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SCOPUS KCI우수등재

      高麗中期壓出陽刻 靑瓷의 性格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7617472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고려 중기(11세기 말-13세기 전반) 청자의 제작에서 사용된 문양장식 방법은 음각, 상감, 압출양각, 철화. 투각 등 매우 다양하나 지금까지 주로 상감기법을 대표적인 것으로 중요하게 인식해 왔고 연구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청자에 문양을 장식하는 작업이 보편화되는 고려 중기 요지와 소비유적에서는 압출양각 기법을 사용한 청자가 음각문 청자 다음으로, 또는 지역에 따라 더 많은 비율로 생산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로서 왕실과 관공서, 주요사찰 등에 용품을 납품하던 강진지역의 용운리 10호 가마에서는 문양이 있는 접시 가운데 50% 이상에 압출양각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부안 유천리 7구역의 경우는 문양 있는 청자의 40% 이상에서 압출양각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나아가 지방에서 소규모로 운영되었던 대전 구완동이나 음성 생리 같은 곳에서는 다른 기법보다 압출양각이 월등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압출양각 기법은 주로 鉢이나 접시처럼 형태상 내면보다 구연이 넓고 벌어져 문양틀〔陶範〕을 사용하기 편리한 기종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려 중기에는 이처럼 일정한 규격의 틀을 사용함으로써 크기와 문양이 일정한 제품을 전국 각지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압출양각 기법이 최적의 공예기법으로 채택되었다.
      압출양각 기법은 같은 규격의 문양틀만 있으면 시도할 수 있는 기법이므로 강진이나 부안만큼 숙련된 장인이 상주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그들 지역과 조형적으로 유사한 청자를 생산할 수 있는 공예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 수공업품 생산 확대와 청자의 수요가 증가되는 과정에서 국가 공납품을 생산하던 최고급 가마인 康津지역의 생산 모델이 다른 지역 가마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던 것으로 파악된다.
      압출양각 청자의 대부분이 내면 전체나, 내측면 등에 공통적으로 화려하고 섬세한 花文을 시문하였으므로 그 문양을 살리기 위해서 燔造時에 그릇 위에 다른 그릇을 포개는 疊燒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양이 없는 기물의 위쪽에 놓거나 다른 그릇들보다 가장 위쪽에 놓게 됨으로써 문양이 없는 청자에 비해 같은 가마 내에서나 또는 서로 다른 지역의 생산품 간에서도 비교적 일정하게 고급한 質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기법은 중국 북송 후반부터 남송대에 걸쳐 耀州窯(Yaozhou Yao)系나 定窯(Ding Yao)系에서 주로 사용되어 중국에서도 남북방에 걸쳐 기장 광범하게 나타나는 장식이다.
      국내에서는 강진 용운리 10호 생산품을 기준으로 10-Ⅱ층위에 해당하며, 국내외 유적들의 고고학적 층위 관계와 동반 유물의 편년으로 보아 대개 11세기 말경부터 13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다. 이른바 ‘한국식 퇴화해무리굽’ 碗의 생산이 끝나는 시점, 즉 宋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우리나라 압출양각의 개시 시기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기법은 국내에 정착한 이후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양을 개발하여 고려의 고유한 양식을 이끌어 갔던 것으로 파악되었고, 상감기법 같은 고급 장식기법을 실현할 수 없었던 지방요지에서는 더 오래 동안 지속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압출양각 기법이 고려 중기에 청자 제작이 전국각지로 확대되어 생산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국가 공납품을 생산하던 요장이나 지방수요를 감당하던 요장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여 다각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태토와 유약, 번조기술 등에서 다소 격차가 있는 요지들에서도 당시 최고급품을 생산했던 康津청자의 형식과 조형에 가장 근접하게 생산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중기의 청자생산에서 압출양각 기법이 공예적 특성의 하나인 대량생산을 위한 ‘複製’에 가장 적합한 기법으로 채택되고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압출양각 청자의 공예적 위상에 대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하기

      고려 중기(11세기 말-13세기 전반) 청자의 제작에서 사용된 문양장식 방법은 음각, 상감, 압출양각, 철화. 투각 등 매우 다양하나 지금까지 주로 상감기법을 대표적인 것으로 중요하게 인식해 ...

