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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요목기(1945~1955) 사회생활과 설치와 한국사 교육론 -사공환과 손진태를 중심으로- = Introducing Social Study as a Subject and Educational Discourses about Korean History during the Syllabus Period (1945~1955) - With Sa Kong-hwan and Son Jin-tae as the central fig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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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신을 앙양해야 하는 과제가 부과되었으나 미군정은 냉전체제에 따라 사회주의의 전파를 억제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것이 우선적이었다. 이러한 미군정의 목적에 달성하기 위하여 미군정은 학교 교육에서 미군정의 목적과 한국민의 요구를 수용한 교과목으로서 지리, 공민과 함께 역사과를 묶은 사회생활과를 도입하였다. 사회생활과의 도입에 앞장 선 인물은 오천석, 사공환 등이었으며, 사공환은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국사교과는 흥국적 사명을 가진 것으로서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 모두에서 민족의 생활·문화 창조와 국민의 사상 선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민족 聖祖로서의 단군, 혈통 중심의 민족 개념과 사상통일, 민주주의의 원리로서의 ‘홍익인간’과 ‘화백제도’,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였던 안호상 문교부장관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민주적 민족교육)론은 대한민국의 교육론으로 자리잡았으며, 손진태와 사공환 등 국사교육 담당자들은 이에 적극 협력하였다.
      문교부 편수국장과 차관을 역임한 손진태는 신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영미적 민주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를 배척하는 한편 양자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려 우리 민족에 적절하고 유리한 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즉 신민족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은 국가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그의 주장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이에 그와 안호상 문교부 장관 사이에는 의견의 충돌이 생겼으며, 이에 그는 문교부 차관직을 사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보면 교수요목기 한국사 교육은 미군정이 도입한 사회생활과의 틀에서 이루어졌으며, 정부 수립 이후 신민족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사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던 손진태 등의 노력은 무산되고,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에 입각한 국가주의적 성격의 교육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국사과목이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한국사 교육이 정치권에 의해 그 교육 내용과 성격이 좌우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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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신을 앙양해야 하는 과제가 부과되었으나 미군정은 냉전체제에 따라 사회주의의 전파를 억제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

