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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문토기시대 한일간 지역관계변천 = The Transition of regional relationship between Korean peninsular and the western Japan in the Mum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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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4389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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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Up to now, the regional relations between Korean Peninsulaand the western Japan have been focused on the timesince Yayoi Period and the region of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and the northwestern Kyusyu. It is viewed as the result of the undervaluation ofthe then existing various relationship between them. Therefore, I examined the broad area of Korean Peninsula and the western Japan through final Jomon to initial Yayoi.
      I analyzed parallel relationship and cultural aspect between Korea and Japan, especially Double-rimed Pottery, Rim-holed Pottery, Pottery with a Notched Raised Band, Red-Burnished Pottery, and Continental Assemblage of Stone Tools. As a result, it could be found that the southern KoreanPeninsula and the western Japan - Sanin region, the northern Kyusyu region, central Setouti and the northwestern Kyusyu - are diversely related. Yayoi culture was actually formed from the previous regional relations of them, and from then on, it began to be clear many phases of the link between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the northwestern Kyusyu.
     Meanwhile, the regional link was different before and after the formation of Yayoi culture. The former had a separate and occasional relation while the latter had a simultaneous and manifold one. But, the features of the culture of the Pottery with a Notched Raised Band and Yayoi culture which built the network of the western Japan are not due to only result from the amount of external factors. It is believed that there were many mixed factors such as resident’s correspondence to the continual implication from Korean peninsula, internal necessity, contemporaneousness of the eastern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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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 to now, the regional relations between Korean Peninsulaand the western Japan have been focused on the timesince Yayoi Period and the region of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and the northwestern Kyusyu. It is viewed as the result of the undervalua...

     Up to now, the regional relations between Korean Peninsulaand the western Japan have been focused on the timesince Yayoi Period and the region of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and the northwestern Kyusyu. It is viewed as the result of the undervaluation ofthe then existing various relationship between them. Therefore, I examined the broad area of Korean Peninsula and the western Japan through final Jomon to initial Yayoi.
      I analyzed parallel relationship and cultural aspect between Korea and Japan, especially Double-rimed Pottery, Rim-holed Pottery, Pottery with a Notched Raised Band, Red-Burnished Pottery, and Continental Assemblage of Stone Tools. As a result, it could be found that the southern KoreanPeninsula and the western Japan - Sanin region, the northern Kyusyu region, central Setouti and the northwestern Kyusyu - are diversely related. Yayoi culture was actually formed from the previous regional relations of them, and from then on, it began to be clear many phases of the link between the southern Korean Peninsula and the northwestern Kyusyu.
     Meanwhile, the regional link was different before and after the formation of Yayoi culture. The former had a separate and occasional relation while the latter had a simultaneous and manifold one. But, the features of the culture of the Pottery with a Notched Raised Band and Yayoi culture which built the network of the western Japan are not due to only result from the amount of external factors. It is believed that there were many mixed factors such as resident’s correspondence to the continual implication from Korean peninsula, internal necessity, contemporaneousness of the eastern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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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종래 한반도와 서일본의 지역관계는 시간적으로 야요이시대 이후에, 지역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서북구주지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는 당시 양 지역 간에 존재했을 다양한 지역적 관계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필자는 죠몽시대(縄文時代) 만기부터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조기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한반도와 서일본이라는 광역적 지역관계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죠몽시대 만기부터 야요이시대 조기에 걸쳐 한반도와 관련되는 이중구연토기, 공렬토기, 각목돌대문토기, 단도마연호, 대륙계마제석기들의 병행시기와 분포상을 검토한 결과, 한반도 남부와 서일본 각지간(산음지방山陰地方, 남부구주南部九州, 중부세토우치中部瀬戸内, 서북구주西北九州)의 다양한 지역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야요이문화(弥生文化)는 이전부터 존재하던 다양한 지역관계를 바탕으로 비로소 성립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서북구주의 지역관계가 분명해진다.
    한반도와 서일본의 관계는 야요이문화성립을 전후하여 다른데, 야요이문화 성립 이전에는 한반도와 서일본 각지의 관계가 소지역별로 개별적인 양상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한반도 남부로부터 소규모 집단의 도래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서북구주에 정착하여 재지문화와 동화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죠몽시대와 야요이시대의 한반도적 요소의 차이는 단순히 양적차이로만 볼 수 없고, 재지 죠몽문화의 해체현상, 죠몽내적 필요성, 한반도와 서일본간의 지속적인 지역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재지인의 대처양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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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래 한반도와 서일본의 지역관계는 시간적으로 야요이시대 이후에, 지역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서북구주지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는 당시 양 지역 간에 존재했을 다양한 지역적 관...

    종래 한반도와 서일본의 지역관계는 시간적으로 야요이시대 이후에, 지역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서북구주지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는 당시 양 지역 간에 존재했을 다양한 지역적 관계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필자는 죠몽시대(縄文時代) 만기부터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조기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한반도와 서일본이라는 광역적 지역관계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죠몽시대 만기부터 야요이시대 조기에 걸쳐 한반도와 관련되는 이중구연토기, 공렬토기, 각목돌대문토기, 단도마연호, 대륙계마제석기들의 병행시기와 분포상을 검토한 결과, 한반도 남부와 서일본 각지간(산음지방山陰地方, 남부구주南部九州, 중부세토우치中部瀬戸内, 서북구주西北九州)의 다양한 지역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야요이문화(弥生文化)는 이전부터 존재하던 다양한 지역관계를 바탕으로 비로소 성립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 남부와 서북구주의 지역관계가 분명해진다.
    한반도와 서일본의 관계는 야요이문화성립을 전후하여 다른데, 야요이문화 성립 이전에는 한반도와 서일본 각지의 관계가 소지역별로 개별적인 양상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한반도 남부로부터 소규모 집단의 도래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서북구주에 정착하여 재지문화와 동화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죠몽시대와 야요이시대의 한반도적 요소의 차이는 단순히 양적차이로만 볼 수 없고, 재지 죠몽문화의 해체현상, 죠몽내적 필요성, 한반도와 서일본간의 지속적인 지역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재지인의 대처양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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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천선행, "한반도 돌대문 토기의 형성과 전개" 한국고고학회 57 : 61-97, 2005

