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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百濟 漢城의 瓦當과 瓦葺景觀 = The Antefix Tiles and Landscape of Hanseong, the Capital City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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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Roof-tiles are prestigious architectural artifacts, preferentially used to construct the Capital city in ancient Baek-je dynasty. Therefore it is very effective method to understand landscape of Capital, how tiles were manufactured and used and where tile- roofed houses were.
    Antefix tiles of Hanseong period of Baek-je have been excavated just from three sites in seoul. Those are Pungnap earntern wall, Mongchon earntern wall, Seokchondong burial area, and where constituded the capital of Hanseong.
    Tiles are thought to had been used in Baekje from middle or latter half of 3th century. Antefix tiles are manufactured from early 4th century in indirect relation with technic and design of Lelang and Six-dynasty.
    In 5th century various styles were applied on size, design, technic. It was partly because incoming technic from South dynasty, China.
    Hence, till now a certain feature of tile-roofed building is not disapper. But we can guess that palace and shrine of nation may have demanded tiles on their roof. Antifex are also thought to have been roofed Buddist temple, shrine, house of nobble etc.
    It is probable that tiles were rooted partially on symbolic part or well visible side of roof rather than whole.


    key words: tiles, antefix, Hanseong, Capital of Baek-je, Pungnap earntern wall, Mongchon earntern wall, Seokchondong burial area, tile-roofed building, landscape of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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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of-tiles are prestigious architectural artifacts, preferentially used to construct the Capital city in ancient Baek-je dynasty. Therefore it is very effective method to understand landscape of Capital, how tiles were manufactured and used and where ...

    Roof-tiles are prestigious architectural artifacts, preferentially used to construct the Capital city in ancient Baek-je dynasty. Therefore it is very effective method to understand landscape of Capital, how tiles were manufactured and used and where tile- roofed houses were.
    Antefix tiles of Hanseong period of Baek-je have been excavated just from three sites in seoul. Those are Pungnap earntern wall, Mongchon earntern wall, Seokchondong burial area, and where constituded the capital of Hanseong.
    Tiles are thought to had been used in Baekje from middle or latter half of 3th century. Antefix tiles are manufactured from early 4th century in indirect relation with technic and design of Lelang and Six-dynasty.
    In 5th century various styles were applied on size, design, technic. It was partly because incoming technic from South dynasty, China.
    Hence, till now a certain feature of tile-roofed building is not disapper. But we can guess that palace and shrine of nation may have demanded tiles on their roof. Antifex are also thought to have been roofed Buddist temple, shrine, house of nobble etc.
    It is probable that tiles were rooted partially on symbolic part or well visible side of roof rather than whole.


    key words: tiles, antefix, Hanseong, Capital of Baek-je, Pungnap earntern wall, Mongchon earntern wall, Seokchondong burial area, tile-roofed building, landscape of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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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고대 사회에서 기와는 국가 권력의 상징인 도성의 조영에 우선적으로 활용된 건축부재이다. 따라서 도성 내에서 기와의 활용양상과 와즙건물의 분포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지배층의 통치 의식이 반영된 도성 경관에 접근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백제 한성기의 사회를 연구하는데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백제 한성기의 와당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도성을 구성하는 세 유적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출토 위치를 살펴보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이나 지배층과 관련된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과 대체적으로 부합하는데, 역으로 와당의 존재가 출토지의 성격을 추론하는 중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백제 기와는 대체로 3세기 중·후반 경에 등장한 것으로 파악되며, 한성이 함락될 때까지 발전과 변용의 과정을 수반한다. 이러한 과정은 5단계로 정리된다. 와당은 4세기 전반 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낙랑 제와술과 남중국의 錢文을 응용하여 창안된 것이다. 4세기 중엽, 동진의 영향이 감지되는 수면문와당이 등장하면서, 재래의 형식이 새로운 형식과 습합되는 한편 정형화의 현상도 보인다. 5세기 중엽에 이르면 시문기법의 다변화, 연화문의 채용, 대형 와당의 등장 등 풍부한 경륜이 축적된 양상을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南朝의 제와술이 점진적으로 수용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瓦葺을 확신할 만한 건물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궁전과 예제건축은 와당의 일차적 수요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풍납토성에서 이러한 기미가 엿보인다. 문헌에만 등장하는 佛寺도 유력한 후보지가 된다. 왕릉 주변의 소규모 사당, 일부 귀족의 가옥에도 와당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붕 전면 보다는 가시성이 높은 일부분에만 기와를 이었을 가능성이 상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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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사회에서 기와는 국가 권력의 상징인 도성의 조영에 우선적으로 활용된 건축부재이다. 따라서 도성 내에서 기와의 활용양상과 와즙건물의 분포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지배층의 통치 ...