      고려 중기(11세기 말-13세기 전반) 청자의 제작에서 사용된 문양장식 방법은 음각, 상감, 압출양각, 철화. 투각 등 매우 다양하나 지금까지 주로 상감기법을 대표적인 것으로 중요하게 인식해 왔고 연구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청자에 문양을 장식하는 작업이 보편화되는 고려 중기 요지와 소비유적에서는 압출양각 기법을 사용한 청자가 음각문 청자 다음으로, 또는 지역에 따라 더 많은 비율로 생산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로서 왕실과 관공서, 주요사찰 등에 용품을 납품하던 강진지역의 용운리 10호 가마에서는 문양이 있는 접시 가운데 50% 이상에 압출양각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부안 유천리 7구역의 경우는 문양 있는 청자의 40% 이상에서 압출양각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나아가 지방에서 소규모로 운영되었던 대전 구완동이나 음성 생리 같은 곳에서는 다른 기법보다 압출양각이 월등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압출양각 기법은 주로 鉢이나 접시처럼 형태상 내면보다 구연이 넓고 벌어져 문양틀〔陶範〕을 사용하기 편리한 기종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려 중기에는 이처럼 일정한 규격의 틀을 사용함으로써 크기와 문양이 일정한 제품을 전국 각지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압출양각 기법이 최적의 공예기법으로 채택되었다.
      압출양각 기법은 같은 규격의 문양틀만 있으면 시도할 수 있는 기법이므로 강진이나 부안만큼 숙련된 장인이 상주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그들 지역과 조형적으로 유사한 청자를 생산할 수 있는 공예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 수공업품 생산 확대와 청자의 수요가 증가되는 과정에서 국가 공납품을 생산하던 최고급 가마인 康津지역의 생산 모델이 다른 지역 가마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던 것으로 파악된다.
      압출양각 청자의 대부분이 내면 전체나, 내측면 등에 공통적으로 화려하고 섬세한 花文을 시문하였으므로 그 문양을 살리기 위해서 燔造時에 그릇 위에 다른 그릇을 포개는 疊燒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문양이 없는 기물의 위쪽에 놓거나 다른 그릇들보다 가장 위쪽에 놓게 됨으로써 문양이 없는 청자에 비해 같은 가마 내에서나 또는 서로 다른 지역의 생산품 간에서도 비교적 일정하게 고급한 質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기법은 중국 북송 후반부터 남송대에 걸쳐 耀州窯(Yaozhou Yao)系나 定窯(Ding Yao)系에서 주로 사용되어 중국에서도 남북방에 걸쳐 기장 광범하게 나타나는 장식이다.
      국내에서는 강진 용운리 10호 생산품을 기준으로 10-Ⅱ층위에 해당하며, 국내외 유적들의 고고학적 층위 관계와 동반 유물의 편년으로 보아 대개 11세기 말경부터 13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다. 이른바 ‘한국식 퇴화해무리굽’ 碗의 생산이 끝나는 시점, 즉 宋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중국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우리나라 압출양각의 개시 시기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기법은 국내에 정착한 이후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양을 개발하여 고려의 고유한 양식을 이끌어 갔던 것으로 파악되었고, 상감기법 같은 고급 장식기법을 실현할 수 없었던 지방요지에서는 더 오래 동안 지속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압출양각 기법이 고려 중기에 청자 제작이 전국각지로 확대되어 생산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국가 공납품을 생산하던 요장이나 지방수요를 감당하던 요장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여 다각적인 검토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태토와 유약, 번조기술 등에서 다소 격차가 있는 요지들에서도 당시 최고급품을 생산했던 康津청자의 형식과 조형에 가장 근접하게 생산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중기의 청자생산에서 압출양각 기법이 공예적 특성의 하나인 대량생산을 위한 ‘複製’에 가장 적합한 기법으로 채택되고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압출양각 청자의 공예적 위상에 대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mid-Goryeo period (late 11th century-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when decoration on celadons became commonplace, relief design created by molds or molded design, was employed most frequently on celadons after the incision of decoration. This was not just the case of the major kilns in areas such as Gangjin (康津) and Buan (扶安), but the small local kilns also revealed that molded design was the most popular among decoration methods. More than 50% of the plates from kiln no. 10 at Yongun-ri (龍雲里) in Gangjin, and more than 40% of the decorated celadons from kiln no. 7 at Yuchon-ri (柳川里) in Buan, comprise the molded design. Moreover, it has been reported that celadons with molded design constitute a considerable portion among those from kiln sites in Guwan-dong (舊莞洞). Taejon, and in Saeng-ri (筬里), Umseong.
      Molded design was used on vessels with a wide, open mouth so that the design mold could easily be impressed. The use of a standard mold enabled the mass-production of the same shape and style.
      This preference for celadons with molded design appeared as the celadon from Gangjin kiln celadons were established as a standard model for other regions. It appears that the craft-like characteristic of this type enabled potters who were not as those of capable as the Gangjin and Buan kilns, to use the same standard design mold, and thus to produce a similar decorative effect.
      Celadons with molded design presented the decoration either on the entire inside or on the internal walls. Other pieces were not stacked on this type, but instead this type was placed on top of stacks. Therefore, the objects were able to maintain higher quality than other objects from this kiln or those from other kilns.
      Used extensively among Yaozhou-ware (耀州窯) and Ding-ware (定窯), this method was particularly popular in the 10-Ⅱ stratum kiln no. 10 at Yongun-ri in Gangjin. From the archaeological evidence and chronological comparison with the firds from other sites, the stratum appears to belong to the period between the late 11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Thus, when the production of the tea bowls with pi-shaped foot ring came to a dose, and when the normalized relationship with Song China brought forth a new cultural wave. Korean celadons began to be decorated using molds. Once established in the peninsula, this decorative method, developed independently as a distinctive Korean design.
      Celadon with molded design made use of the craft-like quality of repeated impressing and mass-producing as celadon production sprea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The craft-like quality of the celadon with molded design enabled the maintenance of the Gangjin kiln shape and style despite the low quality of the day body and glaze, and the imperfect kiln technology of other local kilns.
      번역하기

