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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말기 식산계와 식민지파시즘 = The Siksangye and Colonial Fascism in the End of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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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fter 1938, the Siksangye was restructured according to the Fascism Cooperative Theory that all rural organizations should be unified and controlled to carry out the Japanese War. Since the early 1930s, the Cooperative Credit Society has established the Siksangye nationwide. By the time of the wartime control economic system, the Siksangye was established in almost all the villages, achieving rural organization even in end villages. At that time, the Korean directors of the financial union actively accepted the village cooperative theory based on the Fascism Cooperative Theory of the Japanese Empire. The realization unit was the Siksangye. Using the Siksangye, the Japanese Empire was able to rule the farmers by making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nd everyday life barracks. However, this powerful rural organization and control system collapsed from the inside. Exhausted in burden such as offering they cannot afford or corruption and graft, authoritative top down structure that excludes farmers' opinions, the farmers resisted passively. These little resistances broke down the controlled farm village ruling order of the Japanese Empire from the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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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1938, the Siksangye was restructured according to the Fascism Cooperative Theory that all rural organizations should be unified and controlled to carry out the Japanese War. Since the early 1930s, the Cooperative Credit Society has established t...

    After 1938, the Siksangye was restructured according to the Fascism Cooperative Theory that all rural organizations should be unified and controlled to carry out the Japanese War. Since the early 1930s, the Cooperative Credit Society has established the Siksangye nationwide. By the time of the wartime control economic system, the Siksangye was established in almost all the villages, achieving rural organization even in end villages. At that time, the Korean directors of the financial union actively accepted the village cooperative theory based on the Fascism Cooperative Theory of the Japanese Empire. The realization unit was the Siksangye. Using the Siksangye, the Japanese Empire was able to rule the farmers by making production and distribution, and everyday life barracks. However, this powerful rural organization and control system collapsed from the inside. Exhausted in burden such as offering they cannot afford or corruption and graft, authoritative top down structure that excludes farmers' opinions, the farmers resisted passively. These little resistances broke down the controlled farm village ruling order of the Japanese Empire from the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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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35년 농민경제안정화를 목표로 설립되었던 식산계는 전시통제경제체제 속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기관이 되었다. 1930년대의 농촌진흥운동은 농가경제안정화정책을 취하면서 중견인물들을 포섭해갔고, 한편에서는 다각적으로 전개되던 조선인들의 농민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억압하면서 농촌을 통제체제로 조직해갔다. 그런 조건 속에서 일제는 전시파시즘체제로 급속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농민들은 식산계라는, 촌락까지 짜인 조직체계 속에서 경제생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통제받게 되었다. 식산계는 농민-금융조합-총독부와 일본제국주의로 드러난 국가의 삼자 관계가 어떤 의사결정구조로 유지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1938년 이후의 식산계는 일제의 전쟁수행을 위해 모든 농촌조직이 국가가 통제하는 체계 속에서 협동화해야 한다는 파시즘협동조합론에 기초하였다. 금융조합의 조선인 이사들은 부락협동체론으로서 촌락단위까지 일제의 농촌지배체제를 구축해갔다. 그 실현단위가 식산계였다. 일제는 식산계를 활용해 농민들을 생산과 유통, 나아가 일상까지 병영화시켜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 강력한 농촌조직화와 통제체제는 내부에서 균열되어갔다. 농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공출 등의 부담이나 부정부패, 농민들의 의사를 배제한 권위적 상명하달구조 속에서 식산계 내부에서 협력하는 신뢰관계는 무너져갔다.
    전시파시즘기 식산계의 운영구조는 농업개혁의 핵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경험이었다.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경영을 할 수 있도록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그 체계는 어떤 관점과 틀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농민들이 자주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갖는 협동조합과 수월하게 농업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체계라는 새로운 틀이 제안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없다면 협동조합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더라도 그 조직은 농민들을 수탈하고 지배하는 통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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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농민경제안정화를 목표로 설립되었던 식산계는 전시통제경제체제 속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기관이 되었다. 1930년대의 농촌진흥운동은 농가경제안정화정책을 취하면서 중견인...

    1935년 농민경제안정화를 목표로 설립되었던 식산계는 전시통제경제체제 속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기관이 되었다. 1930년대의 농촌진흥운동은 농가경제안정화정책을 취하면서 중견인물들을 포섭해갔고, 한편에서는 다각적으로 전개되던 조선인들의 농민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억압하면서 농촌을 통제체제로 조직해갔다. 그런 조건 속에서 일제는 전시파시즘체제로 급속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농민들은 식산계라는, 촌락까지 짜인 조직체계 속에서 경제생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통제받게 되었다. 식산계는 농민-금융조합-총독부와 일본제국주의로 드러난 국가의 삼자 관계가 어떤 의사결정구조로 유지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1938년 이후의 식산계는 일제의 전쟁수행을 위해 모든 농촌조직이 국가가 통제하는 체계 속에서 협동화해야 한다는 파시즘협동조합론에 기초하였다. 금융조합의 조선인 이사들은 부락협동체론으로서 촌락단위까지 일제의 농촌지배체제를 구축해갔다. 그 실현단위가 식산계였다. 일제는 식산계를 활용해 농민들을 생산과 유통, 나아가 일상까지 병영화시켜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 강력한 농촌조직화와 통제체제는 내부에서 균열되어갔다. 농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공출 등의 부담이나 부정부패, 농민들의 의사를 배제한 권위적 상명하달구조 속에서 식산계 내부에서 협력하는 신뢰관계는 무너져갔다.
    전시파시즘기 식산계의 운영구조는 농업개혁의 핵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경험이었다.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업경영을 할 수 있도록 국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며, 그 체계는 어떤 관점과 틀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농민들이 자주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갖는 협동조합과 수월하게 농업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체계라는 새로운 틀이 제안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없다면 협동조합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더라도 그 조직은 농민들을 수탈하고 지배하는 통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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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용택, "한국 농협의 뿌리와 성립과정" 역사비평사 2015

