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동학의 불연기연의 논리와 인식론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G371563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서양의 논리는 놀라운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그리고 역사적 진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너무 현상적으로 드러난 부분, 일차원적 논리의 영역으로만 한정한 나머지 생명과 세계를 전일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연과 세계를 대립과 경쟁, 정복과 지배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오늘날 많은 문제를 노정시키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의 노장의 사유나, 주역, 그리고 불교의 사유는 언어와 이성적 추론으로 알 수 없는 근원적 실재에 대해 그 인식의 한계를 깊이 통찰하였다. 그래서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추론 외에도 다른 인식의 방법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하였고, 보이는 부분만이 전부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차원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한 형식논리를 넘어 세계를 역설적으로 파악하고, 단순히 현상의 대립적인 것의 종합·통일이 아니라 드러난 현상과 아직 드러나지 않는 차원을 역설의 논리를 통해 통합적으로 긍정하려고 하였다. 이는 노자 1장의 ‘道可道非常道’와 도를 ‘有와 無’를 통해 이중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에서나 장자의 ‘然不然’의 사유, 또한 心齋와 坐忘을 통해 감각과 사유를 넘어 도의 실재와 하나되는 체험의 영역을 상정하고 있는 것에서나, 주역의 ‘時中’, ‘一陰一陽謂之道’, 음과 양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에서나, 원효의 ‘不然之大然’ 元曉, 大乘起信論疏․別記, “所乘影響非形非說, 旣超名相, 何超何歸, 是謂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也.”
      , 화쟁론, 그리고 화엄의 ‘一卽多’, ‘多卽一’의 사유에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의 ‘아니다·그렇다’의 논리 역시 이런 동양의 논리적 전통을 계승하여 세계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역설의 논리이자 통섭의 논리이다. 여기서 불연, ‘아니다’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질서에 대한 인식, 논리이며, 기연, ‘그렇다’은 눈에 보이는 드러난 질서에 대한 인식이자 논리이다. 다시 말해서 기연(其然)은 우리의 감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불연(不然)은 이성적 추론이나 감각적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서양문명은 여기서 드러난 차원, 즉 기연에만 집중하여 숨겨진 차원을 간과해 왔다. 수운은 이 불연기연의 논리를 통해 드러난 질서의 이면에는 숨겨진 차원의 질서가 있어서 겉으로는 모순, 반대되는 현상도 근원에서는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현상에서의 다양한 차이가 근원에서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통합적 인식은 현상 세계의 다양한 투쟁과 대립, 상극을 조화와 화합, 상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수운의 동학은 이 불연기연의 인식 논리에 바탕해서 天道의 전체적 실상을 파악하려 한 것이었으며, 이로써 비로소 인간이 추구해야할 참된 실천의 길을 제시하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번역하기

      서양의 논리는 놀라운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그리고 역사적 진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너무 현상적으로 드러난 부분, 일차원적 논리의 영역으로만 한정한 나머지 생명과 세계를 ...

      서양의 논리는 놀라운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그리고 역사적 진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너무 현상적으로 드러난 부분, 일차원적 논리의 영역으로만 한정한 나머지 생명과 세계를 전일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연과 세계를 대립과 경쟁, 정복과 지배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오늘날 많은 문제를 노정시키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의 노장의 사유나, 주역, 그리고 불교의 사유는 언어와 이성적 추론으로 알 수 없는 근원적 실재에 대해 그 인식의 한계를 깊이 통찰하였다. 그래서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추론 외에도 다른 인식의 방법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하였고, 보이는 부분만이 전부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차원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한 형식논리를 넘어 세계를 역설적으로 파악하고, 단순히 현상의 대립적인 것의 종합·통일이 아니라 드러난 현상과 아직 드러나지 않는 차원을 역설의 논리를 통해 통합적으로 긍정하려고 하였다. 이는 노자 1장의 ‘道可道非常道’와 도를 ‘有와 無’를 통해 이중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것에서나 장자의 ‘然不然’의 사유, 또한 心齋와 坐忘을 통해 감각과 사유를 넘어 도의 실재와 하나되는 체험의 영역을 상정하고 있는 것에서나, 주역의 ‘時中’, ‘一陰一陽謂之道’, 음과 양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에서나, 원효의 ‘不然之大然’ 元曉, 大乘起信論疏․別記, “所乘影響非形非說, 旣超名相, 何超何歸, 是謂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也.”
      , 화쟁론, 그리고 화엄의 ‘一卽多’, ‘多卽一’의 사유에서 얼마든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의 ‘아니다·그렇다’의 논리 역시 이런 동양의 논리적 전통을 계승하여 세계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역설의 논리이자 통섭의 논리이다. 여기서 불연, ‘아니다’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질서에 대한 인식, 논리이며, 기연, ‘그렇다’은 눈에 보이는 드러난 질서에 대한 인식이자 논리이다. 다시 말해서 기연(其然)은 우리의 감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불연(不然)은 이성적 추론이나 감각적 경험으로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서양문명은 여기서 드러난 차원, 즉 기연에만 집중하여 숨겨진 차원을 간과해 왔다. 수운은 이 불연기연의 논리를 통해 드러난 질서의 이면에는 숨겨진 차원의 질서가 있어서 겉으로는 모순, 반대되는 현상도 근원에서는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현상에서의 다양한 차이가 근원에서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통합적 인식은 현상 세계의 다양한 투쟁과 대립, 상극을 조화와 화합, 상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수운의 동학은 이 불연기연의 인식 논리에 바탕해서 天道의 전체적 실상을 파악하려 한 것이었으며, 이로써 비로소 인간이 추구해야할 참된 실천의 길을 제시하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