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는 고구려의 대당군사전략에 대해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것이 전쟁패배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군사전략은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이 아니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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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8
학위논문(석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 한국사학과 한국고대사전공 , 2008. 2
2008
한국어
서울
51 p. : 삽도 ; 26 cm.
지도교수: 최광식
단면인쇄임
참고문헌 : p. 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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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학계는 고구려의 대당군사전략에 대해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것이 전쟁패배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군사전략은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이 아니었다. 6...
학계는 고구려의 대당군사전략에 대해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것이 전쟁패배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군사전략은 고정적이고 정체된 것이 아니었다. 645년의 요동전역에서 고구려는 적의 전쟁물자 현지조달을 거부하고 준비된 방어시설물을 이용한 방어전략인 견벽청야전략을 구사하면서 국가를 방위하였다.
고구려의 견벽청야전략으로 전쟁을 단기간에 종결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한 당은 소모전략을 통해 고구려의 전쟁지속능력을 소모시키고자 했다. 646년부터 648년까지 전개된 소모전략은 고구려의 전쟁지속능력에 많은 타격을 주었다. 이시기 고구려는 일관된 전쟁전략을 구사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적인 대처를 통해 당의 공격을 방어하였다. 그러나 국력의 소모는 거부하지 못하고 전쟁지속능력은 계속 소모되었다.
당의 소모전략은 태종의 죽음과 돌궐의 흥기로 중단되었고 고구려는 이 시기를 이용하여 서요하유역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그동안 자국의 영역내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수세적인 전략에서 탈피하여 공세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고구려의 서요하 유역 진출은 654년부터 658년까지 지속되었으나 당의 공격으로 659년경 종결되었다. 서요하유역 진출이 결론적으로는 좌절되었지만 고구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군사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