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1930년대의 성서관 논쟁이 한국교회가 신학적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 정초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성서관은 신학사상의 초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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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1930년대의 성서관 논쟁이 한국교회가 신학적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 정초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성서관은 신학사상의 초석이 ...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1930년대의 성서관 논쟁이 한국교회가 신학적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 정초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성서관은 신학사상의 초석이 된다. 그 당시의 성서관 논쟁은 교파간의 상황에서 성서관 논쟁이 발생함으로 말미암아, 한국교회 안에 출현한 다양한 신학적 사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것은 곧 한국 교회가 신학적 자기의 정체를 분명히 표현한 시기이다. 이러한 신학적 자기 정체성이 당시의 한국 신학자 학자들에 의하여 도전과 논쟁을 통하여 더욱 발전하며, 한국교회 안에 자리를 잡아갔다. 양주삼과 정경옥의 범종교적 자유주의 성서관은 신학의 골격을 형성하였으며, 그의 성서관 사조는 윤성범, 변선환, 유동식 등으로 이어졌다. 김재준의 신 전통주의적 성서관은 역사 참여 의식속에 더욱 발전하여 한국 신학대학과 기장측의 신학적 전통을 수립하였고, 그의 성서관 사조는 서남동, 안병무 등으로 이어졌다. 박형룡의 보수적 개혁주의 성서관은 자유주의 성서관의 도전에 대한 끝없는 웅전을 벌이고 또한 발전하면서, 그의 성서관 사조는 박윤선, 강태국 등의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그 신학 노선을 따르는 신학교와 교회들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1930년대의 성서관 논쟁은 현 한국 교회의 다양한 신학 사조의 원형을 세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Table of Contents)
A Study of American College Slang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리어왕』(King Lear)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