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신화 가운데 특히 창세신화를 보면 그 유형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최초 상태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이거나 무의 다른 이름인 혼돈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현대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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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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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신화 가운데 특히 창세신화를 보면 그 유형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최초 상태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이거나 무의 다른 이름인 혼돈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현대물리학이 이야기하는 카오스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신화가 말하는 이 시초의 상태에는, 서구신화와는 달리, 신의 개입이 없다. 오히려 신은 혼돈 이후 그 혼돈의 내부로부터 생성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신화가 말하는 무, 또는 혼돈의 문제가 노장철학의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노자>가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항상된 도가 아니다"라고 말한 후 "무는 천지의 시작이요, 유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노자가 말한 무 혹은 유는 신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무, 혹은 카오스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중국철학자 풍우란은 천지만물의 생성에는 반드시 어떤 생성의 원리가 있는데 이 원리를 도라고 보았다. 그러나 민속학자인 문일다는 도는 철학자의 발명품이 아니라 무교의 영혼불사관념과 관련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문일다의 견해를 수용하여 엽서헌은 도의 연원을 신화로부터 찾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형이상학적 철학의 개념은 형이하학의 신화적 원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가 우주만물의 원리이지만 그것은 어떤 사물의 운동의 개별원리로부터 추론한 결과이고 그런 추론은 이미 신화적 사유에 그 실마리가 있었다가 철학적 사유에 와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철학자와 민속학자들의 견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토가 가능하려면 1차적으로 동아시아신화의 세계인식을 창세신화를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정리는 단지 문헌에 수록된 자료만이 아니라 오히려 채록된 구비신화 자료를 1차 자료로 삼아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정리한 결과 추출된 세계인식의 본질의 동아시아 철학이 말하는 우주론과 비교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비교에는 단지 노장만이 아니라 유가의 철학적 우주론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2차적 작업으로는 신화와 철학의 연속적 사유로서의 도가적 사유에 대한 하나의 절단, 즉 유가적 인식론을 검토하고 그것이 어떻게 신화적 사유를 역사에서 소외시켰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 이른바 정명론적 언어관이 어떻게 신화를, 혹은 신화적 사유를 위험한 물건으로 만들었는지를 인식론사의 전개 속에서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시대의 긴요한 과제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근대적 사유의 극복이다. 근대적 사유란 인간중심주의적인, 이성중심주의적인 사유와 동의어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고 과신하고 신뢰하는 태도가 이른바 인류사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인식이다. 사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태도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했고, 이성에 반하는 신화적 사유에 대한, 상상력에 대한 배제를 당연시했다. 그러나 신화적 사유는 연속성으로 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을 이원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화, 혹은 신화적 상상력이 특히 주목되고 있는 것도 이런 신화적 인식론의 특이성 때문이다.
신화적 사유의 힘이 긴요한 시대에 동아시아 신화를 텍스트로 삼아 그 인식론을 살피고 그것을 동아시아철학의 우주론과 연관지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한 작업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한국구비문학연구자가 이런 분야에 대해 무관심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나아가 한국철학계 역시 신화적 사유에 관심을 보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런 학제적 연구는 유용한 작업의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