    고대 사회에서 기와는 국가 권력의 상징인 도성의 조영에 우선적으로 활용된 건축부재이다. 따라서 도성 내에서 기와의 활용양상과 와즙건물의 분포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지배층의 통치 의식이 반영된 도성 경관에 접근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백제 한성기의 사회를 연구하는데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백제 한성기의 와당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도성을 구성하는 세 유적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출토 위치를 살펴보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이나 지배층과 관련된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과 대체적으로 부합하는데, 역으로 와당의 존재가 출토지의 성격을 추론하는 중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백제 기와는 대체로 3세기 중·후반 경에 등장한 것으로 파악되며, 한성이 함락될 때까지 발전과 변용의 과정을 수반한다. 이러한 과정은 5단계로 정리된다. 와당은 4세기 전반 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낙랑 제와술과 남중국의 錢文을 응용하여 창안된 것이다. 4세기 중엽, 동진의 영향이 감지되는 수면문와당이 등장하면서, 재래의 형식이 새로운 형식과 습합되는 한편 정형화의 현상도 보인다. 5세기 중엽에 이르면 시문기법의 다변화, 연화문의 채용, 대형 와당의 등장 등 풍부한 경륜이 축적된 양상을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南朝의 제와술이 점진적으로 수용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瓦葺을 확신할 만한 건물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궁전과 예제건축은 와당의 일차적 수요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풍납토성에서 이러한 기미가 엿보인다. 문헌에만 등장하는 佛寺도 유력한 후보지가 된다. 왕릉 주변의 소규모 사당, 일부 귀족의 가옥에도 와당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붕 전면 보다는 가시성이 높은 일부분에만 기와를 이었을 가능성이 상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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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조경철, "한성백제시대의 불교문화" 서울시사편찬위원회 (63) : 2003

    2 金昌錫, "한성기 백제의 국가제사 체계와 변화 양상 -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9호 유구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소 (22) : 1-28, 2004

    3 黃曉芬, "한대의 무덤과 그 제사의 기원" 학연문화사 2006

    4 권오영, "풍납토성 출토 외래유물에 대한 검토" 백제연구소 36 : 25-48, 2002

    5 한지선, "풍납토성 경당지구 재발굴조사 성과" 韓國考古學會 2008

    6 권오영,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조사의 성과. in : 風納土城의 發掘과 그 成果" 한밭大學校 鄕土文化硏究所 2001

    7 최영민,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건물지 재발굴조사 성과」『2008년도 서울·경기지역 문화유적 조사성과』" 2008

    8 양관, "중국 역대 陵寢제도" 서경 2005

    9 李允鉌, "중국 고전건축의 원리" 시공사 2000

    10 소재윤, "제작기법을 통해 본 백제 수막새의 形成과 生産體制의 변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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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金昌錫, "한성기 백제의 국가제사 체계와 변화 양상 -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9호 유구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소 (22) : 1-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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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최영민, "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건물지 재발굴조사 성과」『2008년도 서울·경기지역 문화유적 조사성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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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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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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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29 0.29 0.2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4 0.59 0.812 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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