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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윌리엄 해리슨(W. B. Harrison)의 한국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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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지난 1896년 내한하여 1923년까지 32년 동안 한국 선교에 헌신한 남장로교 선교사 해리슨(William Butler Harrison)의 선교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그는 의술을 공부한 선교사로서 얼마동안 서울과 군산, 전주에서 의료 선교 업무에 종사하였다. 그 후 의료 전문선교사가 도착하자 그는 본래의 영역인 목회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레이놀즈, 테이트와 함께 전주에서 사역하였다. 특히 그들이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자 그는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전주 선교를 주도하였다. 1900~1903년 사이 그는 전주교회를 2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 신흥학교의 전신인 전주남학교를 세우고 익산지방의 교회들을 돌보며 또 화산 스테이션 구내에 처음으로 진료소와 주택을 세워 선교 기반을 든든히 하였다. 전주남학교의 설립은 한국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한국인 지도력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과감한 결단의 산물이다.
    목회ㆍ교육ㆍ건축 영역에서의 그의 이러한 선교 역량은 그 후 군산과 목포에서도 발휘되었다. 그리고 해리슨은 이제 남장로교 선교부의 중견 선교사로서 신임 선교사들을 통솔하며 해당 스테이션의 선교 사역 전반을 관리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는 군산에서 스테이션 직할 교회인 구암교회와 임피ㆍ함열ㆍ용안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면서 군산남학교에 중등과정을 개설하고 또 다니엘과 함께 군산진료소를 신축하는 등 선교 구내의 조성 공사에도 진력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은 그 후 목포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양동교회와 해남강진ㆍ장흥ㆍ영암 지방에서의 목회, 목포남학교 운영, 목포 스테이션 구내의 진료소와 여학교 교사(校舍) 신축 공사 등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이렇게 해서 해리슨은 남장로교 한국 선교부가 처음에 개척한 세 개의 스테이션을 모두 돌며 새로 생긴 그 선교 기지들의 원만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안팎의 선교 인프라를 함께 확충시킨 흔치 않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테이트와 전킨 그리고 유진 벨이 각각 전주-군산-목포스테이션을 개척했다면 해리슨은 그 스테이션들의 안정적인 발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1915년 이후 은퇴 시점까지 그는 익산ㆍ옥구ㆍ임천의 군산 동부 구역을 순회 사역하며 어린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전력하였다. 그는 이렇게 호남교회 형성의 숨은 공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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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1896년 내한하여 1923년까지 32년 동안 한국 선교에 헌신한 남장로교 선교사 해리슨(William Butler Harrison)의 선교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그는 의술...

    이 글은 지난 1896년 내한하여 1923년까지 32년 동안 한국 선교에 헌신한 남장로교 선교사 해리슨(William Butler Harrison)의 선교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그는 의술을 공부한 선교사로서 얼마동안 서울과 군산, 전주에서 의료 선교 업무에 종사하였다. 그 후 의료 전문선교사가 도착하자 그는 본래의 영역인 목회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레이놀즈, 테이트와 함께 전주에서 사역하였다. 특히 그들이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자 그는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전주 선교를 주도하였다. 1900~1903년 사이 그는 전주교회를 20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 신흥학교의 전신인 전주남학교를 세우고 익산지방의 교회들을 돌보며 또 화산 스테이션 구내에 처음으로 진료소와 주택을 세워 선교 기반을 든든히 하였다. 전주남학교의 설립은 한국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한국인 지도력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과감한 결단의 산물이다.
