅲ장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인 관변학자들이 원각사탑을 본격적으로 학술 조 사하고, 일제식민기 동안 조선총독부가 원각사탑을 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과정 및 그 문제점을 언급 하였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원각사탑 층수 문제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키노 타 다시(關野 貞)의 학설이 10층설에서 13층설로, 다시 다층설로 변하는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마지 막으로 제Ⅳ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62년까지 원각사탑에 대한 인식이 다층설에서 10층설로 바 뀐 경과를 정리하되, 선행하는 일제식민기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이 13층설 일변도였음을 특기해두 었다. 다만 1962년 이후 지금까지 원각사탑에 관련하여 중요한 연구성과가 적지않이 발표되었지만, 층수에 관한 한 대부분 1962년에 확정된 10층설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따로 정리하지 않았다. 학설사 검토의 결과, 원각사탑이 13층탑으로서 건립되었다는 근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백 년이 넘도록 13층설은 단 한 번도 공인받지 못하였으며, 학계에 서 층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각사탑과 경천사탑이 10층 탑이라는 현재의 통설은, 백 년 전에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가 최초로 주창하였다. 세키노는 원각사 에 남아있는 「원각사비」가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기 때문에 원각사탑의 현상만 건축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10층탑이라고 주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발견된 『속동 문선』에 실린 「원각사비」에서 ‘탑 13층을 세웠다.’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 또한 15세기 후반 왕명으 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편찬자들도 원각사탑의 모범인 경천사탑 또한 ‘13층탑’임을 분명히 인식 하고 있었다. 특히 원각사탑 건립 직후 왕명으로 건립된 「원각사비」는 세키노의 10층설이 전제에 오류가 있음 을 명백히 보여준다. 세키노는,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 올려져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13층탑 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원각사비」는 세조가 처음부터 13층탑으로서 원각사탑을 건립하였음 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다만 이례적이게도 13층탑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을 올린 형태로 조성 하였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세조는 왜 13층탑을 세웠으며, 왜 그것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라는 이례적인 국문초록 52 美術資料 제100호 2021 형태로 구현하였는가? 세조가 원각사13층탑을 건립한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원각사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바, 그 첫 단추는 원래의 명칭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필자는 전제의 오류 위에 구축된 세키노의 10층설―나아가 절충적인 다층설―은 이제 폐기하고, 「원각사비」에서 말하는 13층 설을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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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 였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非美’...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 였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非美’내지는 흉물로 간주되던 원각사탑을 한성의 ‘奇觀’내지 ‘偉觀’으로 재발견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들 은 불탑에 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서양 출신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원각사탑에 대하여 객관 적인 견문기를 남길 수 있었는바, 그들이 접촉한 조선 지식인들을 통하여 대체로 13층설을 받아들 였다. 이어서 제Ⅲ장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인 관변학자들이 원각사탑을 본격적으로 학술 조 사하고, 일제식민기 동안 조선총독부가 원각사탑을 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과정 및 그 문제점을 언급 하였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원각사탑 층수 문제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키노 타 다시(關野 貞)의 학설이 10층설에서 13층설로, 다시 다층설로 변하는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마지 막으로 제Ⅳ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62년까지 원각사탑에 대한 인식이 다층설에서 10층설로 바 뀐 경과를 정리하되, 선행하는 일제식민기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이 13층설 일변도였음을 특기해두 었다. 다만 1962년 이후 지금까지 원각사탑에 관련하여 중요한 연구성과가 적지않이 발표되었지만, 층수에 관한 한 대부분 1962년에 확정된 10층설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따로 정리하지 않았다. 학설사 검토의 결과, 원각사탑이 13층탑으로서 건립되었다는 근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백 년이 넘도록 13층설은 단 한 번도 공인받지 못하였으며, 학계에 서 층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각사탑과 경천사탑이 10층 탑이라는 현재의 통설은, 백 년 전에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가 최초로 주창하였다. 세키노는 원각사 에 남아있는 「원각사비」가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기 때문에 원각사탑의 현상만 건축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10층탑이라고 주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발견된 『속동 문선』에 실린 「원각사비」에서 ‘탑 13층을 세웠다.’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 또한 15세기 후반 왕명으 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편찬자들도 원각사탑의 모범인 경천사탑 또한 ‘13층탑’임을 분명히 인식 하고 있었다. 특히 원각사탑 건립 직후 왕명으로 건립된 「원각사비」는 세키노의 10층설이 전제에 오류가 있음 을 명백히 보여준다. 세키노는,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 올려져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13층탑 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원각사비」는 세조가 처음부터 13층탑으로서 원각사탑을 건립하였음 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다만 이례적이게도 13층탑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을 올린 형태로 조성 하였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세조는 왜 13층탑을 세웠으며, 왜 그것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라는 이례적인 국문초록 52 美術資料 제100호 2021 형태로 구현하였는가? 세조가 원각사13층탑을 건립한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원각사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바, 그 첫 단추는 원래의 명칭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필자는 전제의 오류 위에 구축된 세키노의 10층설―나아가 절충적인 다층설―은 이제 폐기하고, 「원각사비」에서 말하는 13층 설을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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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개항기 서양인들의 발견: 漢城의 ‘非美’에서 ‘奇觀’, 그리고 ‘偉觀’으로
      • Ⅲ. 일제식민기 關野 貞의 조사와 조선총독부의 관리: ‘10층설’에서 ‘다층설’로
      • Ⅳ. 해방 이후 원각사탑의 재인식: ‘다층설’에서 다시 ‘10층설’로
      • Ⅴ. 맺음말
      • Ⅰ. 머리말
      • Ⅱ. 개항기 서양인들의 발견: 漢城의 ‘非美’에서 ‘奇觀’, 그리고 ‘偉觀’으로
      • Ⅲ. 일제식민기 關野 貞의 조사와 조선총독부의 관리: ‘10층설’에서 ‘다층설’로
      • Ⅳ. 해방 이후 원각사탑의 재인식: ‘다층설’에서 다시 ‘10층설’로
      •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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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Isabella B. Bishop,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 1994