      During the mid-Goryeo period (late 11th century-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when decoration on celadons became commonplace, relief design created by molds or molded design, was employed most frequently on celadons after the incision of decoration....

      During the mid-Goryeo period (late 11th century-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when decoration on celadons became commonplace, relief design created by molds or molded design, was employed most frequently on celadons after the incision of decoration. This was not just the case of the major kilns in areas such as Gangjin (康津) and Buan (扶安), but the small local kilns also revealed that molded design was the most popular among decoration methods. More than 50% of the plates from kiln no. 10 at Yongun-ri (龍雲里) in Gangjin, and more than 40% of the decorated celadons from kiln no. 7 at Yuchon-ri (柳川里) in Buan, comprise the molded design. Moreover, it has been reported that celadons with molded design constitute a considerable portion among those from kiln sites in Guwan-dong (舊莞洞). Taejon, and in Saeng-ri (筬里), Umseong.
      Molded design was used on vessels with a wide, open mouth so that the design mold could easily be impressed. The use of a standard mold enabled the mass-production of the same shape and style.
      This preference for celadons with molded design appeared as the celadon from Gangjin kiln celadons were established as a standard model for other regions. It appears that the craft-like characteristic of this type enabled potters who were not as those of capable as the Gangjin and Buan kilns, to use the same standard design mold, and thus to produce a similar decorative effect.
      Celadons with molded design presented the decoration either on the entire inside or on the internal walls. Other pieces were not stacked on this type, but instead this type was placed on top of stacks. Therefore, the objects were able to maintain higher quality than other objects from this kiln or those from other kilns.
      Used extensively among Yaozhou-ware (耀州窯) and Ding-ware (定窯), this method was particularly popular in the 10-Ⅱ stratum kiln no. 10 at Yongun-ri in Gangjin. From the archaeological evidence and chronological comparison with the firds from other sites, the stratum appears to belong to the period between the late 11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the 13th century. Thus, when the production of the tea bowls with pi-shaped foot ring came to a dose, and when the normalized relationship with Song China brought forth a new cultural wave. Korean celadons began to be decorated using molds. Once established in the peninsula, this decorative method, developed independently as a distinctive Korean design.
      Celadon with molded design made use of the craft-like quality of repeated impressing and mass-producing as celadon production sprea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The craft-like quality of the celadon with molded design enabled the maintenance of the Gangjin kiln shape and style despite the low quality of the day body and glaze, and the imperfect kiln technology of other local kilns.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高麗 壓出陽刻 技法의 淵源
      • Ⅲ. 국내 窯址 出土 壓出陽刻 靑瓷의 製作特徵과 生産樣相
      • Ⅳ. 高麗 中期 壓出陽刻 靑瓷의 消費와 製作時期
      • Ⅴ. 맺음말-壓出陽刻 靑瓷의 工藝的 位相
      • Ⅰ. 머리말
      • Ⅱ. 高麗 壓出陽刻 技法의 淵源
      • Ⅲ. 국내 窯址 出土 壓出陽刻 靑瓷의 製作特徵과 生産樣相
      • Ⅳ. 高麗 中期 壓出陽刻 靑瓷의 消費와 製作時期
      • Ⅴ. 맺음말-壓出陽刻 靑瓷의 工藝的 位相
      • 국문초록
      • ABSTRACT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