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Understanding of the Stone Chamber Tombs of Hanseong-Era Baekje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4062419
2007
-
051.000
KCI등재
학술저널
1-25(25쪽)
1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 New Understanding of the Stone Chamber Tombs of Hanseong-Era Baekje
A New Understanding of the Stone Chamber Tombs of Hanseong-Era Baekje
백제 고분문화는 묘제의 다양성과 함께 국가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묘제가 橫穴式 石室墳으로 통일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백제 고분문화 이해는 이 횡혈식 석실분의 전개현황의 이해...
백제 고분문화는 묘제의 다양성과 함께 국가 성장과 더불어 다양한 묘제가 橫穴式 石室墳으로 통일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백제 고분문화 이해는 이 횡혈식 석실분의 전개현황의 이해와 직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료부족과 선입견적 해석으로 이에 대한 이해는 상당한 편차를 남기고 있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초기의 자료로 판단할 수 있는 석실분들이 각 지역에서 폭넓게 조사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상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본고는 백제 초기 석실분의 존재양상에 대한 적극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기왕의 백제 한성기 석실분 인식의 문제점을 찾아 보고,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를 검토하여 백제사회에 이 석실분이 도입되어 정착되는 초기적 환경 및 이 묘제의 특성을 새롭게 조명코자 하였다.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4세기 후반 경에 등장하고, 웅진천도이후 백제묘제의 주류가 되지만 어떻게 등장하고 전개되었는가는 아직 통일된 견해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성기 횡혈식 석실분 자료는 도읍지역인 한강유역을 비롯하여 금강유역은 물론 멀리 영산강 유역까지 광역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지방사회에 유존된 석실분은 석실분 단일묘제보다는 기존의 토착묘제에 포함된 것이 대부분이고, 묘제 속성에 토착적 전통묘제의 요소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 수용이 정확한 정보와 축조기술의 담보가 전제된 것이 아닌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도 알 수 있다. 이는 석실분 수용의 초기적 정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이들 각 지역에 수용된 석실분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한성기 석실분의 존재현황에서 가장 큰 특징은 무덤간에 구조속성에서 통일성 결여를 꼽을 수 있다. 이는 횡혈식 석실분 단일묘제만 있는 유적에서 오히려 크게 나타나며, 이는 이 묘제가 초기형으로 정립되기 이전의 현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에 단일 유적내의 통일성 결여와는 달리 지역간에는 상사성이 크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특히 도읍지역인 가락동, 방이동의 석실분과 지방의 석실분과는 상호 비교가 가능한 것들이 많다. 이로 보면 백제 석실분의 전개는 백제의 중앙인 도읍지역 석실분이 중심에 있었고 이를 지방사회에서 수용한 결과라는 결론이 가능하다.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4세기경에 백제사회에 유입되었고, 그것이 도읍지역에서는 가락동, 방이동과 같은 사례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지방사회로 파급되는데 파급자체가 지방사회에서 자발적 수용이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전통묘제가 사용되던 환경에서 새로운 문물로 횡혈식 석실분이란 개념이 알려지거나, 혹은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혹은 정형화된 묘제의 목격과 이의 모방 축조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석실분의 전개환경이 한성기 백제 석실분의 존재양상에 다양성을 크게 부각되게 한 배경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Reference)
1 吉井秀夫, "횡혈식석실분의 수용양상으로 본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백제연구소 1996
2 吉井秀夫, "횡혈식석실분의 수용양상으로 본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백제연구소 1996
3 백제연구소, "한국의 전방후원분" 충남대학교출판부 2000
4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충북대학교박물관 1982
5 충북대학교박물관,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1982
6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7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8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9 서울대학교박물관, "천안 용원리 유적 C 지구" 2001
