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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왕흥사지 출토 치미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Chimi(Ridge-end tiles) Excavated from Wangheungsa Temple Site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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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24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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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changes in Chimi excavated from the Wangheungsa Temple site by reviewing the literature records on the Wangheungsa Temple site, the excavation results of the past, and the Yeonhwamun Sumakgsae (convex roof-end tiles with lotus pattern) known as the roof tiles of the time of construction.
    The Wangheungsa Temple site was created in two stages, in the first stage, the central entrance facility, the boundary belt, the auditorium site and then the east-west building site were created. was made This type of chimi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late 6th, based on the literature records and excavation contents. Chimi in this period generally has body-part tiers and 2-row columns, but Chimi was produced with differences in the decoration method of the column and the method of expression of the rear. This type of Chimi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In the second stage of one, the entrance facility to the west of the temple premises was built, and in this period, Chimi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body-part tiers and 1-column row were excavated. Similar Chimi were also confirmed at the Jeongnimsa Temple site and Geumgangsa Temple site, which are considered to be temples in the first half of the 7th century. This suggests that Chimi from the west facility of the temple premises were also constructed in a similar period.
    In the second stage of two, the upper floor of the auditorium site and the west part of the site were constructed, where Chimi with a plain body were excavated. Since Chimi with a plain body are believed to have been influenced by the Sui and Tang styles, they are believed to have been made in the pre-mid 7th century.
    As discussed above, it is estimated that the Chimi of the Wangheungsa Temple site were produced from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However, since Chimi is generally manufactured to be over 1m long and there are few cases of its complete restoration, it will be possible to examine the change process of Chimi of Baekje more closely if excavated cases of Chimi are accumulat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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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changes in Chimi excavated from the Wangheungsa Temple site by reviewing the literature records on the Wangheungsa Temple site, the excavation results of the past, and the Yeonhwamun Sumakgsae (convex roof-...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changes in Chimi excavated from the Wangheungsa Temple site by reviewing the literature records on the Wangheungsa Temple site, the excavation results of the past, and the Yeonhwamun Sumakgsae (convex roof-end tiles with lotus pattern) known as the roof tiles of the time of construction.
    The Wangheungsa Temple site was created in two stages, in the first stage, the central entrance facility, the boundary belt, the auditorium site and then the east-west building site were created. was made This type of chimi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late 6th, based on the literature records and excavation contents. Chimi in this period generally has body-part tiers and 2-row columns, but Chimi was produced with differences in the decoration method of the column and the method of expression of the rear. This type of Chimi is estimated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In the second stage of one, the entrance facility to the west of the temple premises was built, and in this period, Chimi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body-part tiers and 1-column row were excavated. Similar Chimi were also confirmed at the Jeongnimsa Temple site and Geumgangsa Temple site, which are considered to be temples in the first half of the 7th century. This suggests that Chimi from the west facility of the temple premises were also constructed in a similar period.
    In the second stage of two, the upper floor of the auditorium site and the west part of the site were constructed, where Chimi with a plain body were excavated. Since Chimi with a plain body are believed to have been influenced by the Sui and Tang styles, they are believed to have been made in the pre-mid 7th century.
    As discussed above, it is estimated that the Chimi of the Wangheungsa Temple site were produced from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However, since Chimi is generally manufactured to be over 1m long and there are few cases of its complete restoration, it will be possible to examine the change process of Chimi of Baekje more closely if excavated cases of Chimi are accumulated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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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글은 왕흥사지에 대한 문헌기록, 그동안의 발굴조사 성과, 그리고 창건와로 알려진 연화문수막새에 대한 검토를 통해,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의 변화관계를 고찰하고자 작성되었다.
    왕흥사지는 총 2단계로 조성된다. 1단계에는 중심사역시설이 정비되는 시기로 금당지→목탑지, 중앙진입시설, 경계축대, 강당지→동서건물지, 사역서편 일부구간이 축조되며, 이 시기에는 동부층단+2줄종대 치미가 제작된다. 다만 치미 종대의 장식방법, 후부의 표현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치미는 문헌기록 및 발굴조사 내용 등을 볼 때, 대체로 6세기 후반 정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2단계는 왕흥사지 중심가람 및 서편대지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2-1과 2-2단계로 구분된다. 2-1단계에는 사역서편진입시설에서 동부층단+1줄종대 치미가 출토되며, 부여 사비기 치미 중 가장 이른 형식인 능산리사지 치미보다 후행하고, 이와 유사한 치미가 7세기 전반대 축조되는 정림사지, 금강사지 에서 출토된다는 점에서 대체로 7세기 초전반 정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2단계는 동부무문+2 줄종대, 동부무문+1줄종대 치미가 강당지 상층과 서편대지 등에서 확인된다. 동부가 무문화된 치미는 동부층 단 치미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되고, 강당지에서 1단계에서 확인되는 동부층단+2줄종대 출토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전중반 정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과 같이 왕흥사지 치미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전중반까지 단계별로 제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치미는 대체로 1m 이상으로 제작이 되고, 완전하게 복원된 사례가 적기 때문에, 앞으로 치미의 출토사례가 축적된다면 백제 치미의 변화관계를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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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왕흥사지에 대한 문헌기록, 그동안의 발굴조사 성과, 그리고 창건와로 알려진 연화문수막새에 대한 검토를 통해,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의 변화관계를 고찰하고자 작성되었다. ...