    2 安在晧, "한국농경사회의 성립" 한국고고학회 43 : 2000

    3 千羨幸, "영남지방 무문토기시대 중기로의 문양구성 변화, In 石軒鄭澄元敎授停年退任記念論叢"

    4 千羨幸, "야요이성립기의 한일 병행관계, In 청동기·삼한·야요이(弥生) 시대의 연대관" 2008

    5 이홍종, "무문토기와 야요이 토기의 실연대" 한국고고학회 (60) : 236-254, 2006

    6 千羨幸, "무문토기시대 조기설정과 시간적 범위" 靑銅器學會 1 : 2007

    7 千羨幸, "韓半島南部の赤色磨硏土器, In 吾タの考古学" 2008

    8 안재호, "靑銅器時代 聚落硏究"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6

    9 金承玉, "錦江流域 松菊里型墓制의 연구" 45 : 2001

    10 家根祥多, "遠賀川式土器の成立をめぐって-西日本における農耕社会の成立-, In 論苑考古学" 1993

    1 천선행, "한반도 돌대문 토기의 형성과 전개" 한국고고학회 57 : 61-97, 2005

    2 安在晧, "한국농경사회의 성립" 한국고고학회 43 : 2000

    3 千羨幸, "영남지방 무문토기시대 중기로의 문양구성 변화, In 石軒鄭澄元敎授停年退任記念論叢"

    4 千羨幸, "야요이성립기의 한일 병행관계, In 청동기·삼한·야요이(弥生) 시대의 연대관" 2008

    5 이홍종, "무문토기와 야요이 토기의 실연대" 한국고고학회 (60) : 236-254, 2006

    6 千羨幸, "무문토기시대 조기설정과 시간적 범위" 靑銅器學會 1 : 2007

    7 千羨幸, "韓半島南部の赤色磨硏土器, In 吾タの考古学" 2008

    8 안재호, "靑銅器時代 聚落硏究" 부산대학교 대학원 2006

    9 金承玉, "錦江流域 松菊里型墓制의 연구" 45 : 2001

    10 家根祥多, "遠賀川式土器の成立をめぐって-西日本における農耕社会の成立-, In 論苑考古学" 1993

    11 山口譲治, "農耕開始期の石器組成2" 1996

    12 佐原 真, "農耕の開始と階級社会の形成, In 『岩波講座 日本歷史』 1" 1975

    13 前田義人, "貫川遺跡出土晩期遺物の檢討, In 網干善敎先生古希記念考古学論集" 1998

    14 山崎純男, "西日本縄文農耕論, In 西日本縄文文化の特徵" 2005

    15 梅崎惠司, "西日本の弥生時代早期と前期の石器, In 弥生文化の成立" 2000

    16 千羨幸, "西日本の孔列土器" 25 : 2008

    17 千羨幸, "西日本における宊帯文土器文化の成立過程" 92 (92): 2008

    18 下條信行, "西日本における大陸系磨製石器の出現, In 日韓交涉の考古学-弥生時代編" 1991

    19 甲元真之, "西北九州支石墓の一考察" 41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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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宇野隆夫, "書評 金関 恕·大阪府立弥生文化博物館編 『弥生文化の成立-大変革の主体は「縄文人」だった-』" 43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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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千羨幸, "日本農耕文化成立期の韓日関係"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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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李弘鐘, "日本の初期水田農耕期の突帯文土器" 20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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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山崎純男, "弥生文化成立期における土器の編年的硏究, In 鏡山猛先生古希記念古文化論巧" 1980

    44 金関 恕, "弥生文化の成立-大変革の主休は「縄文人」だった-" 角川選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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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蒔田鎗次郞, "大野雲外氏の埴瓮 に就て" 17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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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水ノ江和同, "北九州の縄文後·晚期-三万田式から刻目突帯文土器の直前まで-" 8 : 1997

    61 安在晧, "前期無文土器の文樣編年と地域相, In 福岡大学考古学論集" 小田富士雄先生退職記念事業会 2004

    62 金關丈夫, "人種の問題, In 『日本考古学講座』 4" 河出書房 238-252, 1955

    63 岡田憲一, "二重口縁土器と孔列土器" 55 : 2006

    64 中山平次郎, "九州に於ける先史原始両時代中間其間の遺物に就て" 7 (7): 1917

    65 田中근良之, "いわゆる渡来說再檢討, In 日本における初期弥生文化の成立" 1991

    66 田中근良之, "5縄文土器と弥生土器 1西日本, In 弥生文化の硏究" 雄山閣 1986

    67 金賢, "4. 泗川梨琴洞無文時代木棺에 대한 檢討, In 泗川梨琴洞遺跡" 慶南考古學硏究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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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KOMUNHWA -> KOMUNHWA (Korea Antiquity)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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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56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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