    목회ㆍ교육ㆍ건축 영역에서의 그의 이러한 선교 역량은 그 후 군산과 목포에서도 발휘되었다. 그리고 해리슨은 이제 남장로교 선교부의 중견 선교사로서 신임 선교사들을 통솔하며 해당 스테이션의 선교 사역 전반을 관리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는 군산에서 스테이션 직할 교회인 구암교회와 임피ㆍ함열ㆍ용안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면서 군산남학교에 중등과정을 개설하고 또 다니엘과 함께 군산진료소를 신축하는 등 선교 구내의 조성 공사에도 진력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은 그 후 목포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양동교회와 해남강진ㆍ장흥ㆍ영암 지방에서의 목회, 목포남학교 운영, 목포 스테이션 구내의 진료소와 여학교 교사(校舍) 신축 공사 등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이렇게 해서 해리슨은 남장로교 한국 선교부가 처음에 개척한 세 개의 스테이션을 모두 돌며 새로 생긴 그 선교 기지들의 원만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안팎의 선교 인프라를 함께 확충시킨 흔치 않은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테이트와 전킨 그리고 유진 벨이 각각 전주-군산-목포스테이션을 개척했다면 해리슨은 그 스테이션들의 안정적인 발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1915년 이후 은퇴 시점까지 그는 익산ㆍ옥구ㆍ임천의 군산 동부 구역을 순회 사역하며 어린 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전력하였다. 그는 이렇게 호남교회 형성의 숨은 공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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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focused on reviewing the missionary life of William Butler Harrison of PCUS, who devoted himself to mission in Korea for 32 years from 1896 when he entered Korea to 1923, in a clear way. He provided his service in Jeonju(1896~1904), Mokpo(1909~1912), and Gunsan(1904~1908, 1915~1928), committing his entire life to mission. The churches he took care of in the process of fulfilling his pastoral duties have grown into the representative churches of the corresponding areas.
    Harrison was a missionary with a talent in every aspect. In addition to being a sincere minister, he had medical skills to be applied on the field and was a passionate educator. Not only did he found Sinheung School, the first educational institute of PCUS, in Jeonju in 1901, he also served Yeongmyeong School and Yeongheung School in Gunsan and Mokpo, respectively, as the headmaster. He also demonstrated his talent in the construction of station.
    Tate, Junkin, and Bell pioneered station construction in Jeonju, Gunsan, and Mokpo, respectively. It was Harrison that led their stable growth and development. He concentrated his energies on taking care of young churches, making a tour of Iksan, Okgu, and Imcheon to provide his service until 1928 when he retired. In a word, he was a hidden contributor to the formation of Honam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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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focused on reviewing the missionary life of William Butler Harrison of PCUS, who devoted himself to mission in Korea for 32 years from 1896 when he entered Korea to 1923, in a clear way. He provided his service in Jeonju(1896~1904), Mokpo(1...

    This paper focused on reviewing the missionary life of William Butler Harrison of PCUS, who devoted himself to mission in Korea for 32 years from 1896 when he entered Korea to 1923, in a clear way. He provided his service in Jeonju(1896~1904), Mokpo(1909~1912), and Gunsan(1904~1908, 1915~1928), committing his entire life to mission. The churches he took care of in the process of fulfilling his pastoral duties have grown into the representative churches of the corresponding areas.
    Harrison was a missionary with a talent in every aspect. In addition to being a sincere minister, he had medical skills to be applied on the field and was a passionate educator. Not only did he found Sinheung School, the first educational institute of PCUS, in Jeonju in 1901, he also served Yeongmyeong School and Yeongheung School in Gunsan and Mokpo, respectively, as the headmaster. He also demonstrated his talent in the construction of station.
    Tate, Junkin, and Bell pioneered station construction in Jeonju, Gunsan, and Mokpo, respectively. It was Harrison that led their stable growth and development. He concentrated his energies on taking care of young churches, making a tour of Iksan, Okgu, and Imcheon to provide his service until 1928 when he retired. In a word, he was a hidden contributor to the formation of Honam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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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머리말
    • 2. 해리슨의 남장로교 배경
    • 3. 해리슨의 전주 선교(1896~1904)
    • 4. 해리슨의 첫 번째 군산 선교(1904~1908)
    • 5. 해리슨의 목포 선교(1909~1912)
    • 1. 머리말
    • 2. 해리슨의 남장로교 배경
    • 3. 해리슨의 전주 선교(1896~1904)
    • 4. 해리슨의 첫 번째 군산 선교(1904~1908)
    • 5. 해리슨의 목포 선교(1909~1912)
    • 6. 해리슨의 두 번째 군산 선교(1915~1928)
    • 7. 맺음말
    • 참고문헌
    • 한글초록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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