    본 글은 왕흥사지에 대한 문헌기록, 그동안의 발굴조사 성과, 그리고 창건와로 알려진 연화문수막새에 대한 검토를 통해,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치미의 변화관계를 고찰하고자 작성되었다.
    왕흥사지는 총 2단계로 조성된다. 1단계에는 중심사역시설이 정비되는 시기로 금당지→목탑지, 중앙진입시설, 경계축대, 강당지→동서건물지, 사역서편 일부구간이 축조되며, 이 시기에는 동부층단+2줄종대 치미가 제작된다. 다만 치미 종대의 장식방법, 후부의 표현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치미는 문헌기록 및 발굴조사 내용 등을 볼 때, 대체로 6세기 후반 정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2단계는 왕흥사지 중심가람 및 서편대지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2-1과 2-2단계로 구분된다. 2-1단계에는 사역서편진입시설에서 동부층단+1줄종대 치미가 출토되며, 부여 사비기 치미 중 가장 이른 형식인 능산리사지 치미보다 후행하고, 이와 유사한 치미가 7세기 전반대 축조되는 정림사지, 금강사지 에서 출토된다는 점에서 대체로 7세기 초전반 정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2단계는 동부무문+2 줄종대, 동부무문+1줄종대 치미가 강당지 상층과 서편대지 등에서 확인된다. 동부가 무문화된 치미는 동부층 단 치미보다 늦은 시기에 제작되고, 강당지에서 1단계에서 확인되는 동부층단+2줄종대 출토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전중반 정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과 같이 왕흥사지 치미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전중반까지 단계별로 제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치미는 대체로 1m 이상으로 제작이 되고, 완전하게 복원된 사례가 적기 때문에, 앞으로 치미의 출토사례가 축적된다면 백제 치미의 변화관계를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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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 김유식,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3

    3 김유식,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8

    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8

    5 박은선, "익산지역 백제유적의 평기와 특징과 변천" 백제연구소 (61) : 107-146, 2015

    6 홍밝음, "익산 미륵사지 출토 치미에 대한 고찰" 마한백제문화연구소 35 : 28-63, 2020

    7 이은숙, "웅진·사비기 백제 평기와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3

    8 정자영, "부여 정림사지 가람배치와 편년적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76 (76): 135-162, 2012

    9 김용민, "부여 왕흥사지 발굴조사 성과와 의의" 한국목간학회 1 : 2008

    10 김종만, "부여 능산리 건물군의 성격과 변천" 국립중앙박물관 17 : 2011

    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 김유식,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3

    3 김유식,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8

    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치미 하늘의 소리를 듣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8