      2 "한국고전번역원"

      3 유본예, "한경지략" 아카넷 2020

      4 서울역사박물관, "탑골에서 부는 바람 : 백탑파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 2015

      5 關野 貞, "조선미술사" 東文選 2003

      6 신소연,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서유기 부조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7 高裕燮, "우리의 美術과 工藝"

      8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9 Percival Lowell,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예담 2001

      10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 Isabella B. Bishop,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 1994

      2 "한국고전번역원"

      3 유본예, "한경지략" 아카넷 2020

      4 서울역사박물관, "탑골에서 부는 바람 : 백탑파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 2015

      5 關野 貞, "조선미술사" 東文選 2003

      6 신소연,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서유기 부조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7 高裕燮, "우리의 美術과 工藝"

      8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9 Percival Lowell,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예담 2001

      10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1 "국립중앙도서관"

      12 "국가문화유산포털"

      13 "국가기록원"

      14 장지연, "고려·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신구문화사 2015

      15 신은정, "경천사십층석탑의 종합적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4

      16 高裕燮, "高裕燮全集 4" 通文館 1993

      17 "高裕燮全集 4" 通文館 1993

      18 高裕燮, "高裕燮全集 3" 通文館 1993

      19 關野 貞, "韓國藝術の變遷に就て" 韓紅葉 1909

      20 關野 貞, "韓國建築調査報告(東京帝國大學工科大學學術報告 6)" 東京帝國大學工科大學 1904

      21 關野 貞, "韓國京城廢大圓覺寺石塔婆" 3 (3): 1903

      22 金澤庄三郞, "韓國の首都京城"

      23 度支部建築所, "韓国倂合史硏究資料 92" 龍溪書舍 2011

      24 關野 貞, "談山神社十三重塔" (231) : 1906

      25 高裕燮, "松都古蹟" 博文出版社 1946

      26 崔南善, "朝鮮歷史講話(18)"

