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적 유교사회였던 조선후기 사회의 지배층은 양반 사대부집단이었다. 양반사대부들은 문중이나 종족(宗族)과 같은 친족집단을 구성함으로써 혈연과 신분에 기초한 지배질서를 유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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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orean
331
KCI등재
학술저널
151-186(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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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성리학적 유교사회였던 조선후기 사회의 지배층은 양반 사대부집단이었다. 양반사대부들은 문중이나 종족(宗族)과 같은 친족집단을 구성함으로써 혈연과 신분에 기초한 지배질서를 유지해...
성리학적 유교사회였던 조선후기 사회의 지배층은 양반 사대부집단이었다. 양반사대부들은 문중이나 종족(宗族)과 같은 친족집단을 구성함으로써 혈연과 신분에 기초한 지배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종법은 바로 양반 사대부들의 친족집단을 구성하는 기본이 되었던 제도였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적장자에 의한 종통(宗統)의 계승이 놓여 있었다. 조선후기 사회에서 적장자가 한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것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해당 친족집단 전체의 문제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국가적 문제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적장자의 부재는 단지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적장자의 부재는 해당 친족집단 전체의 위기로 받아들여졌으며, 집단 내 해당 항렬에 속하는 자를 새로운 적장자로 입양함으로써 상황에 대처하였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입후제도를 통하여 해당 행위를 승인, 통제하였다. 이 글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의 시기에 조선의 대표적 양반가문에서 발생한 적장자의 입후를 둘러싼 사건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가문은 동래정씨 정난종 종가로, 현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에 세거해 왔다. 문중에서 소장해 온 다량의 고문서 등의 자료들을 통하여 해당 사건들을 상당히 치밀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사건은 19세기 후반 종손 학묵은 대를 이을 규석이 아들이 없이 사망하면서 발생하였다. 종손의 대를 잇기 위하여 학묵은 규석의 계후자로 덕진을 입후하였으나, 덕진역시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만다. 이에 문중에서는 규선을 학묵의 새로운 적장자로 입후하였다. 이 과장에서 문종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며, 여기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였다. 그러한 와중에 규석의 처 한양조씨가 친정으로 돌려보내 지는데, 이를 둘러싸고 정씨와 조씨 양 집안에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구체적인 사건들의 전개를 추적함으로써 적장자 중심의 종법질서가 지배한 전통사회의 개인과 가족의 삶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종법의 표방 이면에 존재했던 각 인물들의 실제적인 경제적, 정치적 욕구의 대립을 통하여 종법질서의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을 감지할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Yangban literati are believed to be the social ruling class of the later Choson under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They kept status system based on ties of kinship by forming clans and lineage. Moreover, the agnatic principle is fundamental to form ...
Yangban literati are believed to be the social ruling class of the later Choson under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They kept status system based on ties of kinship by forming clans and lineage. Moreover, the agnatic principle is fundamental to form their kinsfolk, and where direct lineal descendants should fall heir to their family. In those days, the fact that direct lineal descendants carry on a family line is not just limited to a person or a family, but to a clan. Looking upon maintaining a social order based on Confucianism, it is extended to a nation. In this point, the absence of direct lineal descendants threatens not only specific family but also the whole clan. In such cases, they adopted a person belongs to degrees of kinship as their heir, and which is approvable at the national level. This article is to reorganize what happened over a direct lineal descendant`s establishing an heir of a Yangban family from the later 19th century to the earlier 20th century. This family is the most senior line of Dongrae Cheong, Cheong Nan-jong. They made a settlement in Sokdal, Gunpo and Gyeonggi province and they hold a large amount of document, and which makes it possible to reorganize above incidents closely. It resulted from the death of Gyuseok who was expected to carry on a family line next to Hakmuk, lineage grandson but died without an heir. Unavoidably, Hakmuk adopted Deokjin as their heir instead of Gyuseok. Deokjin is gone without a son to carry on a family line, either. Under these circumstances, Gyuseon is adopted as their new heir. Going through the process, the kin conflicted each other, and the government intervened in a dispute. Besides, Gyuseok`s wife is sent to her maiden home, and which caused a conflict between Cheong`s family and that of Cho. It is possible to give a vivid description of a person or a family`s life under the agnatic principle of the traditional times by following above mentioned incidents in the concrete. In addition, it is possible to catch where to disturb the order of the agnatic principle by approaching their veiled clash of political and economical wants.
참고문헌 (Reference)
1 "「가계계승의 다양성과 ‘종족전략’」" 백산서당 2004
2 "「續大典의 위상에 대한 小考 -‘奉祀 및 立後’조를 대상으로-」" 46 (46): 2005
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478~12482"
4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469~12477"
5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288~12322"
6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 군포시 2004
7 "軍浦市 速達洞 東萊鄭氏 東萊府院君宗家의 歷史와 文化" 군포시 2004
8 "15세기 입후법(立後法)의 운용과 계후입안(繼後立案)" (59호.)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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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478~12482"
4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469~12477"
5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M/F 35-12288~12322"
6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 군포시 2004
7 "軍浦市 速達洞 東萊鄭氏 東萊府院君宗家의 歷史와 文化" 군포시 2004
8 "15세기 입후법(立後法)의 운용과 계후입안(繼後立案)" (59호.) : 2006
조선중기 수령의 가족부양으로 본 장자(長子)의 역할과 가(家)의 범위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8-10-07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 ![]()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1998-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09 | 1.09 | 1.12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16 | 1.11 | 1.712 | 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