    2 변은진, "파시즘적 근대체험과 조선민중의 현실인식" 선인문화사 2013

    3 이경란, "총동원체제하 농촌통제와 농민생활 -마을 사회관계망을 중심으로-" 국학연구원 (124) : 785-838, 2004

    4 문영주, "조선총독부의 농촌지배와 식산계(殖産契)의 역할(1935~1945)" 한국역사연구회 (46) : 171-196, 2002

    5 이경란,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체제 인식과 대응" 혜안 2006

    6 이송순, "일제하 전시 농업정책과 농촌 경제" 선인문화사 2008

    7 이경란, "일제하 금융조합연구" 혜안 2002

    8 문영주, "일제말기(1937~45)금융조합 농업대출금의 운용실태와 성격" 역사문제연구소 (6) : 2001

    9 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 국학자료원 1997

    10 정연태, "식민권력과 한국 농업-일제 식민농정의 동역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1 김용택, "한국 농협의 뿌리와 성립과정" 역사비평사 2015

    2 변은진, "파시즘적 근대체험과 조선민중의 현실인식" 선인문화사 2013

    3 이경란, "총동원체제하 농촌통제와 농민생활 -마을 사회관계망을 중심으로-" 국학연구원 (124) : 785-838, 2004

    4 문영주, "조선총독부의 농촌지배와 식산계(殖産契)의 역할(1935~1945)" 한국역사연구회 (46) : 171-196, 2002

    5 이경란,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체제 인식과 대응" 혜안 2006

    6 이송순, "일제하 전시 농업정책과 농촌 경제" 선인문화사 2008

    7 이경란, "일제하 금융조합연구" 혜안 2002

    8 문영주, "일제말기(1937~45)금융조합 농업대출금의 운용실태와 성격" 역사문제연구소 (6) : 2001

    9 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 국학자료원 1997

    10 정연태, "식민권력과 한국 농업-일제 식민농정의 동역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11 김창진, "사회주의와 협동조합운동-혁명전후 러시아의 국가와 협동조합, 1905-1930" 한울 2008

    12 방기중, "배민수의 농촌운동과 기독교 사상" 연세대학교출판부 1999

    13 홍성찬, "농지개혁 연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1

    14 김성보,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북한농업체제의 형성을 중심으로-" 역사비평사 2000

    15 朝鮮金融組合聯合會, "金融組合年鑑 1941"

    16 牟田口利彦, "金融組合運動" 朝鮮金融組合協會 1932

    17 "金融組合"

    18 國弘員人, "組合經濟の硏究" 笠原書店 1940

    19 朝鮮金融組合聯合會 調査課, "殖産契の經營事例"

    20 "東洋之光"

    21 朝鮮金融組合聯合會, "朝鮮金融組合聯合會十年史"

    22 朝鮮總督府 農村振興課, "朝鮮農村振興關係例規"

    23 印貞埴, "朝鮮農村の再編成硏究" 人文社 1943

    24 本位田祥男, "日本의 協同組合運動" 농업협동조합중앙회 1962

    25 崔元榮, "日帝末期(1937-45)의 靑年動員政策 - 靑年團과 靑年訓練所를 중심으로 -" 1999

    26 文暎周, "日帝末 戰示體制期(1937-1945) 村落金融組合의 活動"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6

    27 허수, "戰時體制期 靑年團의 조직과 활동" 국사편찬위원회 88 : 2000

    28 河かおる, "姜德相先生古希退職記念 日朝關係史論集" 新幹社 2003

    29 "國民總力"

    30 具在書, "協同組合의 理論과 實際" 尙久文化社 1957

    31 本位田祥男, "協同組合の理論" 日本評論社 1944

    32 産業組合史刊行會, "『産業組合發達史 5券』4권-5권"

    33 방기중, "1953~55년 금융조합연합회의 식산계부흥사업 연구-이승만정권의 협동조합정책과 관련하여-" 연세대 국학연구원 105 : 1999

    34 이경란, "1930년대 전반기 금융조합의 농촌조직 확대와 식산계 설립" 국학연구원 (115) : 109-159, 2002

    35 鄭文鍾, "1930年代 朝鮮에서의 農業政策에 관한 연구 : 農家經濟安定化政策을 중심으로" 서울大學校 大學院 1993

    36 김민철, "1930~40년대 조선총독부의 촌락 지배기구 연구" 역사문제연구소 12 (12): 199-254, 2008

    37 "(朝鮮總督府)官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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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2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DONG BANG HAK CHI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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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3 1.23 1.1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6 0.97 2.154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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