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외국어 교육기관이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를 보면, 고려시대 통문관(通文館)이 그 연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역원은 외국어 교육 기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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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2013
학위논문(석사) --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과 역사교육 , 2013. 2
2013
한국어
서울
ⅳ, 31p. ; 26cm
지도교수: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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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사역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외국어 교육기관이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를 보면, 고려시대 통문관(通文館)이 그 연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역원은 외국어 교육 기능과...
사역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외국어 교육기관이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를 보면, 고려시대 통문관(通文館)이 그 연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사역원은 외국어 교육 기능과 행정 및 통역업무까지 담당하였다. 이러한 사역원의 설치 목적은 ‘사대교린’이라는 외교과업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사역원의 직제는 크게 녹직(祿職)과 위직(衛職), 그리고 부경직(赴京職)으로 나뉘었다. 녹직은 사역원 본원에서 근무하는 경관직(京官職)과 외방에 부임되어 근무하는 외임직(外任職)으로 나눌 수 있다. 경관직은 또 실직(實職)과 체아직(遞兒職)으로 나누어지는데 교수와 훈도만이 실직이었고, 나머지는 체아직이었다. 외임직은 훈도(訓導), 별차(別差), 겸군관(兼軍官) 등이 있었다. 위직은 군직으로 통칭되어 그 대우가 좋지 못했다. 부경직은 임시체아직이었지만 사역원 역관들의 최대 목표가 부경 사행이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자리였다.
사역원 생도들의 입학방법은 초기의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후기에 가면 4대조의 성명과 신분을 밝힌 서류와 신원 보증서를 받아, 녹관청에서 15명의 녹관이 투표로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을 결정하였다. 이중 3명이 ‘부(否)’로 평가하면 입학시험을 치를 수 없을 만큼 까다로웠다. 생도 정원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경국대전(經國大典)』,『통문관지』를 보면, 계속 변화를 보이다가 후기에는 상비생도까지 합쳐 204명이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역원의 교육과정은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려우나, 시험방법과 과목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교육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서도법, 회화훈련, 출석독려, 공동학습과 분담지도, 엄정한 평가와 누가기록의 활용 등이 있다. 특히 회화훈련은 사역원이 외교실무처리를 위해 설립된 만큼 중요하였다. 조선후기에는 회화전문기관인 우어청을 설치하여 권장하기도 하였다.
외국어 교육만큼 그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제도도 중요하여, 사역원에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시행하고 있었다. 고강(考講)·원시(院試)·취재(取才)는 장학 또는 각종 자격, 승진을 위한 시험이었고, 역과(譯科)는 역관을 뽑기 위한 시험이었다. 특히 역과출신 역관은 승진과 임용 등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고강은 부경의 자격이나 위직을 주기 위한 서도고강(書徒考講)과 장학을 위한 이육고강(二六考講)으로 나뉘어졌다. 원시는 사역원의 취재시험 전에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먼저 통과해야하는 예비시험과 같은 것이었다. 취재의 경우 녹관체아직(祿官遞兒職)과 위직체아직(衛職遞兒職)을 받기 위한 녹취재(祿取才)와 위직취재(衛職取才), 그리고 부경참여 자격을 얻기 위한 부경취재(赴京取才)로 구별할 수 있다.
취재시를 통해서도 역관이 될 수 있었지만, 고위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시험 중에서 잡과의 한 분야인 역과(譯科)를 합격해야 했다. 역과는 원내의 시험과 향시를 포함한 초시와 최종시험인 복시의 형태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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