    5 박은선, "익산지역 백제유적의 평기와 특징과 변천" 백제연구소 (61) : 107-146, 2015

    6 홍밝음, "익산 미륵사지 출토 치미에 대한 고찰" 마한백제문화연구소 35 : 28-63, 2020

    7 이은숙, "웅진·사비기 백제 평기와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3

    8 정자영, "부여 정림사지 가람배치와 편년적 검토" 한국상고사학회 76 (76): 135-162, 2012

    9 김용민, "부여 왕흥사지 발굴조사 성과와 의의" 한국목간학회 1 : 2008

    10 김종만, "부여 능산리 건물군의 성격과 변천" 국립중앙박물관 17 : 2011

    11 최완규, "백제말기 무왕대 익산천도의 재해석" 馬韓百濟文化硏究所 20 : 2012

    12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폐사지 학술조사보고서" 2008

    13 조경철, "백제 왕흥사의 창건과정과 미륵사" 역사학연구회 (70) : 1-27, 2010

    14 최경환, "백제 왕흥사 초창기 기와 수급체계에 대한 계량적 연구" 한국고고학회 (105) : 78-119, 2017

    15 大林潤, "백제 사찰 연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3

    16 한나래, "백제 사찰 부속건물지의 유형과 성격" 한국대학박물관협회 (80) : 65-89, 2012

    17 이상일, "백제 사찰 부속건물지의 구조와 기능 - 부여 왕흥사지를 중심으로 -" 국립문화재연구원 54 (54): 138-163, 2021

    18 정성목, "백제 사비도성의 불교사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한국고대학회 2015

    19 이솔언, "백제 사비도성의 기와 생산과 가마 운영" 한국고고학회 2021 (2021): 131-162, 2021

    20 민경선, "백제 사비기 사찰의 가람배치 변화 양상에 대한 일고찰" 한국대학박물관협회 (78) : 57-92, 2011

    21 홍밝음, "백제 사비기 사찰 출토 치미의 고찰" 백제문화연구소 (59) : 169-198, 2018

    22 이솔언, "백제 사비기 기와가마의 기와 생산과 운영" 韓國傳統文化大學校大學院 2021

    23 박은지, "백제 사비기 기와 연구Ⅲ"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1

    2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사비기 기와 연구Ⅲ" 2011

    25 문옥현, "백제 사비기 기와 연구Ⅲ"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1

    26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사비기 기와 연구Ⅱ" 2010

    27 홍밝음, "남북국시대 치미의 변화과정 − 都城 출토품을 중심으로 −" 한국대학박물관협회 (94) : 7-40, 2019

    28 大脇潔, "鴟尾, 日本の 美術Ⅰ 第382號"

    29 金有植, "韓國 古代 鴟尾 彫刻의 考察" 동국대학교대학원 1993

    30 주동훈, "百濟泗沘期 寺刹의 修道生活空間에 대한 고고학적 硏究" 전북대학교대학원 2011

    31 이병호, "百濟寺院과 日本 飛鳥寺 三金堂의 源流" 백제연구소 (57) : 131-176, 2013

    32 양기석, "百濟 王興寺의 創建과 變遷" 백제문화연구소 2 (2): 35-61, 2009

    33 文玉賢, "百濟 王興寺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7

    34 문옥현, "百濟 泗沘期 기와 生産施設과 生産體制" 한국문화사학회 (38) : 29-52, 2012

    35 김낙중, "百濟 泗批期寺刹의 伽藍配置와 造營의 特徵 –최근의 발굴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회 74 (74): 203-230, 2011

    36 이병호, "百濟 定林寺式伽藍配置의 展開와 日本의 初期寺院" 백제연구소 (54) : 113-143, 2011

    37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Ⅶ" 2016

    38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Ⅵ" 2015

    39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Ⅴ" 2014

    40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Ⅳ" 2012

    41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址Ⅲ" 2009

    42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興寺址Ⅱ" 2007

    43 國立扶餘文化財硏究所, "王興寺 發掘中間報告Ⅰ" 2002

    44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王興寺"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7

    45 홍밝음, "王興寺"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7

    46 이병호, "扶餘 陵山里寺址 伽藍中心部의 變遷 過程" 한국사연구회 (143) : 35-76, 2008

    47 성형미, "扶餘 定林寺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11

    48 이도학, "<王興寺址 舍利器 銘文> 分析을 통해 본 百濟 威德王代의 政治와 佛敎" 한국사연구회 (142) : 1-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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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3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재인증) KCI등재
    2019-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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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89 0.89 0.9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5 0.83 1.54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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