      27 朝鮮總督府, "朝鮮金石文の陳列" 4 (4): 1914

      28 葛城末治, "朝鮮金石文" (14) : 1924

      29 關野 貞, "朝鮮藝術の硏究" 龍溪書舍 (92) : 2011

      30 金瑢俊, "朝鮮美術大要" 乙酉文化社 1949

      31 關野 貞, "朝鮮美術史" 朝鮮史學會 1932

      32 關野 貞, "朝鮮美術史" (11) : 1924

      33 金敬注, "朝鮮文化와 佛敎(3)"

      34 高裕燮, "朝鮮塔婆의 硏究" 乙酉文化社 1948

      35 高裕燮, "朝鮮塔婆槪說" 6 : 1932

      36 藤島亥治郞, "朝鮮塔婆の樣式と變遷" 1933

      37 杉山信三, "朝鮮圓覺寺多層石塔造立年次への疑ひ" (4) : 1949

      38 幣原坦, "朝鮮史話" 富山房 1924

      39 이병희, "朝鮮前期 圓覺寺의 造營과 運營" 한국문화사학회 (34) : 111-145, 2010

      40 李能和, "朝鮮佛敎通史 下" 新文館 1918

      41 權相老, "朝鮮佛敎略史" 新文館 1917

      42 金映遂, "朝鮮佛敎史藁"

      43 關野 貞, "朝鮮の石塔婆(五)" 24 (24): 1913

      44 杉山信三, "朝鮮の石塔" 彰國社 1944

      45 關野 貞, "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46 高裕燮, "扶蘇山敬天寺塔"

      47 高裕燮, "扶蘇山 敬天寺塔"

      48 李能和 尙玄, "大圓覺寺經像鍾塔事蹟一括" 1 (1): 1915

      49 尙玄居士, "大圓覺寺碑陰記" 2 : 1916

      50 權悳奎, "塔公園(一)"

      51 이상백, "圓覺寺始末考" 서울역사편찬원 (2) : 78-112, 1958

      52 禹貞相, "圓覺寺塔婆의 思想的 硏究―特히 十三會에 對하여―" (1) : 1958

      53 蘇在龜, "圓覺寺址 10層石塔의 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附屬大學院 1987

      54 文明大, "圓覺寺10層石塔 16佛會圖의 圖象特徵 - 漢域의 朝鮮初期 彫刻 -" 한국불교미술사학회 (19) : 5-39, 2002

      55 小田幹治郞, "京城塔洞公園の塔碑" 5 (5): 1915

      56 幣原坦, "京城塔洞の古塔に關する諸記錄に就て" (3) : 1903

      57 幣原坦, "パコダ公園の古塔考" 1 (1): 1928

      58 궁중유물전시관, "『원각사 10층대리석탑 특별전』 (개관두돌기념전 도록)"

      59 국립문화재연구소, "『경천사 십층석탑』 Ⅱ 연구 논문"

      60 "e뮤지엄"

      61 James S. Gale, "The Pagoda of Seoul" Ⅵ (Ⅵ): 1915

      62 Horace N. Allen, "The Marble Pagoda: or Stone Pagoda" The Korean Repository 1895

      63 E. Burton Holmes, "Seoul, The Capital of Korea(Travelogues-with Illustrations from Photographs by the Author. Vol. 10)" The McClure Company 1908

      64 "NAVER 뉴스라이버러리"

      65 James S. Gale, "Korean Skteches" Fleming H. Revell Company 1898

      66 Isabella B. Bishop, "Korea & Her Neighbours. Vol. 1" John Murray 1898

      67 Percival Lowell,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Ticknor and Company 1886

      68 A. Henry Savage-Landor, "COREA OR CHO-SEN :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William Heinemann 1895

      69 E. Burton Holmes, "1901년 서울을 걷다" 푸른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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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재인증) KCI등재후보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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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7 0.57 0.5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 0.45 0.523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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