      해방 직후 한국 사회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신을 앙양해야 하는 과제가 부과되었으나 미군정은 냉전체제에 따라 사회주의의 전파를 억제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것이 우선적이었다. 이러한 미군정의 목적에 달성하기 위하여 미군정은 학교 교육에서 미군정의 목적과 한국민의 요구를 수용한 교과목으로서 지리, 공민과 함께 역사과를 묶은 사회생활과를 도입하였다. 사회생활과의 도입에 앞장 선 인물은 오천석, 사공환 등이었으며, 사공환은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국사교과는 흥국적 사명을 가진 것으로서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 모두에서 민족의 생활·문화 창조와 국민의 사상 선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민족 聖祖로서의 단군, 혈통 중심의 민족 개념과 사상통일, 민주주의의 원리로서의 ‘홍익인간’과 ‘화백제도’,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였던 안호상 문교부장관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민주적 민족교육)론은 대한민국의 교육론으로 자리잡았으며, 손진태와 사공환 등 국사교육 담당자들은 이에 적극 협력하였다.
      문교부 편수국장과 차관을 역임한 손진태는 신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영미적 민주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를 배척하는 한편 양자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려 우리 민족에 적절하고 유리한 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즉 신민족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은 국가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그의 주장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이에 그와 안호상 문교부 장관 사이에는 의견의 충돌이 생겼으며, 이에 그는 문교부 차관직을 사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보면 교수요목기 한국사 교육은 미군정이 도입한 사회생활과의 틀에서 이루어졌으며, 정부 수립 이후 신민족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사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던 손진태 등의 노력은 무산되고,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에 입각한 국가주의적 성격의 교육이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국사과목이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 한국사 교육이 정치권에 의해 그 교육 내용과 성격이 좌우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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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Korea sought to clean up the remnants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promote national spirit, but the U.S. military government prioritized curbing the spread of socialism and transplanting American-style democracy under the Cold War regime. Accordingly,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troduced a social study course that combines history with geography and the publicadministration as a subject that accommodates the purpose of the U.S. military administration and the needs of the Korean people in school education. Those who spearheaded the introduction of social study course were Oh Cheon-seok and Sa Kong-hwan, who are believed to have been in charge of actual affairs. According to him, it was meaningful that the history should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the people's life and culture, both mentally and materially, and to the direction of the people's thoughts.
      Education Minister Ahn Ho-sang's argument for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has become an educational theory of the Republic of Korea.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Democratic Education for the ethnic group) emphasized the Dangun as the ancestor of the people, the concept of a bloodline-oriented people and the unification of ideas, the "Hongik man" and the "HwabaekJedo" as the principle of democracy, and the whole rather than the individual. Son Jin-tae and Sa Kong-hwan, who are in charge of national history education, actively cooperated withAhn’s view. Son Jin-tae,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ministry of a bureau and vice minister, advocated neo-nationalism while rejecting Anglo-American democracy and Soviet socialism, and taking advantage of both and abandoning shortcomings to adopt democratic nationalism that is appropriate and advantageous to our people. He thought his argument was in line with Ahn Ho-sang's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but Ahn’s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differed in that it had a nationalistic character. This led to a clash of opinions between him and Ahn, which is why Son Jin-tae resigned as vice minister of education.
      In conclusion, the education of Korean history during the Syllabus Period was conducted in the framework of the social study course introduced by the U.S. military government. The efforts of SohnJin-tae and others to provide education on Korean history based on neo-nationalism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were thwarted, and the education of nationalistic character based on the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ofAhn could be understood to mean that the subject of national history was used for the political purposes of Lee Syng-man's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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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Korea sought to clean up the remnants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promote national spirit, but the U.S. military government prioritized curbing the spread of socialism and transplanting American-...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Korea sought to clean up the remnants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promote national spirit, but the U.S. military government prioritized curbing the spread of socialism and transplanting American-style democracy under the Cold War regime. Accordingly,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troduced a social study course that combines history with geography and the publicadministration as a subject that accommodates the purpose of the U.S. military administration and the needs of the Korean people in school education. Those who spearheaded the introduction of social study course were Oh Cheon-seok and Sa Kong-hwan, who are believed to have been in charge of actual affairs. According to him, it was meaningful that the history should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the people's life and culture, both mentally and materially, and to the direction of the people's thoughts.
      Education Minister Ahn Ho-sang's argument for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has become an educational theory of the Republic of Korea.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Democratic Education for the ethnic group) emphasized the Dangun as the ancestor of the people, the concept of a bloodline-oriented people and the unification of ideas, the "Hongik man" and the "HwabaekJedo" as the principle of democracy, and the whole rather than the individual. Son Jin-tae and Sa Kong-hwan, who are in charge of national history education, actively cooperated withAhn’s view. Son Jin-tae,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ministry of a bureau and vice minister, advocated neo-nationalism while rejecting Anglo-American democracy and Soviet socialism, and taking advantage of both and abandoning shortcomings to adopt democratic nationalism that is appropriate and advantageous to our people. He thought his argument was in line with Ahn Ho-sang's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but Ahn’s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 differed in that it had a nationalistic character. This led to a clash of opinions between him and Ahn, which is why Son Jin-tae resigned as vice minister of education.
      In conclusion, the education of Korean history during the Syllabus Period was conducted in the framework of the social study course introduced by the U.S. military government. The efforts of SohnJin-tae and others to provide education on Korean history based on neo-nationalism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were thwarted, and the education of nationalistic character based on the theory of democratic national educationofAhn could be understood to mean that the subject of national history was used for the political purposes of Lee Syng-man's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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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聯合新聞"

      2 阿部洋, "해방 후 한국의 교육개혁" 한국연구원 1987

      3 김상훈, "해방 후 사회생활과의 도입과 역사교육의 방향" 인문과학연구소 (41) : 149-195, 2014

      4 민성희, "해방 직후(1945~1948) 황의돈의 국사교육 재건 활동" 한국역사교육학회 (21) : 89-140, 2015

      5 장영민, "해방 직후 정부 이전의 역사서와 역사교과서" 국사편찬위원회 100 : 2002

      6 김상훈, "해방 직후 반공 교육과 국사교과서에서 사회주의 관련 서술 삭제" 역사학연구소 (35) : 389-427, 2018

      7 김상훈, "해방 직후 국사교육 연구" 경인문화사 2018

      8 김상훈, "해방 전후 중등 교육과정의 변화" 역사교과서연구소 (21) : 5-62, 2015

      9 권성아, "해방 이후 교육이념의 설정과 국사교육" 역사교과서연구소 (21) : 129-186, 2015

      10 유봉호, "한국교육과정사연구" 교학연구사 1992

      1 "聯合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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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김상훈, "해방 후 사회생활과의 도입과 역사교육의 방향" 인문과학연구소 (41) : 149-195, 2014

      4 민성희, "해방 직후(1945~1948) 황의돈의 국사교육 재건 활동" 한국역사교육학회 (21) : 89-140, 2015

      5 장영민, "해방 직후 정부 이전의 역사서와 역사교과서" 국사편찬위원회 100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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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조건, "제1차 교육과정 성립기 문교부 조직과 반공 교육정책" 역사교과서연구소 (22) : 155-19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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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이병도, "우리나라 생활" 동지사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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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박남수, "韓國社會科敎育成立過程の硏究-社會認識敎育カリキュラムの構造と論理" 廣島大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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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김상훈, "1945~1950년 역사 교수요목과 교과서 연구" 서강대학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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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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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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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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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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