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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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본고에서는 이기지(李器之)의 연행록인 『일암연기(一庵燕記)』에 내재된 그의 견문을 문질론(文質論)과 무실론(務實論)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일암연기』에 대해서는 선행연구를 통해 그 면모가 일정정도 밝혀졌지만 명·청 교체에 대한 일암의 사유(思惟)나 화이관(華夷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그의 시(詩)·화(畵) 지향(志向)에 대한 연구도 미진한 상태이며, 『일암연기』가 전대의 연행록을 참고한 양상이나 후대 연행록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질론과 무실론의 관점에서 일암의 문명론·과학기술론·예술론에 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암연기』의 연행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도 톺아보았다.
그 구체적인 논의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본고의 2장에서는 먼저 문질론과 무실 사상에 대해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일암이 ‘한인(漢人)’을 ‘문승(文勝)’, ‘만인(滿人)’을 ‘다질(多質)’의 속성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았다. 그리고 문승(文勝)의 가장 큰 폐단인 사치(奢侈)와 무력(武力)의 약화를 명망(明亡)의 원인으로 들어, 명·청 교체를 문승(文勝)과 다질(多質)의 교체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암은 조(朝)·청(淸) 간 국량(局量)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문화를 꼽았다. 이에 연행 노정 내내 효율성을 추구하는 청의 질적인 문화를 배우려는 학구열을 보여주었다. 일암은 문질론에 기반 하여 사유하였기에 명·청을 화(華)·이(夷)로 구분하지 않고, 문과 질의 측면에서 살펴 화이관이나 소중화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일암이 청(淸)과 서양의 신문물을 접하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청의 문물 중, 일암은 특히 방직기·농사 기술·수호통(水壺筒)·동유(桐油) 등에 집중하였고, 서양의 문물 중에서는 혼천의와 일영(日影), 포도주와 비연(鼻烟)에 집중하였는데 모두 실용(實用)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청과 서양의 문물에 대한 관심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문물의 형태와 원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적극적인 수입(輸入) 의지이다. 이는 모두 선진 문물을 조선에서 재현하여 후생(厚生)을 도모하고자 하는 일암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장에서는 일암이 시(詩)에 있어, 수식(修飾)보다는 작가의 진정(眞情)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가 시의 질적 가치를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 편, 일암의 연행시 중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연경잡시(燕京雜詩)> 10수나 <연행절구(燕行絶句)> 11수를 살펴보면 21수 모두에 자주(自註)가 달려 있다. 이 주석은 모두 시의 소재가 되는 중국의 유적이나 풍속에 관한 것으로, 시 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한 추가 설명의 성격을 띠고 있어 고거(考據)의 경향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고거 경향에는 독자에게 실제(實際)·사실(事實)를 보여주려는 일암의 무실 사상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5장에서는 『일암연기』가 전대 연행록에게서 받은 영향과 후대 연행록에 끼친 영향을 살펴, 『일암연기』의 연행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고찰하였다. 일암은 노가재의 『연행일기』보다 나은 연행록을 작성하기 위해 『연행일기』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정·보충하여 연행 노정에 대한 기록이 보다 실제에 가깝게 기록하였다. 일암은 노가재 및 다른 연행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새로운 연행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남·동·북의 세 천주당을 모두 방문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산(盤山)과 사호석(射虎石), 심양의 북릉(北陵)과 북경의 마분사(馬糞寺) 등 다른 연행록에서는 찾기 보기 힘든 새로운 노정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노정을 실답(實踏)하여 문헌·전언(傳言) 등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공간의 실제(實際)를 파악·기록하였다. 그리하여 우수한 원전성(原典性)을 지니게 된 『일암연기』는 담헌과 연암의 연행록에서 지도 혹은 자료로써 활용되었고, 19세기 연행록인 『계산기정』, 『심전고』, 『지정연기』, 『연원직지』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암의 ‘탐방(探訪)’은 항상 ‘탐색(探索)’으로 이어졌으며, 그러한 탐색 과정을 통해 공간 이면(裏面)에 놓여 있던 공간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힘을 쏟았다. 예를 들면, 마분사에서 ‘말똥’의 여러 활용 방안에 주목했던 것은, 간소함·효율성을 중시하는 청의 문화에 대한 주목과 일치한다. 그리고 똥에 대한 주목은 담헌과 연암 그리고 김경선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일암이 주류하(周流河)에서 목격하였던 ‘귀천(貴賤)’보다 ‘선후(先後)’를 중시하며 효율성을 중시하는 청의 문화는 같은 공간, 같은 사건으로 담헌에게 목격되었다. 그리고 담헌은 일암과 동일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으며, 그러한 경향은 김경선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일암의 탐방과 탐색, 그리고 탐색을 통해 빛을 발한 공간 이면의 가치는 신임옥사와 함께 묻히지 않고, 후대 연행사와 연행록을 통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본다면 『일암연기』가 문질론적 사유와 무실 정신을 바탕으로, 노가재의 『연행일기』를 충실히 계승·발전 시켰으며, 담헌 『연기』, 『열하일기』, 『연원직지』 등의 후대 연행록에 실질적이며 중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일암연기』의 연행문학사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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