10 "천안 용원리 유적 C 지구" 서울대학교박물관 2001
1 吉井秀夫, "횡혈식석실분의 수용양상으로 본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백제연구소 1996
2 吉井秀夫, "횡혈식석실분의 수용양상으로 본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백제연구소 1996
3 백제연구소, "한국의 전방후원분" 충남대학교출판부 2000
4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충북대학교박물관 1982
5 충북대학교박물관,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1982
6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7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8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청원 주성리 유적" 2000
9 서울대학교박물관, "천안 용원리 유적 C 지구" 2001
10 "천안 용원리 유적 C 지구" 서울대학교박물관 2001
11 "천안 두정동 유적" 2000
12 "천안 두정동 유적" 2000
13 국립문화재연구소, "익산 입점리 고분군" 1989
14 국립문화재연구소, "익산 입점리 고분군" 1989
15 "영광 학정리 함평 용산리 유적" 목포대학교 박물관 2000
16 목포대학교 박물관, "영광 학정리 함평 용산리 유적" 2000
17 "수촌리 고분과 백제묘제" 2005
18 "수촌리 고분과 백제묘제" 2005
19 "서울 江南地域 石室墳의 性格" 숭실사학회 1 : 1997
20 "서울 江南地域 石室墳의 性格" 숭실사학회 -1, 1997
21 "분강 저석리 고분군" 1997
22 "분강 저석리 고분군" 1997
23 "보령 명천동 고분군" 1996
24 "보령 명천동 고분군" 1996
25 "백제의 고분문화" 서경 2002
26 "백제의 고분문화" 2002
27 "백제연구소 한국의 전방후원분" 충남대학교출판부 2000
28 공주대학교 박물관, "백제고분자료집" 1995
29 "백제 한성시대 묘제의 다양성과 그 의미" 2004
30 "백제 한성시대 묘제의 다양성과 그 의미" 경기고고학회 발표요지 2004
31 최성락, "나주 송제리 석실분 실측조사" 목포대학교 박물관 2000
32 최성락 외, "나주 송제리 석실분 실측조사" 목포대학교 박물관 2000
33 "나주 복암리 3호분" 2001
34 "나주 복암리 3호분" 2001
35 "군산 산월리 유적" 군산대학교 박물관 2004
36 군산대학교 박물관, "군산 산월리 유적" 2004
37 李榮文, "長城 鈴泉里 橫穴式 石室墳" 全南大學校 博物館 1990
38 李榮文, "長城 鈴泉里 橫穴式 石室墳" 全南大學校 博物館 1990
39 蠶室地區遺蹟發掘調査團, "蠶室地區遺蹟發掘調査報告" 1975
40 蠶室地區遺蹟發掘調査團, "蠶室地區遺蹟發掘調査報告" 1975
41 金載悅 外, "華城 馬霞里 古墳群" 湖巖美術館 1998
42 金載悅 外, "華城 馬霞里 古墳群" 1998
43 金秉模, "芳荑洞古墳群" 1977
44 金秉模, "芳荑洞古墳群" 1977
45 林永珍, "石村洞一帶 積石塚系와 土壙墓系 墓制의 性格" 1987
46 林永珍, "石村洞一帶 積石塚系와 土壙墓系 墓制의 性格" 1987
47 李南奭, "百濟石室墳硏究 學硏文化社" 1995
48 "百濟墓制의 硏究" 서경 2002
49 "百濟墓制의 硏究" 2002
50 "百濟墓制의 展開 百濟墓制의 硏究" 서경 2002
51 "百濟墓制의 展開" 서경 2002
52 "百濟墓制와 石室墳" 1994
53 李南奭, "百濟墓制와 石室墳" 1994
54 姜仁求, "百濟墓制 硏究" 1977
55 姜仁求, "百濟墓制 硏究" 1977
56 安承周, "百濟古墳의 硏究" 1975
57 安承周, "百濟古墳의 硏究" 百濟文化硏究所 1975
58 李南奭, "百濟初期 橫穴式 石室墳과 그 淵源 先史와 古代 2" 한국고대학회 1992
59 "百濟初期 橫穴式 石室墳과 그 淵源" 한국고대학회 2 : 1992
60 金元龍, "百濟初期 古墳에 대한 再考" 歷史學會 -62, 1974
61 金元龍, "百濟初期 古墳에 대한 再考" 歷史學會 62 : 1974
62 李南奭, "百濟 橫穴式 石室墳의 構造形式硏究" 百濟文化硏究所 22 : 1992
63 李南奭, "百濟 橫穴式 石室墳의 構造形式硏究" -22, 1992
64 "百濟 橫穴式 石室墳의 受容樣相" 韓國古代史硏究會 17 : -17, 1999
65 "百濟 橫穴式 石室墳의 受容樣相" 韓國古代史硏究會 17 : 1999
66 "瑞山 富長里 遺蹟 略報告書" 2005
67 "瑞山 富長里 遺蹟 略報告書" 2005
68 尹煥, "漢江下流におげる百濟橫穴式石室墳" 1989
69 尹煥, "漢江下流におげる百濟橫穴式石室墳" 1989
70 서성훈성낙준, "海南 月松里 造山古墳" 1984
71 서성훈, "海南 月松里 造山古墳" 1984
72 崔秉鉉, "新羅古墳硏究" 1992
73 崔秉鉉, "新羅古墳硏究" 1992
74 野守健神田總藏, "忠淸南道公州宋山里古墳調査報告" 1936
75 野守健神田總藏, "忠淸南道公州宋山里古墳調査報告" 朝鮮總督府 1936
76 經部慈恩, "公州に於ける 百濟古墳" 1933-1936
77 經部慈恩, "公州に於ける 百濟古墳" 공주대학교 박물관 1933-1936, 1995
78 忠南歷史文化員, "公州 水村里 略報告書" 2004
79 忠南歷史文化員, "公州 水村里 略報告書" 2004
17세기 말∼18세기 초 中華繼承意識의 형성과 正統論의 강화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
| 201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5-12-01 | 평가 |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 ![]()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 |
| 1999-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07 | 1.07 | 1.11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07 | 1.02 | 2.456 | 0.5 |